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을 제어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 했고, 학생들에 대해서 생활지도로 한 행동에 대해서는 아동학대로 보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초중등교육법과 아동복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교사단체는 법 개정안의 통과를 요구하고 있고, 아동인권이나 복지를 다루는 시민단체들은 법 개정에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도 아동학대 관련 법률 개정은 명분이 없고 실효성도 없다는 성명을 냈습니다.

 

학교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가 아니다’라는 면책 조항과 학생에게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생활지도 고시가 학교 현장에 적용될 때, 학교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처음 문제 제기는 ‘학부모의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교사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가면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면서 고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동학대에 해당하는지는 최종적으로는 법원에서, 그전 단계에 검찰에서 결정합니다. 법원에서 무죄, 검찰에서 무혐의, 경찰에서 무혐의 송치 결정이 되기까지는 조사와 수사를 받아야 합니다. 결국 ‘아동학대가 아니다’라는 결정을 해달라는 면책 조항은 결정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없앨 수 없습니다.

아울러 우리 법원이나 검찰에서는 이미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서는 면책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정당행위를 인정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 이익과 침해 이익과의 법익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대법원 2000. 4. 25. 선고 98도2389 판결)

아동에 대한 행위가 순수하게 교육적 목적이어야 하고, 수단이나 방법이 그에 걸맞아야 하고, 교사에게 제재를 받는 학생이 겪는 인권침해보다 나머지 학생들이 받게 되는 학습권의 보호이익이 월등해야 하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없고, 또 그것이 긴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교사가 행한 생활지도는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볼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이미 적용되고 있습니다. 면책 조항이 없어도 이미 대법원의 기준에 따라 면책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동학대 신고 대비 유죄 판결률이 1.6%에 지나지 않습니다.(전교조 신문 보도)

이번에 교사들이 싸워서 얻어낸 아동학대 면책 조항은 상황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교사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무분별한 신고로 인한 고통’을 줄여주지 못합니다.

 

강제력을 강화한 생활지도 고시. 교사에게 힘이 될까?

교육부가 발표한 ‘생활지도 고시’라는 것은 각 학교의 학칙에 반영되어 실행하는 학칙의 기준입니다. 그 내용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미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으로 사라졌던 ‘반성문’입니다. ‘강요된 반성’을 교육수단으로 부활시킨 퇴행이지요.

저는 예전부터 체벌은 교육의 수단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뿐 아니라 교사를 위험에 빠트린다는 이유로 반대해왔습니다. 외견상 체벌은 교사들에게 힘을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만에 하나 사고가 나서 학생이 다치게 되면 교사는 곤경에 처합니다. 제가 교권 상담을 하는 30년 동안 상담하는 내용의 1/3이 바로 ‘체벌 사고’ 상담입니다. 체벌하다가 학생이 다치면 치료비를 물어줄 뿐 아니라 경찰에 폭행죄로 고소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체벌은 교사들에게 힘을 주는 교육수단이 아닙니다.

그럼 이전에는 왜 체벌이 성행했을까요? 국가가 교육에 재정과 인력을 투입하지 않고 공교육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이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과밀학급에서 교사 혼자서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폭력적 방법이 동원된 것이지요. 학급당 학생 수가 적은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는 체벌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체벌은 교사들의 권위가 아니라 국가가 공교육을 싼값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교사들에게 부여한 폭력입니다. 그리고 사고가 나면 오롯이 교사가 그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이번 발표된 생활지도 고시에서는 학생의 휴대전화를 압수하고, 학생에게 벌을 주고, 교실 밖으로 내보내는 일들을 교사에게 하도록 합니다. 이것 역시 국가의 재정 투입이나 인력 배치 없이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교사를 물리력의 일선에 내세우는 방식입니다. 교사들의 물리적, 강제적 제지 행위처럼 교사가 맨몸으로 학생과 부딪치게 되면 그 이후 일어나는 수많은 분쟁을 어떻게 감당하고 수습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얻은 것 없는 결과. 학부모와 연대했더라면

이번 사태의 정리 과정에서 철저하게 학생들의 인권은 제물이 되었습니다. 교사들은 많은 것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정부와 언론은 제기된 문제를 교사 대 학생, 교사 대 학부모의 구도로 몰고 갔습니다. 일부 교사단체 역시 이에 편승해서 조직원을 늘렸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결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재정이 투입되거나 인력이 투입되는 것을 막았습니다. 생활지도 고시에 ‘학생분리’가 있으나, 실제로 교실에서 분리되는 학생을 담당할 인력도, 보호할 공간도 확보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학교 현장에서는 누가 분리된 학생을 담당할 것인가 논쟁이 일어납니다.

이미 학교 현장에서 교장이 맡아야 한다, 교감이 맡아야 한다는 식의 업무 미루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재정과 인력 투입 없이 현장의 변화는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교사가 뜨거운 거리에서 ‘학생에게 학습권, 교사에게 교권’을 외쳤지만, 국회는 립 서비스 수준의 법률 개정을, 정부는 교사들이 맨몸으로 학생을 제압하라는 생활지도 고시를 던져준 후 모든 책임은 학교 현장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 생활을 적은 글에서, 감옥에서 여름은 수감자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옆 사람의 체온이 나를 덥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감방에 냉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따라서 수감자들은 서로 미워할 일이 아니라 힘을 모아 냉방시설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교실과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 간의 분쟁 중에서 상당수는 제도가 없거나 시설이 없거나 인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들입니다. 교실과 학교는 학생에게는 학습 공간이고 교사에게는 근무 공간이며, 교실과 학교의 여건은 학생에게는 학습여건이고 교사에게는 근무 여건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교사들이 ‘아동학대 면책’이 아닌 교실 여건 개선을 내걸고 학부모와 연대했더라면, 분리되는 학생을 맡을 인력과 공간이 확보되었을 것입니다. 학부모와 함께 특수교육의 범위 확대와 교사 확충을 내걸었더라면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돌발행동도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참 아쉬운 대목입니다.

 

글_ 송대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정책자문위원


※ <학부모신문>과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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