유머는 정치1번지 (14) 비례대표제의 덫

앞 시간에 살폈듯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민주노동당의 성장에 촉매제 역할을 했으나 머지 않아 독이 되고 만다. 비례대표제로 인해 얼마간의 의석이 보장되자 그 의석을 차지하려 정파들이 당내 투쟁에 열을 올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러한 갈등 요인은 곳곳에 깔려 있었고 끝내 수습에 실패하면서 민주노동당은 잔류파와 진보신당으로 나뉘어졌다.

2008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4년 전의 8석보다 훨씬 줄어든 3석을 비례대표로 챙겼다. 진보신당은 지역구 뿐 아니라 비례대표에서도 의석을 갖지 못했다. 정당명부 지지율이 2.94%에 그쳐, 간발의 차이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을 자격을 얻는 3%에 못 미쳤다. 지역구 출마자도 전원 낙선해 진보신당은 원외로 물러앉고 말았다.


진보신당은 이듬해 울산북구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승리하며 원내로 진입했지만, 민주노동당에 뒤쳐진 처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통합진보당 합류파와 진보신당 잔류파로 또다시 갈라졌다. 진보신당은
2012년 총선에서 청소노동자 김순자 씨, 유명 지식인인 홍세화 씨와 박노자 씨를 비례대표 명단에 올리는 등 분투했으나 득표율 1.1%를 얻고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진보신당이 감기에 걸렸다면, 통합진보당은 폐암이 발병했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의 통합으로  비례대표 6석 등 총 13석을 확보해 성공하는가 싶더니 역시나 비례대표의 덫에 걸렸다. 비례대표 경선에서 불거진 부실 내지 부정 시비가 당을 휘감더니 온 세상을 뒤흔들게 된 것이다. 결국 통합진보당 또한 잔류파와 진보정의당으로 분리되었다.

'비례대표는 2년만' 제안한 페트라 켈리... 그러나


독일 녹색당의 '레전드', 페트라 켈리(1947~1992)

지역 기반에 비해 전국 인지도가 크게 두터운 정당에서, 국회로 가는 길은 지역구보다 비례대표가 훨씬 짧고 평탄하다. 그래서 비례대표 의원만큼은 임기를 2년으로 하여, 상위 순번이 중도 사퇴하면 하위 순번이 승계하자는 제안도 간간이 나돈다. 독일 녹색당의 ‘순환 임기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이 제도를 먼저 제안한 스타 정치인 페트라 켈리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취임 후 2년이 지나자 사퇴를 거부했다. 막상 의원을 해보니, '2년 임기'가 "해볼 만하면 끝나는 것"으로 여겨진 탓이다.   

당내에서는 비난이 솟구쳤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는 속담이 독일에도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있었다면 이런 비아냥이 나왔겠다: “비례대표 명부가 화장실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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