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책방에서 김초엽 작가를 만나다

 

▲11월 19일 일요일, 달팽이책방에서 열린 김초엽 작가와 함께한 『파견자들』 북토크 현장. 이번 북토크는 YES24와 출판사 퍼블리온의 지원으로 전국 동네책방과 연계하여 개최됐다.
▲11월 19일 일요일, 달팽이책방에서 열린 김초엽 작가와 함께한 『파견자들』 북토크 현장. 이번 북토크는 YES24와 출판사 퍼블리온의 지원으로 전국 동네책방과 연계하여 개최됐다.

올해 늦은 봄, 지인들과 경주에 놀러 간 적 있었다.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최근에 읽은 좋은 책들에 대해 대화하던 중, 나는 포항에 아주 괜찮은 동네서점이 있다며 달팽이책방을 소개했다. 포항에는 철강회사와 과메기 말고도 멋진 것이 있다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타 지역 지인 몇몇이 이미 달팽이책방을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단순히 지역 책방이 아니라 전국구 책방이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달팽이책방에 관해 이야기 나누다 지인 한 분이 김초엽 작가님이 포항과 인연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나는 포항에 대해 모르는 자칭 포항 문화시민이었음이 밝혀졌다. 김초엽 작가님은 책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나에게는 귀에 익은 작가였다. 아마 집에도 작가의 책 한 권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나는 예전에 사두었지만 읽지 않은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자이언트북스)을 책장에서 꺼내 들었다.

그렇게 몇 달 후, 달팽이책방에서 김초엽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파견자들』(퍼블리온)의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은 마치 유명 아이돌의 콘서트가 열린다는 말처럼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책방 사장님이 올리신 북토크 신청 공지가 뜨자마자 좌석이 매진되었다. 이렇게 금방 마감되었다면 사람들이 대부분 알람을 맞춰 뒀을 것이다. 작가의 인기를 새삼 실감했다. 이번 북토크는 ‘스포일러 파티’라는 부제가 붙었다. SF 소설의 특성상 장르 소설에 가깝고 결말을 스포하지 않고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북토크에 가기 전 완독을 향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자 예열도 필요 없이 시동이 걸렸고 종이에 기름 발린 듯이 책이 술술 넘어갔다. 소설은 할리우드 영화가 영사되듯이 눈앞에 펼쳐졌다.

일요일 오후, 나는 북토크 시작 10분 전에 도착했다. 달팽이책방은 자주 들렀지만 이런 행사는 처음 참여하는 거라 설렜다. 그저 ‘신청자 1인’이었지만 내가 애착을 가진 공간에서 열리는 북토크라 그런지 대기업이나 시에서 하는 행사보다도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자주 가던 공간이지만 평소에 자주 보지 못했던 책방의 다른 손님들과 다양한 연령대의 독서인들을 한 장소에 보게 되어 왠지 벅차기도 했다. 자칭 문화시민으로서 포항의 지역 축제나 공연을 가기도 하지만, 이렇게 독서인들을 만나는 기회는 별로 얻질 못했다. 김초엽 작가님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이 참여한 북토크였는데, 생각보다 작가님이 더 젊으셔서 놀랐다. 이번 소설이 영화처럼 풍부한 감각을 자극해서 그런지 익숙한 향수가 느껴져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멋진 소설을 읽으며 작가를 상상해 보고 북토크와 같은 행사를 통해 ‘작품의 창조주’를 만나는 경험은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경험이다.

『파견자들』은 약 이백 년 이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범람체’라는 물질이 지상을 덮어 버려서 지하 세계로 내려간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다. 극 중 주인공인 ‘태린’은 파견자가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던 중 ‘쏠’이라는 다른 자아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쏠’이 미래의 인공지능인지 바이러스인지 혹은 태린의 ‘또 하나의 인격’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비인간’인지에 대한 고민을 독자에게 던져 주는 것이다. 지상을 뒤덮어 버린 ‘범람체’의 정체는 또 무엇일까? 김초엽 작가님은 이 소설을 준비하며 곰팡이에 관한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특히 곰팡이 이야기가 정말 흥미로웠다. 우리 인간은 일인칭의 주관적인 시점으로 평생 살아간다. 그런 점이 인간에게 고유한 특성을 부여하지만, 서로에 대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인간성의 한계도 만들어낸다. 그러나 곰팡이는 개체중심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며 ‘뇌’가 없는데도 미로를 찾고 살아남는다. 작가님은 여기서 범람체에 대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했다. 또한 『탈인지』(스티븐 샤비로, 갈무리)라는 책도 소개하면서 우리가 ‘인지’한다는 것을 높게 판단하고 ‘인지능력’이 있는 생명체를 고등생물로 생각하는데 과연 그것이 정말 고등의 능력일지 의심한다고 했다. 개체 중심적인 인간이 ‘곰팡이’처럼 사고할 수는 없지만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남발되고 있는 현실에서 곰팡이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나는 10분 전에 북토크에 도착했지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와있었다. 그래서 좀 뒤쪽에 앉았는데 내 옆에 정말 앳된 여학생 두 명이 앉아있어서 관심이 갔다. 알고 보니 중학교에서 선생님과 온 학생들이었다. 집중해서 북토크를 듣고 진지하게 질문을 작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긍정과 희망을 함께 받았다. 나는 학창 시절에 어떤 책을 읽었나 하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오픈 채팅으로 진행된 질문과 답변 시간도 신선했다. 만약 손을 들어 말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주목 공포증’이 있는 나는 절대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카카오톡으로 질문을 하게 되니 궁금했던 점을 글로 잘 다듬어 질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김초엽 작가님의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북토크에 온 사람들은 작가님의 팬들이 많아 보였다. 다른 소설들에 대한 질문들과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님의 다른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겼다. 평소에 SF 소설은 잘 읽지 않았다. 나의 현실과 동떨어진 작품은 손이 가지 않았다. 나와 가깝지 않으면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더 솔직한 것은 과학은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소설을 편식했다. 그런데 『파견자들』을 읽고 나서 SF소설에 대한 내 생각이 편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SF소설도 현실의 인간이 쓴다. 그리고 그 소설에는 우리 삶을 비유하는 작가들의 고유한 방식이 들어있다. 북토크를 마치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허블)을 한 권 더 샀다. 또 한 명의 멋진 작가를 알게 되어 신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글_ 하지, 사진_ 달팽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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