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경우: 새정련 승리, 새누리당 이탈, 진보정당 약진

광주서구 국회의원 재보선은 천정배의 압승이다. 50% 득표율을 넘어섰다. 광주전남 유권자들에게 경이를 느낀다. 이들은 진보정당 국회의원을 뽑기도 하고 무소속을 택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새누리당 이정현까지 당선시켜주었다.

민주당과 안철수의 통합도 호남의 마법이었다. 그들은 정권교체를 위해 (당시만 해도) 더 경쟁력 있어 보이는 안철수를 민주당보다 우위에 놓을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안철수에게 "따로 놀면 재미 없을 것"이라는 시그널도 함께 보냈다.

보통 여러 정당이나 인물을 놓고 저울질하면서 몸값을 불리는 전략은 충청권 유권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났다. 이들은 자민련~자유선진당류의 정당과 민주당, 한나라당(새누리당)을 번갈아 지지하면서 영남과 호남 사이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했다.

호남의 이변을 거쳐 영남에게 돌아오는 시선

이제 충청보다 인구가 더 줄어든 호남에서 이런 저울질을 하고 있다. 호남은 대선을 빼고는 한쪽에 몰아주지 않는다. 오히려 대선 이전에 여러 곳을 분산해 지지하면서 대선판의 기초를 짠다. 이번에도 '정권교체를 위해 새정치연합부터 혼 내자'는 천정배(이하 사진)의 메시지에 호응했다.



이제 자연히 시선이 영남에 쏠릴 차례다. 비록 과도하게 부각되기는 했지만, 호남과 영남은 맞수로 비쳐졌고 때로는 짝패였다. 박정희 정권 말기 부산과 마산에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고,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이 뜰 무렵 광주에서 분연히 나섰으며, 결국 1987년 부산과 광주와 대구가 함께 일어나 독재 헌법체제를 종식시켰다.

영남과 호남의 일당 독주는 상대방의 행태를 핑계로 하여 이뤄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전남에서 잇따라 일어난 이변은 영남에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남판 '천정배', '이정현'은 가능한가?

물론 영남은 이 질문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만큼 영남은 뒤쳐져 있고 불통이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다시 물어본다. 영남판 천정배는 가능한가? 영남의 이색적인 결단은 이뤄질 것인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천정배는 호남 일당독주에 균열을 냈다. 영남에서 새누리당 독주에 누가 균열을 낼 것인가.

둘째, 천정배는 친정을 뛰쳐나왔다. 영남에서 누가 새누리당을 나와서 도전할 것인가. 셋째, 천정배의 당선은 전국적으로는 새누리당-새정치연합의 양당 과점정치에 균열을 냈다는 의미가 있는데 영남에서 제3세력의 부상은 가능한가.

내년 총선에서 영남 일당 독주에 균열을 낼 강력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로는 김부겸 전 대구시장 후보가 꼽힌다. 부산경남이 아닌 대구 인사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대구 지역에서는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나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이 일당 독주에 도전해왔으나 번번이 좌절한 바 있다.

일당 독주 균열... 김부겸이 가장 유력한 후보
경북은 인물란... 부산경남은 추가적 진척 필요해


그러나 김부겸은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40%를 상회하는 득표율을 올리며 경쟁력을 입증했고 자신의 지역 거점인 수성구에서는 권영진 대구시장을 눌렀다. 현재 수성갑 지역구에는 거물급인 이한구 현 국회의원이 불출마 선언을 한 상태. 어느 때보다 대구 지역 야당 국회의원 탄생이 드높다는 관측이 돈다.

김부겸 자신의 전략도 현실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한 방향으로 짜여져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 타파' 슬로건 하에 아쉬운 패배로 전국적 지지자를 넓혔다면 김부겸은 내재적 접근을 통해 민심을 모아나가는 쪽에 가깝다. 그 와중에 '박정희컨벤션센터'와 같은 공약으로 지지층의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한 번 출마 이후 다시 대구를 떠난 유시민 전 장관과 달리 지역안을 부지런히 파고들고 있다.



홍의락 국회의원도 대구 북구에서 지역구 당선을 노리고 있다. 이 지역은 새로 유입된 젊은 인구가 많은 칠곡 지역을 포함하고 있어서 기대를 걸 만하다는 게 지역 새정치연합과 홍 의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신망이 깊은 또다른 야권주자(정의당 조명래)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큰 변수다.

또 홍 의원은 '대구취수원의 구미 이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이것이 대구지역주의에는 편승할 수 있을지 몰라도 취수원 이전을 반대하고 오염원을 없애거나 줄이는 본질적 해법을 제시하는 환경운동단체와는 대조적이다. 홍 의원의 활동이 대안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한 대구취수원 이전이 정작 선거 득표로 연결될지도 미지수다.

경북 지역은 인물란이다. 새정치연합에게 경북 지역은 득표력 뿐만 아니라 인물 경쟁력까지 약한 지역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때문에 선거 때마다 윤덕홍 전 교육부장관이나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내려와서 입후보할 것이라는 예상이 돌기도 한다. 하지만 유력 인사의 낙향 역시 '없던 일'이 되기 일쑤였고 내년 총선에서도 이렇다 할 선전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부산경남 지역은 국회의원을 몇 명 내는 것이 새정치연합의 과제는 아니다. 대구경북과는 달리 여야 균형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있으며 문재인, 조경태 의원 등 현역들이 이미 활동하고 있다. 다만 더이상의 거물급이 나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어렵게 얻은 지사직을 사퇴하고 대선 가도에 나섰다가 참패했고 지금은 활동 지역을 경기도 김포로 옮긴 상황. 

현재로서는 그나마 지난해 경남지사 선거에 나섰던 김경수 새정치연합 경남도당 위원장, 2012년 총선에서 처음 부산행을 택했고 부산시장 후보로 나섰다 중도 사퇴한 김영춘 전 국회의원이 유망주로 꼽힌다. 울산의 경우는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 독주를 뚫을 공산이 매우 낮다.

한편 새누리당에서 어떤 부류가 갈라져나와 신당 또는 무소속으로 출전하는 경우도 영남판 천정배 바람의 한 가능성으로 꼽을 만하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실정상 이것은 실현되기가 매우 힘든 시나리오다. 무엇보다 그럴 만한 세력이 없다.

새누리당 이탈세력 발생은 거의 가능성 없어

새누리당내에서 가장 차별화된 내용을 가진 영남 의원으로는 대구의 유승민 국회의원이 꼽히지만, 그는 새누리당의 원내대표로 중책을 맡고 있어 이탈 가능성이 전무하다.

유 의원은 야권이 제기하는 복지 의제나 경제민주화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고 나아가 오히려 야권보다 앞에서 이를 이끌고 있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도 제법 깊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유 의원이 이런 기조를 새누리당에서 관철하는 데 실패한다고 해서 당을 이탈할 만큼의 결심을 하고 있지는 않다.

친박은 친박대로, 비박은 비박대로 새누리당을 떠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과 가까운 친박이 새누리당에 등을 돌릴 리 없고, 친박에서 비박으로 권력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으니 이를 비박이 놓칠 리도 없다.


그나마 새누리당 공천에 탈락한 인사들이 개별적으로 '무소속 도전'을 하는 사례가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인사가 과연 호남의 천정배에 해당하는 거물급일까. 그리고 당선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마지막으로, 제3세력, 그중에서도 진보개혁적인 세력이 영남 획일주의를 뚫는 경우다. 이 가능성이 그나마 가장 높은 지역은 울산이다. 울산은 조승수, 이상범, 이갑용, 윤종오, 김종훈 등의 진보 구청장을 배출했고, 이중 조승수 의원은 두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분열에 이어 통합진보당/정의당의 분열, 통합진보당의 해산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 지역 현대자동차 노조 등의 무능 탓에 진보정당이 울산에서 성과를 거둘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울산 다음으로 유력한 지역은 경남이다. 홍준표 도지사와 무상급식 중단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투쟁을 벌이는 노동당 소속 여영국 경남도의회 의원(이하 사진)을 탄생시킨 창원, 총선 때마다 고배를 마셨지만 당선가능 지역으로 분류된 거제가 있다. 경남에서는 노동당이 정의당보다도 돋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경남도의회 도정질문에서 설전을 벌이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왼쪽)와 여영국 경남도의회의원(노동당)


내년 총선에서도 거제와 창원은 노동당이나 노동자정치세력화 추진 진영이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선거구에서 1명만을 선출하는, 도의원 선거 규모를 넘어선 총선 지역구에서 의원이 배출될 가능성은 여전히 50%를 밑돈다.

위기의 진보정당... "울산, 경남은요?"


대구 경북에서 진보정당이 성공할 가능성은 바닥이다. 노동자 밀집 지역인 포항과 구미에서도 진보정당은 어느새 새정치민주연합에도 크게 밀리는 모양새다. 대구 북구의 정의당 조명래 전 대구시장 후보가 당선가능성에 가장 근접해있으나, 앞서 거론한 홍의락 의원과의 후보단일화 문제가 걸려 있다.

노동당의 경우 정의당으로의 이탈 흐름 때문에 대구에서 세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녹색당 대구시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달성군에 후보를 내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하기에 따라서 파급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선될 확률은 없다.

이상의 진단과 예측을 종합하면 내년 총선에 '영남판 천정배'가 나올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의원과 조경태 의원이 또다시 당선될 공산은 크지만, 전자는 대선 후보급 정치인이고 후자는 자신의 개인기로 일찍부터 당선되어 의정활동을 하는 처지라 이들의 재선이 새롭게 풀무질할 바람은 없을 것이다.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가 존속된다면, 중앙선관위가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같은 방안이 채택되지 않는 한 영남은 새누리당 독주의 연속일 것이다. 다만 천정배 당선자처럼 당장에 당선되지는 않더라도 "지역의 판도를 흔들 수 있는 중장기적 도전이 중요하다"는 지적은 되새길 필요가 있다.

2018년에 다시 돌아오는 지방선거의 경우 중선거구에서 비-새누리당 후보가 기초의원으로 당선될 여지는 작지 않게 열려 있으며, 광역의원 선거는 비록 소선거구제이기는 하나 국회의원 선거보다는 면적이 작아성실한 지역활동으로 일당 독주를 뚫는 게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선전하려면 2016년 총선에서 근본 판도를 흔들기 시작해야 한다. 위기는 호기 때 싹을 틔우듯, 새로운 찬스도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 기울인 노력을 먹고 자란다. 당선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당은 2016년 총선에서 눈앞의 표보다 지역의 사회심리적 지형부터 바꾸는 모험과 공세를 펼쳐야 한다. 그리고 2018년 약간의 열매를 추수해야 한다. 
 
2012년 구미갑 지역이 반면교사가 될 만하다. 당시 야권 관계자들 일부는 마치 야권 후보단일화만 하면 새누리당을 꺾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 속에서 여러 잡음을 일으켰다. 

꿈은 깨고 긴호흡을 가져야  


막상 두껑을 여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후보의 득표율 합계는 17%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총선 이후 야권 관계자들은 지역활동을 게을리 했고, 심지어는 지역에서 모색되는 대안적인 흐름에 조금도 기여하지 못하는 무능, 무감, 불성실을 여실히 노출했다.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풀뿌리'를 표방한 후보는 모두 패했다. 풀뿌리와 괴리된 새정치연합 역시 세월호 역풍을 입고도 지역구 후보 4명 중 1명만이 당선되었다.

천정배의 당선은 그 개인의 노력도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쌓아온 호남정치의 자존감, 일당독주를 벗어나려는 시민사회의 노력, 여러 당을 교차해서 지지함으로써 더욱 몸값을 올리는 광주 유권자들의 정치력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영남에, 특히 대구경북에는 이것들이 몇 가지나, 또 얼마나 갖춰져 있는가.

공 한번 만져본 적 없이 허공에 연신 헛발질만 날리던 이들은 조기축구회 시합에서도 이기지 못한다. 이걸 알고, 그간의 한계를 실천적으로 극복해야 영남도 비로소 화끈하게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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