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독립투쟁에서 제국의 편에 섰던 이들의 그림자

 

“신의 이름으로” 영화 포스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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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카뮈와 지네딘 지단의 공통점 찾기

 

알베르 카뮈(1913~1960). <이방인>과 <페스트>, <시지프 신화>를 쓴 프랑스의 작가

지네딘 지단(1972~현재). 프랑스의 전 축구선수, 현 축구 감독

문학을 애호하는 이들과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각각 모를 리가 없는 이름들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일단 프랑스 국적을 가진 이들이다. 여기에 추가로 덧붙이자면, 두 사람 다 ‘알제리’와 관련이 있다. 알제리라면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와 면한 국가 아닌가? 프랑스 국적의 둘이 왜 알제리로 묶이게 된 걸까?

카뮈는 ‘피에 누아르’라 불리는,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백인이었고, 지단은 그의 부친이 ‘아르키’ 일원이라는 의혹을 받던 북아프리카 원주민 베르베르 계열 백인이다. 즉 카뮈는 전형적인 프랑스인의 외모와 혈통을 가졌지만 식민지 시절 알제리에서 태어났고, 지단은 아랍계로 분류되지만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이다. 두 사람의 서로 겹치지 않는 삶에서 유일하게 교차되는 부분이 ‘프랑스’ 국적과 ‘알제리’와의 연관성이다. 왜 이런 연결고리가 생겨난 걸까?

 

“아르키” 영화 스틸컷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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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제리 독립전쟁의 명암

1954년부터 1962년까지 프랑스는 북아프리카의 거대한 식민제국 중에서도 ‘고유의 영토’라 칭할 정도로 핵심적인 지역이던 알제리의 독립을 놓고 FLN(알제리 민족해방전선)과 전쟁상태를 이어간다. 2차 세계대전에서 초기에 독일에게 패해 무력 점령당한 프랑스는 그럼에도 식민지를 유지하려 했다. 이는 프랑스뿐 아니라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에게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식민지 독립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프랑스는 식민제국을 유지하고자 결의했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물론 식민지 독립운동 세력과 비교하면 썩어도 준치라고 세계적인 강대국이던 프랑스의 군사력은 압도적이긴 했다. 하지만 독립운동의 기운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기엔 턱없이 모자란 힘이었다. 2차 대전 당시에도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 본토 대신 식민지에서 저항한 자유 프랑스군의 주력은 식민지인 출신들이었고 이들은 전쟁에 참여해 피를 흘린 대신에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게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급한 불을 끈 식민 종주국은 식민지인에게 했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랐다. 프랑스의 위상이 추락했음을 목격했고 현대적 군사훈련과 실전 경험을 쌓은 식민지 출신 참전용사들이 대거 독립투쟁에 참여하면서 어제의 전우가 서로 총부리를 맞대는 상황이 빈발했다. 우선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식민지(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에서 독립전쟁에 시달렸다.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는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배하는 등 무력함을 드러내며 미국에 바통을 넘기고 물러서고 말았다. 아시아에서 거점을 잃은 프랑스에게 식민지 전쟁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대영제국에 인도 식민지가 차지했던 위상에 비견되는 알제리 독립전쟁이다.

 

“아르키” 영화 스틸컷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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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도 프랑스 식민제국에 중요한 가치를 지녔지만, 알제리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알제리는 지중해 바로 건너인 데다 1830년대부터 100년 넘게 지배하면서 방대한 식민지 중 유일하게 식민지 총독이 아니라 프랑스 국내와 같은 지자체 행정이 이뤄질 정도로 겉으론 ‘프랑스화’된 지역이었다. 인구 다수는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와 아랍계 원주민이었지만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이주한 다수의 유럽계 백인과 유대인 등도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원주민에 대한 분리정책으로 상당수의 부족은 친 프랑스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도 했다. 워낙에 중요한 식민지이다 보니 앞선 인도차이나 전쟁에는 최대 15만 명을 투입한 프랑스군은 알제리에는 50만 명 이상을 동원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치 요구를 묵살하고 탄압으로 일관하는 프랑스에 맞서 독립투쟁은 점점 과격화되고 온건파는 힘을 잃어갔다. 결국, 독립이냐 식민지 유지냐의 양자택일로 치닫게 된 알제리 독립전쟁은 200만 이상의 알제리 민간인의 희생이라는 끔찍한 희생을 치렀다. 프랑스의 잔혹한 탄압은 국내에서도 좌우 분열과 극심한 대립으로 이어져 쿠데타가 횡행하고 극우파의 테러가 빈번할 정도였다. 결국, 오랜 전쟁에 지친 프랑스는 2차 대전 구국영웅인 드골 장군이 추대되면서 해방전선과 1962년 에비앙 협정을 맺고 알제리의 독립을 승인하고 만다. 지독한 전쟁의 참상 때문에 독립한 지 60년이 된 지금도 알제리와 프랑스는 썩 좋지 않은 관계로 남은 상태다.

 

◆ 단지 ‘친일파’의 알제리 판으로만 보기 힘든 ‘아르키’의 운명

알제리 독립전쟁은 단순히 지배자 프랑스와 식민지 알제리와의 대립만은 아니었다. 독립전쟁에 관해 고전이 된 <알제리 전투>를 통해 그 잔혹한 전쟁 실상에 대해서는 접근할 수 있지만, 해당 주제는 더없이 복잡다단한 색채를 띤다. 필립 포콩 감독의 <아르키>는 그 혼돈의 심층으로 앞뒤 재지 않고 밀고 들어간다.

독립전쟁이 프랑스 정부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 사이에서 격화되기 시작할 때, 알제리 현지에는 두 부류의 경계인 집단이 존재했었다. 하나는 ‘피에 누아르’, 또 하나는 본 작품의 제목이 된 ‘아르키’ 집단이다. 피에 누아르는 스페인의 중남미 식민지에서 태어나 자란 유럽계 백인 ‘크레올’처럼 식민지 알제리에서 나고 자란 프랑스인(여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이민들까지 포함)을 이른다. 이들에겐 알제리가 곧 프랑스였다. 알베르 카뮈가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 패망 후 귀국한 ‘히키아게샤’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 인구는 백만 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아르키가 있다. 알제리를 수백 년간 프랑스가 지배하면서 부족별로 분할관리체제를 수립해 놨다. ‘분열시켜 지배하기’는 식민제국의 오랜 통치수단이게 마련이다. 무려 26만 명에 달하는 친 프랑스 보조군/민병대가 프랑스 식민지 군의 지원전력으로 활용되었다. 이들이 독립군에겐 우리네 친일파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르키” 영화 스틸컷 이미지
“아르키” 영화 스틸컷 이미지

 

영화 <아르키>는 극영화 형태를 취하지만 드라마적 서사보다는 르포르타주 형식을 취한다. 프랑스 중위가 지휘하는 아르키 민병대가 시기별로 벌이는 작전행동과 에피소드들이 작전 일지와 함께 전개되는 가운데 프랑스와 민족해방전선 쌍방 모두 점점 가혹해져 가는 전쟁 양상, 아르키 민병대에 참가한 개별 캐릭터들의 고민과 상황, 휴전협상 과정에서 버림받기 시작한 아르키들의 군상이 건조하게 보고서처럼 펼쳐진다.

역사책에 기록된 대로 프랑스는 남겨두면 보복 대상이 될 게 확실한 아르키를 버리고 철수한다. 3만 5천에서 8만 명의 아르키가 독립과정에서 해방전선과 지지자들에게 분풀이로 학살된 걸로 추산된다. 약 4천 명은 프랑스군에 입대해 합법적으로 알제리를 떠났고 4만 명은 그들을 지휘하던 프랑스 장교들에 의해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만 명 정도가 밀입국 경로로 프랑스로 피신했다. 하지만 운 좋게 프랑스로 탈출한 이들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 대부분은 프랑스 사회 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지네딘 지단은 그 후손 중 자수성가한 극히 드문 존재다.

영화는 고발의 자세를 명확히 견지한다. 폭력이 축적되며 나날이 쌍방 모두 잔인해지고 파괴되어가는 알제리의 당시 상황, 아르키들의 복잡한 생각, 프랑스의 후안무치한 배신 과정 행태들이 재연의 방식으로 조합된다. 자신들을 믿고 식민제국 편에 선 현지 주민들을 나 몰라라 한 프랑스의 처사를 잊지 않은 아르키의 후예들은 프랑스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도피하긴 했지만, 여전히 프랑스 사회 내에 동화되지 못한 채 이슬람 근본주의에 유혹되는 등 업보로 남아 있다.

 

“신의 이름으로” 영화 스틸컷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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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조선을 고향으로 태어난 일본인을 닮은 ‘피에 누아르’

피에 누아르 역시 독립과정에서 고향을 잃고 이산자로 전락하고 만다. 알제리 독립전쟁 당시 어디에도 끼지 못한 피에 누아르의 시선을 반영한 작품으로 그 자신도 피에 누아르였던 알베르 카뮈의 단편 <손님>이 있다. 이 소설을 극화한 영화도 있다. <반지의 제왕>의 ‘아라곤’으로 너무나 유명한 배우 비고 모텐슨이 주연한 <신의 이름으로>이다.

영화의 배경은 이제 막 알제리 독립전쟁이 본격적으로 격화되기 시작하던 1954년이다. 2차 대전 참전용사 출신인 피에 누아르 ‘다루’는 원주민 아이들을 가르치는 작은 학교에서 홀로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홀몸에 외딴 학교에서 고독한 일상을 보내지만 별로 부족함 없어 뵈는 소박한 생활을 누린다. 하지만 전쟁의 폭풍우는 다루에게도 곧 들이닥친다.

해방전선과의 충돌로 인원이 모자란 식민당국에선 곡식을 훔치려던 친척과 다툼 끝에 살해한 현지 주민 ‘모하메드’를 행정관청이 있는 도시 팅기트로 인도할 책임을 그에게 떠넘긴다. 살인범이 된 모하메드를 팅기트로 데려간다면 사형당할 게 빤하기에 다루는 영 내키지 않지만, 원수를 갚기 위한 피해자의 친족들이 학교 건물을 위협하자 다루는 어쩔 수 없이 모하메드와 함께 길을 나서게 된다. 모하메드 역시 부족의 전통 때문에 어차피 자신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며 순순히 팅기트로 가겠다고 한다.

 

“신의 이름으로” 영화 스틸컷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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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선 그렇게 길을 떠난 두 사람이 팅기트 인근에 다다랐을 때 다루가 모하메드를 풀어주지만 끝내 모하메드는 팅기트로 자기 의지로 향하고 만다. 그리고 돌아온 다루에겐 친척을 식민당국의 처벌에 넘긴 죄를 묻겠다는 협박 글이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영화는 단편에 불과한 소설의 경계를 대폭 확장한다. 함께 팅기트로 향하던 둘은 프랑스군과 교전 중이던 민족해방전선 게릴라 부대에게 잡히고 그곳에서 다루 자신이 지휘관으로 있던 부대원들과 재회한다. (실제로 2차 대전 당시 자유프랑스군에 복무하던 식민지 원주민 부사관들이 대거 반군에 합류해 지도부를 이뤘다) 그리고 연이어 프랑스군과 전투가 이어지고 둘은 자유의 몸이 되지만 소설의 결말처럼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소설과는 좀 다르지만 다루의 앞날에는 그가 누려왔던 소박한 생활은 더 이상 가능할 수 없게 된 셈이다.

100만 명에 달하던 피에 누아르들은 식민지 알제리 사회의 기득권 집단이었고, 프랑스군에게 대부분 협조해 민족해방전선과 적대했기에 알제리가 독립하자 고립무원에 처한다. 물론 소수의 피에 누아르들은 해방 전선에 동조하거나 지지하기도 했지만 잔혹한 전쟁 과정에서 과격화된 민족해방전선은 피에 누아르를 감싸 안거나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 역시 이들을 외면하고 만다. 결국, 피에 누아르들은 수백 년간 일궈온 재산과 고향을 뒤로 한 채 몸만 간신히 프랑스로 넘어와 지중해 연안에 이주하지만, 프랑스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불만세력으로 남는다. (이들이 주로 정착한 지역은 현재 프랑스 극우파의 가장 열광적 지지 지역이 되었다)

알베르 카뮈는 알제리 독립은 반대했지만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자치 확대를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파에선 그를 우유부단하다고 욕했고 민족해방전선에선 식민지 유지를 옹호한다고 비난당했다. 카뮈는 전쟁이 끝나기 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세계적 작가의 고향 알제리에선 그를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알제리 사회에선 지워진 존재가 되고 만다. 소설과 영화 속 다루의 운명 또한 그 창조자인 카뮈의 자취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지금 현재도 여전히 피에 누아르 일부는 알제리 내 재산 환수요구를 하거나 프랑스 내 역사 반성을 부정하는 등 사회불안요소가 되고 있다.

 

“신의 이름으로” 영화 스틸컷 이미지
“신의 이름으로” 영화 스틸컷 이미지

 

◆ 식민주의의 병폐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강력하다

남의 나라 옛날 역사 이야기로만 보기에는 프랑스와 알제리의 현재에 그 잔존 영향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알제리는 독립을 쟁취했지만, 식민지 시절 프랑스 본국의 자원 수탈에 맞춰진 경제구조 개선이 요원한데다 독립전쟁 과정에서 생긴 상흔으로 인한 사회갈등이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프랑스의 의회정치를 위협하는 극우 정치세력들, 그중 대표 격인 ‘국민전선’의 전 대표 장마리 르펜은 실제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진압군 장교로 복무했던 경력의 소유자다. 극우적 사고를 견지하는 정치세력들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토양을 들여다보면 알제리 전쟁의 그림자가 21세기에도 프랑스 사회 내에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나라가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는 경과 속에서 무수한 희생을 겪었다. 하지만 착취와 수탈에 맞춰진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데 애를 먹고 여전히 저개발 상태로 정체된 나라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독립과정에서 빚어진 혼란으로 수많은 디아스포라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리의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난 일본인, 먹고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던 재일조선인이나 만주로 간 조선족 등은 그런 디아스포라의 산물이다. 그들이 처한 개별적인 수난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식민주의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수반된다.

‘아르키’나 ‘피에 누아르’는 프랑스 내에서도 금기시되어온 소재이지만 근래 조금씩 이들의 운명을 다루는 영화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볼 소지도 적지 않지만, 가혹한 시대 앞에 개개인이 겪은 부당한 운명에 대해 찬찬히 돌아보고 재평가하는 것이 식민주의를 벗어나는 마지막 단추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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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 영화 포스터 이미지

 


작품 정보

 

아르키 Harkis, Les Harkis

2022, 프랑스, 벨기에, 드라마·SF

개봉 예정 없음, 83분, 청소년관람불가

감독 필립 포콩

주연 테오 숄비, 모하메드 엘 아미네 무포크, 피에르 로틴, 야닉 셰아, 오마르 불라키르바

2022 75회 칸영화제 감독주간

2022 27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신의 이름으로 Far from Men, Loin des hommes

2014, 프랑스, 드라마

2016.03.03. 개봉, 101분, 15세 관람가

감독 다비드 욀오팡

주연 비고 모텐슨(다루 역), 레다 카텝(모하메드 역)

수입 및 배급 (주)누리픽쳐스

2015 뮌헨국제영화제 프리츠 게를리히상

* 왓챠, 웨이브, 티빙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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