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기사가 꿈이었던 장기수, 카메라를 들다

 

“달과 닻”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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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분단이 당연시되는 시대에 여전히 분단 사슬에 묶인 이들

현대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 요소가 남북 분단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격동의 해방 이후 8년(1945-1953)을 거치는 과정에서 분단이 굳어진 지 70년이 지난 상황이다. 어느새 한반도가 2개의 국가로 나눠진 현실은 기정사실화되어간다. 기성세대는 (흡수통일이냐 평화통일이냐) 방향성을 막론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에 대해선 당연히 이뤄져야 할 사안으로 간주했지만, 이후 세대에겐 분단 상태가 더 익숙해져 버린 지 오래다. 이제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비정상’에서 ‘정상’ 상태로 받아들여진다는 여론조사는 그리 새롭지 않다. 특히 젊은 세대로 갈수록 남북 분단 이후 시간이 지나며 심화하는 이질감과 함께 통일 직후 벌어질 급격한 사회 변화와 북한 지역 부양 책임에 대한 두려움은 커진다. 군사적 측면에서 안보위협만 배제 가능하다면, (혹은 현 상황보다 다소 완화만 된다면) 지금 상태로 ‘영구분단’도 차악은 된다는 인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서 남북 분단 고착화 이전까지의 격동기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얼마 남지 않았다. 교육과 학습으로 물려받은, 즉 이식된 기억을 제외하면 ‘남한’을 곧 ‘대한민국’이라 여기며 자본주의 고도성장으로 형질이 변화된 현대 한국인 사이에서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한민족’이란 개념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응원 때에만 발현되는 의식에 불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그렇게 남북 분단 이후 상호 독자성이 심화하여가는 양 국가 틈에 낀 이들이 오히려 더 ‘민족’이란 개념에 고심하는 면모가 종종 발견되곤 한다. 대표적 예시가 재일조선인의 의식구조일 테다. 여전히 분단의 극복이 현실적으로 그들 삶의 조건에 결정적 차원이 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동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 (분단 고착화 이전 시기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한국인에게서 유사한 지점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현대 한국인이 ‘통일’을 단기적으로는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세대를 초월해 여전히 분단 모순의 피해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이들의 존재는 더욱 낯설어져만 간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적으로 체화한 ‘민족’과 ‘분단’을 우리가 함부로 재단할 순 없는 노릇. 오히려 우리가 망각해버린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인간 타임캡슐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분단체제 모순에 가장 강하게 질곡 당한 이를 들자면 ‘비전향 장기수’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로 체제 대결 차원에서 남북은 꾸준히 비공식적인 상호 침투 공작을 거듭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군’ 혹은 ‘간첩’이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랄 이들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과거 국내에서 체포된 이런 부류는 가혹한 이중삼중 처벌의 대상이었다, 그 결과 실제로 인명피해를 낸 경우라면 여지없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곤 했다. 즉 사형되지 않고 수감된 이들이라면 실제 남한 사회에 미친 피해는 거의 전무한 수준이라 봐도 좋은 정도다. 아예 본격적으로 적대 국가라면 부정기적인 포로 교환이나 인도적 송환 기회라도 얻을 텐데, 서로를 ‘괴뢰정권’으로 규정하다 보니 이들은 송환 대신에 체제 우위를 선전하기 위한 ‘전향’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과도한 장기수감은 물론, 만기 출소 이후에도 사회안전법 등의 명목으로 재수감되거나 공안의 감시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들이 바라던 ‘조국’으로의 송환은 언급조차 힘들었다.

변화의 바람이 살짝 분 건 6.15 남북정상회담 개최 등 남북 관계가 비교적 양호하던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2000년, 63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북한으로 송환되기에 이른다. 1차 송환이 이뤄져 화제가 되자 남은 이들 역시 2차 송환의 기대에 부푼다. 하지만 국군 포로 송환 의제가 맞교환되지 못하자 남한 내 반대 여론이 들끓고 남북 대화 경색 같은 정세 변화가 그 기대를 좌절시켰다. 그렇게 2차 송환은 20여 년째 미뤄지고 있다.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기구한 사연은 꾸준히 소개되고 있지만 화답하는 인도적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남북 체제 경쟁이라는 기본 전제하에서 해당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 하지만 카운터 파트너인 북한 측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 포로 문제부터 일절 맞교환 제의를 수용한 바 없기에 국내에서 상호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장애물로 존재하고, 정치권은 이 문제를 부담스럽게 여긴다. 그런 가운데 고령으로 점점 줄어드는 생존 미송환 장기수들의 존재는 잊혀 간다.

 

“달과 닻”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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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를 다룬 영화화 중 변주로 등장한 <달과 닻>

방아란 감독의 다큐멘터리 <달과 닻>은 이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다루는 일군의 기록영화 부류에 포함된다. 하지만 본 영화는 유독 관련 작품 중에도 묻힌 편이다. 2018년에 공개되었으니 햇수로 5년 차지만 극장 개봉은커녕, 몇몇 영화제 상영 외에는 대중적으로 알려질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하지만 관련 소재에 관심 갖고 그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챙겨본 이들에겐 이 영화 속 몇몇 장면과 배경, 인물은 제법 낯익다. 이제 고령으로 몇 사람 남지 않은 이들이 모여 사는 공동 주거가 영화 속 주요 배경이기도 하고, 다른 동종 작품들에서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장면들이 본 작품에서도 공유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소한 제목에 비해서는 기시감이 상당한 느낌이다.

해당 소재와 등장인물을 접하게 될 극소수의 관객은 아마도 1순위로 김동원 감독의 <송환> 연작을 떠올릴 법하다. 특히 작년에 개봉했던 <2차 송환>과 이 영화 <달과 닻>은 떼어내려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소재와 배경이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꾸준히 인도주의 관점에서 북으로의 송환을 요구하며 관련 활동을 펼치는 비전향 장기수들을 소개하는 출발점을 공유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작품과 함께 김동원 감독의 2003년 작품 <송환>과 2022년 작품 <2차 송환>을 함께 보기를 권하는 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질문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있다. <송환> 연작을 봤다면 굳이 <달과 닻>까지 봐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일단 김동원 감독의 <송환> 연작에서 주요 인터뷰 대상이자 감독의 파트너 격이던 조창손, 김영식 선생 대신에 이 영화는 그 곁에 늘 머물던 말수가 적은 박희성 선생에 밀착한다, 비슷비슷한 풍경과 사건의 연속이더라도 주인공 격인 캐릭터를 교체하는 것만으로 꽤 다른 결이 조성된다. 관련 소재를 다룬 타 작품들을 주의 깊게 봐온 이들이라면 늘 주변에 서 있던 박희성 선생에겐 과연 어떤 사연이 감춰져 있을까 궁금해질 법도 한데, 본 작품에서 이 인물에 주목해 조명하면서 미스터리가 풀리는 셈이다.

여기에 추가로 방아란 감독은 김동원 감독이 <송환> 작업 당시에 처했던 난제를 미세하게 다른 각도로 안은 채 작업에 임한다. 우선 공통점으로는 인터뷰 대상이자 영화의 주인공이라 할 장기수들의 정치적 입장에 제작진이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측면을 들 수 있겠다. 한반도 통일과 민족주의 관점에서 장기수들과 관점을 공유하는 태도로 작업에 임하는 경우 제작 과정에서 전폭적인 동의와 협조를 구하는 대신 일정 비율의 관객에겐 불편할 수 있는 정치적 구호나 역사관이 노출되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 반대로 철저히 남한 체제 편에서 공격적으로 취재에 임하면 기록 작업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국내 독립 다큐멘터리계에선 <애국청년 변희재> 정도를 제외하면 해당 시도는 완성된 사례가 드물다. 그 외엔 차마 다큐멘터리라 봐주기 어려운 ‘프로파간다’ 뿐이다)

그런 양 편향을 벗어나 인도적 자유주의 관점에서 있는 그대로 그들의 삶과 주장을 전달하되 긴장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송환>과 <달과 닻> 제작진 모두 공히 공유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경력+중년+남성) 김동원 감독이 일정 부분 등장인물들과 갈등을 감수하고 우직하게 감독 자신이 설정한 방향을 고수하던 것에 비교해 (신인+청년+여성) 방아란 감독이 동일한 방어력으로 버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신에 감독은 차분하게 경청하는 태도로 출발한다. 여기에서 박희성 선생과 감독의 상성이 잘 들어맞는다. 어떤 측면인지는 후술하겠다.

 

“달과 닻”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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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 키드, 장기수가 되다

박희성 선생은 1962년에 남파공작원 귀환을 위한 연락선의 기관장으로 ‘당’ 사업을 충실히 수행하던 중 남한 군경에 체포된다. 선생은 경기도 화성 남양만 바닷가에서 총을 2발 맞고 목숨은 간신히 건졌지만, 간첩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27년 동안 악명 높은 서대문형무소와 광주교도소 등을 오가며 복역한다. 1988년 출소 후에도 낯선 남한 생활을 견디며 끊임없이 송환을 요구하는 중이다. 이제 어느덧 장기수감 옥중생활보다 출소 후 남한 땅에서의 유배와도 같은 생활이 훨씬 더 길어졌다. 그나마 미송환 장기수 중 젊은 축이라지만 이제 90살에 가까워졌다. 귀향을 기다리며 고령에도 정정하게 심신을 관리했다지만 이제 이곳저곳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박희성 선생의 영화 속 첫인상은 수수하고 차분하다. (<송환> 연작에서 맹활약하는) 동료이자 동거인인 김영식 선생의 화끈한 면모에 비해 ‘강철 같은 신념의 강자’가 연상되진 않는 외모다. 하지만 그는 소리 없이 강하다. 어린 여성 감독이 기특하기도 하고 적적하기도 하던 참이라 선생은 열정적으로 자신의 ‘공화국’을 향한 신념과 북한체제의 정당성을 설파한다. 김동원 감독에 비해 인생 내공 한창 짧은 방아란 감독은 자칫하다간 계몽 대상이 될 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감독은 돌파구 겸 승부수를 시도한다. 자신의 사연과 사상을 펼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대상에게 카메라를 덥석 쥐게 하는 것이다. 인터뷰 도중에 얼핏 들었던 선생의 사연, 당 사업에 뽑히지 않았다면 영사기사가 꿈이었다는 청년 시절의 일화를 용케 포착해낸 것이다.

이 순간 갑자기 영화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에 대한 한 ‘시네필’의 회고담으로 전환된다. 선생은 자신이 청년 시절 평양에서 접했던 소련을 포함한 동구권 영화들을 침이 마르도록 신나게 예찬하며 문화예술론을 펼친다. 당시 사회주의권 영화의 예술적 완성도를 칭송하다가도 그 귀결은 늘 항상 계몽주의적 결론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는 아득한 과거의 추억이 되어버린, 한 문화청년의 회고담이 세월의 풍화로 인해 세부적인 기억의 재현으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캠코더와 카메라의 사각 프레임 속에 저장되는 대상이던 선생에게 과거 ‘시네마 키드’의 꿈을 순간적으로 되살려주려는 듯 감독 스스로 무장해제 후 장비를 넘기는 순간은 본 작품만의 독자성을 천명하는 분기점이다.

그렇게 늘 누군가가 메아리 없는 외침을 거듭해온 자신들을 촬영해 주기만 기대하던 비전향 장기수가 직접 기록자로 재탄생한다. 그런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선생은 그동안 보여주던 일관성에서 벗어나 흥미로운 면모를 살짝 드러내기 시작한다. 감독의 카메라를 잠깐씩 손에 쥐던 선생은 사양은 낮더라도 직접 휴대할 수 있는 캠코더를 구하고자 한다. 오랜만에 쇼핑리스트(?)를 갖고 풍물시장을 방문한 그는 값싼 중고 캠코더를 수소문하는 풍경은 이채롭다. 보고 있노라면 더 나은 사양의 촬영 장비를 선물해 드리고픈 마음이 물씬 생겨날 만큼.

이제 직접 촬영 활동에 나선 선생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열정적으로 예찬하던 사회주의 영화의 우월성 대신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자신과 동료들의 귀환 촉구 활동을 기록하게 된다. 물론 손이 좀 흔들리긴 해도 굳건한 사상은 꿈쩍도 안 한다. 이 대목에서 박희성 선생이 젊을 적 품었던 꿈을 한참이 지나 예상 밖의 방식으로 구현해가는 광경을 살짝 기대해 보긴 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발랄’한 상상을 하기엔 선생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혹여나 그가 남한 땅에 정착해 통일운동을 펼치거나 늘그막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영화 제작에 도전했더라면 일종의 ‘극중극’ 형태로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은 너무 이기적인 것만 같다.

 

“달과 닻”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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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청청한 ‘달’ vs 60여 년 전 이 땅에 내리던 ‘닻’

이야기는 다시 전형적인 장기수 선생들의 활동 소개로 회귀하는 듯 전개된다. 하지만 감독은 두 번째 분기점을 기어코 끄집어낸다. 선생은 당에서 내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태어난 지 1년 4개월 된 아들 동철 군과 아내 이정자 씨를 북에 두고 남으로 향했었다. 그 아들이 1961년생이니 어느덧 환갑이 넘어버렸다. 선생은 아내의 얼굴은 20대의 젊은 모습, 아들의 얼굴은 그저 포대기에 싸인 갓난아기로만 기억할 뿐이다. 여기에서 그는 너무나 평범한 인간으로 비로소 재등장하게 된다. 애써 신념의 강자를 자처하며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의 근황조차 수소문해 본 적 없다지만 그립고 염려되지 않을 리 없다. 자신은 당원이니 ‘당’이 잘 돌봐주고 있을 거라며 강변하지만 언뜻 엿보이는 표정은 그저 평범한 이산가족의 그것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엇갈렸던 장소이자 자신이 처음 밟았던 남한 땅, 즉 자신이 총상을 입고 체포된 그 해변에 이른다. 제아무리 신념의 강자라도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무심한 듯 달은 밤하늘에 휘영청 밝게 떠 있었다. 그는 등을 돌린 채 하염없이 달빛을 응시한다. 감독은 감히 그 순간에 끼어들지 못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어디 있으랴. 그저 소리 없이 흐느끼는 한 노인의 형상이 뒷모습으로 표상된다. 국내 학생영화감독들이 그토록 추종하는 다르덴 형제 전매특허라는 사연 가득 담은 ‘등판’이 오롯이 여기에서 구현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박희성 선생은 말없이 달을 쳐다본다. 그달은 바로 박희성 씨가 연락선을 타고 와 대기하던 날 밤에 비추던 그달의 판박이일 테다. ‘달’은 선생이 장기수이자 사상범으로 결코 포기하지 못했던 이상과 신념을 상징한다. 너무나 고결하고 자긍심 넘치기에 한 인간이 자신의 평생을 희생하면서도 생의 황혼이 저물도록 놓지 못하는 대상이다. 이제는 사상이 자신의 신념과 동기화되어버려 분리할 수도 없다. 거대한 한국현대사의 잔인한 수레바퀴다. ‘닻’은 그렇게 한 개인이 꽁꽁 묶여버린 잔인한 역사의 멍에에 매여 현실을 견딜 수밖에 없는 모양새를 표상한다. 그는 자신이 황홀한 듯 응시하는 달을 따라 가볍게 바람 따라 북의 가족에게로 흘러가고 그가 1962년에 내렸던 닻은 족쇄처럼 그의 발을 붙든다. 그렇게 달과 닻 사이 경계선에 결박된 한 인간이 오롯이 상징화된다. 그렇게 영화는 비극적 역사에 포박된 한 인간의 ‘시지프스 신화’처럼 완성된다.

 

“달과 닻”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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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명되고 토론될 가치가 충분한 영화, <달과 닻>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처음 영화의 간략한 소개 정보를 접할 때는 부디 박희성 선생의 감독 데뷔기가 펼쳐지기를 기대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남북분단이라는 묵직한 앵커(닻)는 그런 몽상이 실현되기엔 너무나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 전심전력으로 부딪혀가며 포착해낸 몇 개의 장면들은 대상을 착취하지 않으면서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색다른 단면을 포착해 내고야 만다. 기구한 운명을 품은 개인이 잔인한 역사와 마주하는 거대한 서사를 관객에게 올곧게 전달하는데 분명 이르렀다.

물론 이 영화의 접근 방식과 태도는 <송환>이 정립한 표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감독은 굳이 민감한 정치적 주제를 끄집어내 논쟁을 벌이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묵묵히 경청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꽁꽁 닫힌 문을 열어내려는 태도를 시종일관 취한다. 한반도 근현대사에 질식된 채 자신에게 오직 유일하게 남은 자긍심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존중하는 게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물론 등장인물들은 화면 안에서 집요하게 정치적 수사를 선전선동하려 시도한다. 그걸 억지로 중단시킬 순 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곳은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땅이니 판단은 관객의 몫으로 아껴놔도 괜찮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 접근법이다.

물론 해당되는 방법론을 취할 때 약간의 위험요소는 발생한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이 땅에서 모진 고난을 겪으며 전향 강요에 맞서다 보니 더욱 견고해진 사상적 신념은 2023년의 한국사회에선 다소 낯설고 호불호 엇갈릴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떤 순간엔 그동안 몰랐거나 일방적으로 수용했던 의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접할 수 있지만, 특정 부분을 수용하기엔 호오가 확연히 나눠질 상황이 곧잘 툭 튀어나오곤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가진 견고한 이데올로기적 태도를 애써 휴머니즘으로만 포장하는 것도 오히려 그들에 대한 바른 태도는 아닐 테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 곳곳에 감춰져 있는 역사의 희생자, 인도주의 관점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이들, 체제 논리에 막혀 기본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환기하도록 북돋는 촉매로서 <달과 닻>은 기존의 해당 의제 관련 영화 중 특기할 만한 ‘변주’로 모자람이 없다.

 

 


작품 정보

 

달과 닻 Moon and Anchor

2018, 한국, 다큐멘터리

미개봉, 72분, 12세 관람가

감독 및 편집 방아란

출연 박희성, 김영식, 강 담, 양원진, 방아란

PD 정수은

촬영 방아란, 박희성, 김혜이, 정수은

내레이션 방아란

 

2019 10회 부산평화영화제 드넓은 푸른공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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