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는 유족의 뜻을 거부하고 비윤리적 복제품 사용했다

 

날마다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언론간 전투로 번지고 있다. 전사는 공교롭게도 <경향신문>과 JTBC다. 한국 언론 지형에서 개혁적 위치에 선 두 언론이 맞붙는 형세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등하고 공정한 경쟁이 아닌 한쪽의 윤리 및 도의 훼손에서 벌어졌다.

경향은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의 전화를 받고 그의 폭로 내용을 녹음해 현재의 언론 보도를 최전선에서 이끌어왔다. 내용을 조금씩 나누어서 보도하는 방식은 더 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경향은 지금 정국의 핵심에 서 있는, '사실상의 제1야당'에 가깝다. JTBC 역시 성 전 의원에 관련해 숱한 단독보도를 이끌어내며 지상파 방송3사보다 훨씬 주도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 

주도자 <경향>... JTBC 탓에 날벼락 만나 

지난 15일 경향은 검찰에 성 전 의원과의 대화 파일을 전달했다. 그간 검찰의 요청에 그렇게 응하기로 한 경향은 16일자 지면을 통해 통화 녹취록 전문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경향은 때 아닌 풍랑을 만났다. 손석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이 경향-성완종의 통화 음성을 공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향은 떼논 당상이던 특종감을 부여잡으려 온라인을 통해 부랴부랴 음성 녹취록을 게재했다.

경향은 음성 파일의 일부를 인터넷으로 공개했었으나 유족의 요구에 따라 추가적인 공개를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JTBC의 방송 강행이 더욱 충격적인 연유다. 성 전 의원의 유족들은 JTBC 보도국에 전화를 걸어 방송 반대 의사를 밝혔으며, 경향 역시 박래용 편집국장이 직접 전화해 방송 취소를 요구했다.

JTBC <뉴스룸>은 그러나 방송을 강행했고 손석희 아나운서는 "경향과는 다른 경로를 통해 파일을 입수했다"며 시청자들을 놀래켰다. 다만 대부분을 공개하되 모든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내했다. 뉴스만 본 시민들은 "성완종 씨나 유족 및 측근이 JTBC에 파일을 건네지 않았을까", "검찰에서 JTBC에 파일을 흘렸나" 등의 반응을 나타냈다. 

아마 멋 모르는 시민은 "경향과 JTBC가 찰떡 공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을 것이다. 글쎄, 만만의 콩떡이다. 한 언론이 도저히 보도를 터트릴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타언론에라도 기사감을 넘겨 만천하에 공개할 때라면 모를까.

유족은 JTBC의 방송에 반발했다. 이것만으로 JTBC의 방송은 보도 윤리 위반에 해당한다. 굳이 공개할 이유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JTBC측은 진실 보도를 위해 공개를 결정했다고 했지만 공개해야만 지켜질 수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거나 구체적이지 않다. 그러한 진실이 나중에 발견된다면 추후에 공개해도 무방하다. 그동안에 유족들을 설득해도 된다.

비공개된 것은 나중에 공개할 수 있어도
공개된 것을 비공개로 되돌릴 순 없다


녹취록 전문이 공개되는 마당에 음성 공개를 구태여 왜 막느냐고? 그러니까 유족이다. 죽기 전 고인의 쓸쓸하고 절망적인 심정이 담긴 음성이 전국의 시청자에게 전해진다고 상상해보라. 와닿지 않으면 그 고인이 당신의 배우자나 어버이, 자녀, 형제라고 생각해보라. 끝내 당신이 이해 못 해도 상관없다. JTBC만큼은 이 이야기를 알아들어야 한다.  

이번 JTBC의 보도 태도는 지난해 세월호 사건 당시와 완전히 대조적이다. 당시 JTBC는 고통과 혼란에 빠진 세월호속 학생들의 최후 모습을 방영하지 않았다. 그러한 현상이 없었으리라고 주장하며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없었으므로 굳이 반증할 까닭이 없었다. 

사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은 이를 방영해달라고 언론사에 요구했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을 괴롭게 만드는 것을 무릅쓰고 방송에 내보내야 할 이유가 없었고 JTBC는 도의와 윤리를 강하게 준수한 셈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구조를 기다리며 역설적인 평온을 나누는 학생들의 대화를 이들의 최후 장면으로 내보냄으로써 "오히려 비극성을 잘 전달했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유족의 공개 요청을 우선 수용하지 않고 비공개하는 것과 유족의 비공개 요청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다르다. 이미 공개된 것은 비공개 상태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JTBC는 성 전 의원 사망 사건에 가장 깊숙하게 관련된 유족들의 뜻, 그리고 고인과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언론의 명예를 무시하면서까지 파일을 공개했다. 

또 경악스러운 것은 입수 경로다. 경향에 따르면 디지털포렌식 전문가로 저명한 김인성 씨가 범인이다. 경향이 검찰에 파일을 제출할 때 보안 작업에 자진 참여한 김씨는 파일을 확보한 채로 작업을 마치고 나와 JTBC에 전달해버렸다. 김씨는 이때 "경향신문 보도 후에 활용하라"고 JTBC에 당부했다고 한다. 

도둑과 장물아비, 아닌가?
손석희도 '청취자'에 불과했다


15일 밤에 보도를 해버린 JTBC의 처사에 대해 김인성 씨는 "책임을 통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보도 시점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다. 김씨의 행위는 파일 빼돌리기다. '파일'이라는 사물의 특성상 그런다고 경향이 보유한 파일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경향과 검찰, 이 둘만이 서로의 협의 하에 갖기로 한 파일을 제3자에게 건넨 것은 빼돌리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JTBC는 장물을 시장에 내놓은 셈이다. 누군가가 사라진 물건을 찾을 때 장물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더이상 장물이 아니다. 보관하고 있다가 내놓은 사람도 도둑이 아니라 물건을 찾아준 은인이 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노력이 담긴 물건의 복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은 명백한 부도덕이다. 

언론계 사정을 조금 알거나 짐작하는 사람들은 경향이 주도하는 정국에 타언론 기자들은 미치고 눈이 돌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 JTBC 방송은 "미쳤다"고 하기에도 좀 기이하다. JTBC가 트는 내용은 그래봤자 남의 언론 기자가 고인과 인터뷰하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손석희를 시청하고 있는데 손석희는 다른 언론에서 기록한 파일을 청취하고 있다! 그리고 난 그런 손석희를 보고 있는, 극중극 또는 액자소설 같은 내 생전 최고의 특이한 뉴스였다. 
 

JTBC가 파일을 경향이나 검찰에 돌려줄 수 없을 만큼 특종 충동을 느꼈을 것이라는 점은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 더 보유하고 있다가 터트리는 일 역시, 그게 적절한 경우에 올바르게 진행될 일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십보 양보해서 반드시 나쁜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치자. 

하지만 언론간 특종 대결이 뜨겁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JTBC는 남의 취재물을 어쩌다 얻어, 그것도 경쟁 언론이 게재하기로 한 시점 이전에 번개처럼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은 상도의에도 맞지 않다. 또다른 언론사의 한 기자는 "내가 경향처럼 당했다면 살인 충동을 느꼈을 것"이라며 언론 현장 종사자의 애환과 고충을 설명하기도 했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한다
그 거꾸로가 아니라


만에 하나 JTBC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고 그것이 나중에 드러난다면 논란은 다소 수그러들지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에 일을 푸는 방법이 단 하나밖에 없는 경우는 쉽게 상정할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리는 뿌리를 내린다. 윤리는 불가피성에 빠지지 않으며 여러 가능성에 열려 있어 상상력과도 호응한다. 

JTBC에게 무슨 목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한다. 손석희 아나운서가 J보도부문 사장에 취임한 이후 개혁적이고 비판적인 언론으로 부상해온 JTBC가 최대의 암초를 만났다.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든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고인의 유족'을 무시한, 언론계의 의리와 상도덕을 저버린 대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선 경향과 유족들은 JTBC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간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찾아온다. 그 사건 이후 최선을 다하는 보도로 국민들의 신뢰를 받아온 JTBC의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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