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변화된 노동 형태와 불변의 가치에 대한 교양 가이드

 

전직 대통령,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되다

버락 오바마(1961~). 미국 44대 대통령(2009-2017)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으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40대에 유일 초강대국의 대통령이 된 지라 퇴임하고 나서도 50대라는 한창나이였다. 그래서인지 대개 퇴임 후 공식적인 대외활동을 하지 않고 은퇴 생활에 머무는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는 달리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는 중이다. 특이하게도 그는 방송 활동을 열심히 한다. 그것도 단지 저명인사의 이미지로 간판격으로 출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수준으로 적극적으로 활약한다. 대개 퇴임 후에 명성을 이용해 명예직이나 기업 자문 등을 맡는 거물급 정치인의 행보와는 확연히 차별되는 행보다.

버락 오바마가 총괄 제작을 맡고 스탠드 업 풍자 코미디언 애덤 코노버가 진행을 맡았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애덤 코노버: 정부가 왜 이래?>를 퍽 인상 깊게 본 바 있다. 연방정부의 역할을 어떻게든 축소시키는 데 혈안이 된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에 맞서 대통령 임기는 끝났지만 2차전을 치르려는 듯 오바마는 작심하고 현대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증명하려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었다. 그에 이어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진행을 맡은 새 시리즈를 또다시 넷플릭스에서 선보였다. 4부작 다큐멘터리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이다.

시리즈에서 오바마는 이 프로젝트의 출발 배경을 설명한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지역사회 시민활동가로 오랜 경력을 가진 오바마는 대단한 독서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인상적으로 본 책과 영화의 리스트를 거의 매년 공개하는데 겉치레가 아닌 내공이 확인된다) 그런 오바마가 감명 깊게 읽었다고 소개하는 책이 미국의 방송 진행자이자 작가인 故 스터즈 터클의 1974년 인터뷰 르포인 ‘일-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이다. <일>은 저자가 무려 133명의 인터뷰 상대와 각자가 종사하는 일에 관해 묻고 답하는 내용이다. 단순한 모음집으로 치부하기 쉽지만, 그 포괄 범위는 실로 방대하다. 농부나 광부처럼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이들부터 직업 활동가, 영화평론가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분야를 세심하게 안배했기에 현대 사회가 얼마나 복합적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분야별 노동이 어떻게 사회를 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하는지 고찰한다.

 

‘일-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도서 이미지. 출처 이매진 출판사
‘일-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도서 이미지. 출처 이매진 출판사

청년기에 이 책을 읽고 미국 사회를 구성하는 노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추천사와 함께 오바마는 그 책에서 담아낼 수 없었던 21세기의 새로운 노동을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다루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가 착목(着目) 하는 것은 인공지능이나 로봇, 기계의 발달로 전통적인 노동과 일자리 형태에 격변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불안이 팽배한 현실 상황에 대한 개입이다. 대통령 임기는 비교적 무난하게 마쳤고 많은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도 받지만, 아직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적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갈수록 격화되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염려도 그런 근심에 한몫 더 보태진 것 같다.

 

대통령 시절 미완의 숙제를 여전히 고찰하는 전직 대통령

4편으로 구성되는 각 에피소드는 45~50분 분량, 텔레비전 기준으로 (전/후 광고 분량 고려하면) 딱 1시간 맞춤 편성이다. 버락 오바마가 진행자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는데 핵심 주제는 제목에서 읽히듯 현재와 미래의 노동에 대한 현황 분석과 전망 고민이다. 21세기 들어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팔라졌고 일찍이 제레미 리프킨의 도발적인 제목을 가진 베스트셀러처럼 ‘노동의 종말’을 섣불리 운운하는 시대에 노동의 미래와 사회구조 변화에 대한 고찰이 짙게 깔린다. 대통령 시절에는 전임자였던 공화당의 조지 부시 주니어가 잔뜩 사고를 뒷수습하느라 펼치고 싶었던 정책을 온전히 다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21세기 초,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견제 없이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현할 기회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벌인 양면 전쟁으로 날려버린 데다, 한술 더 떠 자칫 조금만 더 나갔다면 1929년 세계 대공황을 방불케 할 뻔했던 2008년 경제 위기 수습하느라 고군분투하던 오바마로선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일 수밖에 없다. 붕괴 위기에 처한 미국 사회와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오바마 행정부가 일자리 공급과 노동조건 관리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문제의식의 연장 선상에 여전히 서 있는 셈이다.

 

"일_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포스터 이미지(BY 넷플릭스)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포스터 이미지(BY 넷플릭스)

이미 본인 임기 이후로 2명의 대통령이 등장한 상황에서 오바마는 전직 대통령일 뿐이지만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 상당수가 여전히 그를 ‘프레지던트’라 호칭한다. 재임 시기에는 공격도 참 많이 받아냈지만, 후임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워낙에 미국 사회를 분열시켜놓은지라 오바마를 ‘대통령님’이라 호칭하는 이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압도적인 인지도와 사회적 위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오바마는 평범한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쉽게 뚫기 힘든 현장과 인물들을 취재하는 선봉에 선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신이 견지해온 정치적 입장을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통해 십분 반영하려는 의도 아래, 2020년대 현재 급격하게 변화를 겪고 있는 노동의 입지와 일자리 상황에 대한 분석은 그래서 만만치 않은 준비와 방향성을 선보인다.

흥미로운 건 현재 노동시장의 피라미드 구조를 들여다보는 체험을 시청자에게 한눈에 제공하려는 관점과 태도의 일관성이다. 이 시리즈는 21세기 노동의 표상으로 기존의 제조업 대신에 ① 전통적인 서비스업, ② 첨단 정보기술에 의지하는 플랫폼 노동과 긱-이코노미, ③ 돌봄 노동의 현장을 골고루 파헤친다. 이 유형의 노동은 인공지능이나 로봇으로 대체하기 힘들뿐더러, 현재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그 역할과 비중이 확대일로인 분야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그리고 세간의 인식과 달리 노동자의 숙련도가 지극히 중요한 분야들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더 눈길을 끄는 건 노동시장을 이해시키기 위한 접근 방식이다. 3개 분야를 설정하고 그야말로 A부터 Z까지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도 유용하지만, 통합성을 갖춘 해설을 위해 최하층 노동자부터 중간관리자-전문직을 거쳐 최고경영자(CEO)까지 노동시장의 사다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를 취한다. 오바마와 그가 대표하는 정치세력의 사회 인식 및 정치사상을 엿볼 수 있는 설정이다.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관점이 현재 집권 여당인 미국 민주당에서 중도-급진 분파에 해당하는 정치집단의 세계관이라 봐도 무방할 테다.

 

말단 노동자: 노동시장 하부구조의 실태를 조망하다

1부의 시작과 함께 뉴욕 한복판의 유서 깊은 호텔 ‘피에르’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카메라는 손님이 떠난 객실을 청소하는 ‘하우스키퍼’, 유색인종 여성 노동자를 조명한다. 우리가 편하게 서비스를 누릴 뿐 그 준비를 누가 하는지는 볼 수 없는 접객서비스 실무 과정이 펼쳐진다. 눈에 드러나지 않는 해당 업무의 고충이나 천태만상인 ‘진상’ 손님의 행태가 소개되는 부분은 자연스럽게 이목을 끈다. 하지만 특별히 뉴욕의 쟁쟁한 역사 깊은 호텔들 가운데 ‘피에르’를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치열한 시장경쟁 안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조건과 처우를 보장받고 있는 ‘피에르’의 하층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호조건이 노동조합 존재 때문이라 역설한다. 그렇게 노동자 단결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장면은 특히 요즘 한국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물론 노조가 없는 다른 사업장은 이렇지 않다는 강조와 함께 이야기는 이어진다.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스틸 이미지(BY 넷플릭스)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스틸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다음엔 이른바 ‘플랫폼 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이들이 출현한다. ‘우버’ 서비스를 이용해 배달 서비스에 종사하는 노동자 차례다. 대개 다른 직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거나 준비과정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이 업종에 뛰어든 각자의 이유를 설명한다. 그저 장점 혹은 단점에 치중된 이야기 대신에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골고루 소개하기에 신뢰성이 저절로 생기는 해설이다. 각자의 상황과 이유로 배달 서비스에 종사하는 이들은 자신이 처한 조건과 해당 노동에 대한 견해를 차례로 선보인다.

그리고 그들과 비슷하게 개별화된 노동 형태를 취하지만 첨단 정보화 기술의 산물인 플랫폼 노동과는 정반대로 인간의 대면 서비스로 구현되는 업종이 등장한다. 세 번째 현장노동자는 이른바 ‘돌봄’ 영역에 해당하는 가택방문 요양보호사/가사도우미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한국의 요양보호기관 같은 중개기관을 통해 일을 배정받고 가가호호 방문해 활동한다. 초보 도우미 노동자는 단말기에 근무 개시 표시를 까먹곤 한다. 그리고 여러 애로사항이나 위험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낮은 급여가 문제라는 입장을 공통적으로 피력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공통적인 현상으로 들어가는 수고와 품보다 급여가 너무 낮다. 그래서 이들은 자주, 그리고 쉽게 이직한다. 안정된 조건과 처우가 보장된다면 그렇게 잦은 구인난은 없을 것이란 제작진의 관점이 은연중에 스며든다.

 

중간관리자: ‘손발’과 ‘두뇌’를 연결해주는 ‘대동맥’의 고찰

다음 에피소드에선 전편에서 이들과 상대하며 업무를 지시하거나 고충을 해결해 주던 중간관리자들이 주역으로 나설 차례다. 전편에서는 주변 인물이던 이들이 자연스럽게 이번 편에선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대신에 1편의 주인공들이 이번엔 위치를 이동해 주변 인물이 된다. 같은 업무라도 다른 시선과 위치에서 조명하면 색다르게 보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차기 에피소드에서는 ‘전문직’이라 통칭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호텔에선 접객 응대 매니저-총지배인이 순서대로 등장한다. 접객 담당자와 민원 관리 책임자는 노동조합 활동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중간관리자의 고충을 토로하는 이들은 대개 빈곤계층이나 이민자로 자수성가한 이들이다. 과거의 고생과 자손들에 대한 단상을 피력하는 이들과 함께 호텔의 복잡한 단면이 차례대로 소개된다. 한편 우버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을 위해 자율주행기술을 연구/개발하는 스타트 업 기업 ‘오로라’에서는 데이터 관리 매니저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나선다. 그리고 방문요양 서비스 기업인 ‘엣홈’에선 현장을 방문하는 노동자들에게 업무를 분배하고 지시하는 일선 관리자와 회사의 활동을 측면 지원하는 로비스트가 속속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친절히 소개하고 오바마의 질의에 각자의 의견을 피력한다.

여기에서 미국 사회에 특화된 추가 분량이 보다 선명해진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노동자 중 말단으로 갈수록 신규 이민자 출신이나 흑인 등 유색인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여전히 유색인종과 이민들의 몫이 크다는 증명인 셈이다. 그리고 여성노동자의 비율 역시 상대적으로 크다. 흑인과 인도계의 포지션이 상이한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그런 분류를 통해 미국 내 인종갈등의 지형도를 어렴풋이 체감할 수 있다.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스틸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스틸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CEO: 노동시장 격변기에 처한 경영자와 자본가들의 시선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의 친기업 이미지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노동친화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종주국 미국의 거대정당 사이에 사회 시스템 관련 상대적인 온도 차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과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정치집단이기에 오바마 또한 여러 유형의 문제 제기와 함께 상대적으로 친 노동 입장을 피력하긴 해도 기업 활동에 대해 우호적인 건 동일하다. 그런 인식과 관점은 마지막 4부에서 본격화된다.

이제 노동자들의 생살여탈권을 쥔 경영자들이 등장할 차례다. 자율주행기술 스타트업의 최고경영자, 호텔을 인수한 인도의 대재벌 ‘타타’ 그룹 총수, 요양보호기관 창업자가 등장해 오바마와 대담을 나눈다. 이들 기업가의 긍정적인 면모를 비추는 한편 주요 관심사와 기업 활동에 대한 개괄적인 해설을 그는 경청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차례로 민감한 문제를 질문한다. 개별 기업 경영자 각자의 관점으로 분석하는 해당 분야 현안과 의제가 설명된다. 자율주행은 안전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극도로 과잉될 만큼 안전 테스트 임상시험이 축적되어야 한다. 물론 철저하게 안전에 힘쓸수록 비용은 상승한다. 대개 정부의 사회보험체계와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제공한 후 정산 받는 시스템인 돌봄 및 요양 분야는 정부 예산 배정이 기업의 이윤은 물론 존립을 규정하다시피 하므로 이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대변할 로비스트 활동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영자들 간에도 기업 규모에 따라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소규모 신생기업인 돌봄 서비스 회사,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하지만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홍보해 투자 받아야 하는 스타트 업 기업, 그리고 인도에서도 몇 대를 이어온 거대 가족기업의 처지는 같을 리가 없다. 그래서 타타 그룹 CEO의 시각과 스케일은 다른 두 명과는 확연히 차별화된다. 오바마와 함께 타타의 회장은 급격한 사회 변화와 기술 및 환경 격차로 인해 전통적인 노동이 설자리를 잃거나 위축되는 문제에 대해 견해를 밝힌다. 특히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여전히 3억의 절대 빈곤층이 존재하는 인도 굴지의 대기업으로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에 대한 질의에 상세하게 자신의 경영철학과 입장을 표명한다. 이들 CEO는 사회적 의무에 대해 고심하고 자신들의 기업이 그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소개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스틸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스틸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21세기 노동의 변화를 돌아보게 해주는 성실한 정리

그렇게 4부작 다큐멘터리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초반부의 흥미로운 전개에 비교해 마무리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말이긴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양극화와 정치극단주의 대두의 시대에 타산지석으로 활용도가 높은 시리즈라는 데에는 이견이 적을 테다. 극단적으로 자기 집단의 입장에만 매몰되는 확증편향 경향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요즘 한국사회 현실에 더없이 유용한 내용임에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체계적인 조사와 기획 덕분에 20세기 중반 이후 몇 차례의 노동시장 대변동을 통찰할 수 있게 해준다. 2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 1950~60년대 번영의 주역이 된 베이비붐 세대와 그들이 가진 여러 전제조건이 설명된다. 그리고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도입한 뉴딜정책의 중요한 의제였던 노동권 강화와 복지정책 도입 과정을 통해 전대미문의 번영이 가득했다는 논증이 이어진다. 그리고 로널드 레이건 집권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도입이 어떻게 이전의 성과를 파괴하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는지 지적한다.

오바마와 그가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노동자의 처우와 권리에 주목하는 건 합리적 근거를 가진 선택이다. 시민사회가 건실하게 서 있어야 정치가 원활해진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전과 이후가 미국 사회의 결정적 분기점이라고 오바마는 의견을 피력한다. 최상층 경영자와 주주의 이윤이 극대화되면서 노동자와의 소득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중산층이 축소되는 위기, 그리고 부동산 가격의 과도한 상승이 중산층 형성과 계층 이동 기회에 얼마나 큰 해악으로 작용하는지 친절한 해설과 효율적인 데이터 분석으로 드러난다. 그렇게 단지 경제구조를 뛰어넘어 민주주의 시스템 작동에 중핵이 되는 중산층의 존재 의의와 그를 가능케 했던 조건을 역사적으로 요약해서 설명해 주기에 공부가 많이 된다.

시리즈를 보는 내내 내용의 한계성을 인식하다가도 전직 대통령이 상징적으로 배달노동을 수행하거나 우리가 소비자로 정체성을 가질 때 결코 진입할 수 없는 지하실이나 직원 통로 공간을 드나들며 인사를 나누는 광경이 부럽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여전히 동급 국가들보다 노동에 대한 존중이 한없이 취약한데도 불구하고, 노동에 대한 폄하와 천시가 더 심각해지는 2023년 한국사회를 돌아보면 배가 아플 정도로 부러워지는 측면이다. 조직 노동에 대한 마녀사냥식 공세가 극심해진 한국사회에서 글로벌스탠더드에 대한 상식을 제공하는 영상교재로 쓰일 만한 프로그램 찾기란 쉽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이 시리즈가 미래 노동에 대한 전망과 새롭게 대두되는 노동 형태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일정 부분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작품 정보

 

일: 우리가 온종일 하는 바로 그것

Working: What We Do All Day

2023, 미국, 다큐멘터리(4부작) 시리즈

2023.5.17. 공개, 넷플릭스 제공(2023년 리미티드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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