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할 수밖에 없는 ‘동학개미’의 운명을 해설하다

 

선호빈 감독은 2017년 <B급 며느리>를 선보여 독립영화, 그것도 다큐멘터리 장르에선 이례적인 주목을 받으며 이듬해 극장 개봉으로 2만 관객이라는, 독립영화 개봉 실적으로 선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나름대로 ‘흥행 감독’이 된 셈이다. 하지만 영화가 호성적을 거뒀다고 해서 감독에게 추가 성과급이 떨어지거나 할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인지라 다른 독립영화 창작자들과 매한가지로 2020년 코로나19가 닥치면서 생계를 고민하게 된다. 절대다수의 영화인들은 정작 본인의 창작에 평소에도 거의 시간을 쓰지 못하지만, 불황이 닥치면 더 극단화되게 마련이다. 이는 현대 문화예술계 종사자 대다수의 숙명이기도 하다.

감독 역시 이것저것 들어오는 일마다 않고 아르바이트 전선에 종사하는 운명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장편영화 작업이 역병에 따른 여러 제약으로 난관에 봉착하면서 많은 독립영화인들이 영화가 아닌 영상물 분야에 종사하기에 이른다. 일단 ‘영화’와 ‘영상’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지만, 영상 콘텐츠 관련해 일거리만 들어온다면 기꺼이 달려갈 준비 태세가 되어 있다. 코로나 시절에도 이어지던 유튜브 촬영 및 편집, 야외행사 기록 작업 등에 종사하는 감독의 모습이 먼발치에서 비친다. 그런 가운데 반가운 아르바이트 일감이 들어온다.

 

적극적 행위자로 영화 속 현실에 뛰어든 감독의 활약상

감독은 학교 선배의 유튜브 채널 편집과 촬영 일자리를 얻게 된다. ‘남영동 대부업자’라는 명의의 해당 채널은 재테크 분야를 전문으로 다뤘다. 그중에도 주식투자에 특화되어 있었다. 본인이 담당하는 영상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감독은 생판 해본 적 없는 주식투자의 세계에 발 들이기에 이른다.

 

“소액주주 상륙작전” 스틸 이미지(by 뉴스타파)
“소액주주 상륙작전” 스틸 이미지(by 뉴스타파)

처음엔 얼마 되지 않는 소액을 경험 삼아 투자해 본다. 전문가의 코치 덕분인지 적재적소에 투입된 자금은 제법 수익률이 쏠쏠하게 잡힌다. 초반에는 반신반의하던 감독은 점점 아르바이트 건 본업인 영화감독으로 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자산 가치 증식을 가능케 할 동아줄을 잡은 것 같다. 그는 중독되는 것처럼 ‘투자’라 주장하고 ‘투기’를 꿈꾸는 단계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는 가족을 설득해 점점 더 많은 자금을 주식투자에 투여한다. 어느새 머릿속에는 미래의 계획이 청사진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감독은 투자 전문가인 선배에게 주식투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Q&A를 듣는다. 그리고 집에 가서는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허세를 부려가며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알게 된 주식투자에 대해 설파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어느 회사 주식을 노리는지, 그리고 그게 어떤 합리적(!) 판단 기준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잘 알아듣지 못하면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2차, 3차 해설을 거듭한다. 비로소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 하고 아직 이 자본주의의 총아이자 서민들에게 내려온 구원의 메시아를 전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감독은 이참에 자신의 실전 투자 과정에 추가해 자신과 동일한 위치에 있는, 흔히 ‘개미’라 불리는 소액주주들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소액주주 운동의 역사와 현황, 환경에 대해 전문가와 경험자들에게 청해 듣는 일화들이 간략하지만 역사 연대기로 기능한다. 하지만 그들이 토로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소액주주들의 권익이 보장되기 힘든 상황을 전해 듣는 것과 비례하듯 감독이 투자한 주식의 수익률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감독은 얼마 되지 않는 가족의 생활자금 건사-차기작 작업의 성패-아르바이트 자리 유지가 걸린 삼중고에 휘말려 든다.

 

대안언론과 독립영화작가들의 협업으로 탄생한 공익 작업

<소액주주 상륙작전>은 여러모로 조명할 의의가 다분한 작업이다. 우선 전작에 이어 ‘퍼포머’로서 작가 본인이 화면 속에 뛰어들어 체험자로서 서사를 펼치는 형식을 취하는 바, 근래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신진창작자들이 주로 자신의 사적 경험 위주로 선보이는 부류가 대다수인 데 반해 감독은 명백히 사회적 구조와 의제 하에서 본인과 가족을 포함한 개별 구성원이 처한 환경을 조명하려는 공공성을 선명하게 내비친다.

‘퍼포머’로서 주식투자를 조망하는 건 드라마나 상업영화, SNS 콘텐츠에선 이미 보편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뒤늦게 모 OTT에서 2022년 오리지널 제작한 <개미가 타고 있어요> 시즌제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현실에서 다들 근로소득으로 집 한 채 장만이 불가능해진 시절에 ‘영끌’해 모은 자금으로 인생역전을 노리고 실패하며 벌어지는 군상 극은 어렵지 않게 목격 가능한 콘텐츠이다. 하지만 유독 독립영화 쪽에선 비중이 적은 편이었던 바, 주요 창작자층이 여유자금을 거의 갖지 못한 불안정노동 종사자에 해당하기 때문일 테다.

 

“개미가 타고 있어요” 포스터 이미지(by TVING)
“개미가 타고 있어요” 포스터 이미지(by TVING)

그런 악조건 속에서 과감히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담보로 펼치는 퍼포먼스는 관찰자로서의 입지와는 상이한 긴장과 흥미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성격으로 전화된다. 전작에서는 의도적으로 고부갈등 사이에 끼어 있는 처지를 고정하려 했다면 이번 작업에선 적극적 행위자로서 가족과 취재원 사이에 위치하는 태도로 변화를 준다. 열악한 창작 조건 아래에서 밸런스 잡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텐데 경력직 감독이라 균형 감각이 만만찮다.

그런 안정감은 본 작업이 뉴스타파의 [목격자들] 프로젝트의 일환이기에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MB 정권 당시 언론탄압과 검열 때문에 기존 공중파에서 밀려 나온 언론인들이 시민 후원으로 꾸려낸 플랫폼 ‘뉴스타파’는 이후 10여 년째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역할을 담당하고 고민하는 중이다. 심층 시사 콘텐츠 확장의 일환으로 몇 해 전부터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과 협업해 속보성 뉴스릴과는 별개화가 된 긴 호흡의 작업을 선보이는 바, <소액주주 상륙작전>은 그 최신 버전 중 하나로 2023년 9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획전 프로그램 일환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되었고 현재 뉴스타파 채널을 통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접근이 허용된 상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5aGv1mXH7o&t=42s)

 

태생부터 제국주의 : 투기적 속성과 연결된 주식제도

‘주식’은 의외로 역사적 기원이 오래되었다. 상업이 발달하고 원거리 무역이 활성화될수록 화폐경제가 발달하게 마련이지만, 그 규모와 거리가 확장을 거듭하면 ‘신용’거래가 형성되는 것은 물론, 모험적인 투자 과정에서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병행되게 마련이다. 그렇게 보험제도가 탄생하고 기업 자금 마련 과정에서 소수의 부자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의 소액을 모으기 위해 주식회사와 주식거래 제도가 근세에 확립되기에 이른다.

서구에서 탄생한 근대적 주식회사 개념은 세계무역과 식민지 경영, 즉 제국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유럽 열강들이 3세계를 침략해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앞을 다퉈 설립한 ‘동인도회사’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1세대 식민지 경영에 도전하던 네덜란드가 실제 모델로 선보인 개념이다. 그렇게 최초의 주식회사와 주식거래소 모두 네덜란드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튤립 광풍’처럼 투기와 공황 역시 네덜란드에서 출발한 것을 봐도 초창기 상업자본주의 형성 과정에서 네덜란드가 중요한 몫을 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 일본제국 역시 적극적으로 이를 도입했고 그 결과 일제강점기 이후 주식제도는 한반도에서도 익숙해져 간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하에서 주식은 기업 자본 마련의 기본 전제로 한국사회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지만 소액주주는 저축이나 부동산 구입과 마찬가지로 그저 여유자금의 투자처로만 사고되어 왔다. 한국은 주주자본주의의 천국이라 할 미국이나 서구 대다수 국가와는 다르게 경제성장 과정에서 국가의 통제가 강했고, 후발주자로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와 대기업의 관계는 ‘정경유착’이란 용어가 보편적으로 당연시되는 것처럼 밀접했다. 그 결과는 ‘재벌’이라는 고유명사가 세계적으로 한국어 발음으로 통용될 정도의 특수성으로 드러났다.

재벌개혁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시민단체가 이를 주요한 의제로 삼으며 기존 경제구조에 의문부호가 제기된 1997년 IMF 구제금융 이후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재벌 지배 구조에 대한 비판을 위해 미약하나마 경영권 분쟁에 발언 통로가 보장된 소액주주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니 사반세기 조금 넘게 지속되는 과정인 셈이다. (그래서 유독 뉴라이트 등 ‘전향’한 운동권 출신들이 한국 재벌을 옹호하며 해당 운동을 폄하하는 데 앞장서기도 한다) 반면에 재벌지배구조에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은 채 배당에 만족하는 소규모 주식투자는 마거릿 대처가 기존 노동조합 운동을 탄압하는 대신 ‘중산층’이 되기 위해 다들 창의적으로 주식을 사자고 권장한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의 표상 중 하나로 수용된다. 21세기 한국 현실 역시 그 범위 안에 놓일 테다.

 

평범한 우리에게 주식, 그리고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질문하다

영화는 또 다른 전개 축으로 감독이 발품을 팔아가며 해당 운동의 주역과 현재를 탐방하는 여정을 주요한 한 축으로 전개시킨다. 소액주주 운동의 초창기 활약상은 기습공격처럼 일정한 성과를 거뒀지만 ‘기득권’의 반격은 마치 스타워즈 두 번째 편 <제국의 역습>처럼 거세게 휘몰아친다. 자신의 부를 사수하고 확대하기 위해 ‘있는 놈이 사력을 다해 꾀를 짜내는 데’ 당할 도리가 없다며 재벌 중심의 경영권 사수를 위해 착안된 온갖 전문기술 사례가 소개된다. 대부분 종종 언론에서 다뤄지긴 했지만 한 끗 차이로 흘려보내곤 하던 전문지식들이다. 금융지주회사 제도 활용이나 편법으로 아군을 늘려 발언권 과반수를 유지하는 특급 테크닉이다. ‘주총꾼’이라는 유서 깊은 조폭적 행태 사례도 해학적으로 소개된다.

 

“소액주주 상륙작전” 스틸 이미지(by 뉴스타파)
“소액주주 상륙작전” 스틸 이미지(by 뉴스타파)

그런 역사적 향방 해설은 시민적 교양으로 꼭 필수적이지만 계속 이어지면 지루하고 현학적으로 여겨지게 마련이다. 당장 나의 일로 받아들여지진 않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감독은 자신이 소화한 내용과 가족의 명운을 건 투자 상황을 교차시켜가며 돌파하려 시도한다. 이 문제가 고작 알면 좋고 몰라도 당장 사는데 지장은 별로 없는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는 논증의 시간이 도래한다. 전 국민 중 1500만 명이 주식에 손을 대었다고 한다. 사실상 성인 둘 중 하나는 관련된 셈이다. 감독과 가족 사이에서 펼쳐지는 ‘주식이란 무엇인가?’ 과외수업은 어느새 ‘체험! 삶의 현장’으로 변환된다.

감독은 실제로 일정한 위험을 감수하며 ‘생돈’ 들여 주식을 매입한다. 그저 참치통조림이나 어묵, 맛살 생산기업으로만 이해되던 00기업 주식을 다루면서 해당 기업의 가치가 재벌 일가의 지배와 상속권 유지를 위해 어떻게 ‘저평가’를 의도적으로 방치하는지, 그 저평가가 왜 소액주주에겐 해로운지 밥상머리 강의를 열정적으로 펼치는 풍경은 피식 웃음이 나오다가도 문득 귀에 쏙쏙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담긴 내용과 담아내는 형식 모두 수수하지만 빛나는 준수함

그런 이중 구조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귀결되기 거의 불가능하다. ‘개미’는 자본주의가 이상화된 체제로 내세우는 평등한 주권행사에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소액주주는 명목상으론 배당금을 받는 것으로 이득을 받게 되지만 주가조작이나 고의적 평가 기준 설정으로 원래 획득해야 할 이익에 도달하지 못한다. 비대칭적 정보 접근성이나 작전세력 존재로 인해 늘 부당하게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한 채 수동태에 머물고 만다. 제도에 보장된 틈새를 파고들어 저항할 순 있겠으나 항상 지배구조의 변방에서 봉쇄당하고 만다.

 

“소액주주 상륙작전” 스틸 이미지(by 뉴스타파)
“소액주주 상륙작전” 스틸 이미지(by 뉴스타파)

영화는 그에 대한 분노나 봉기를 선동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진 않는다. 이젠 그렇게 일방적으로 특정 진영 편을 들기란 여러 제약으로 쉽지 않은 노릇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내내 별개의 축으로 기능하는 감독과 가족에게 닥칠 회색빛 미래를 충분히 예감할 관객들은 어떤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바로 결국 현재의 체제에선 ‘개미’로 상징되는 평범한 이들은 영원히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겠다는 결론이다. 그런 답답한 현실을 직시한 뒤 어떻게 대처할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게 될 테다.

전개 방식에서 ‘퍼포머’의 개입을 통해 공적 구조-사적 참여를 연결하는 스타일의 정석을 보여주는 동시에, 방송 포맷에 주 활용도를 설정한 분량으로 40분 전후 상영시간을 준수하는데 이는 그동안 한국독립영화에서 배제당해 온 영역이다. ‘중편’이라는 표현을 접해본 이는 거의 드물 테다. 하지만 TV 영화나 방송 다큐멘터리에선 오히려 일반화된 러닝타임의 부활에 속한다. (과거 공중파에서 앞뒤 광고 편성이나 도입부-크레디트 추가로 1시간 분량으로 편성되던 ‘단막극’ 형태가 가장 근사치에 해당한다. 21세기 들어 거의 전적으로 독립영화 제작 환경은 영화제 공모 기준-극장 개봉 용도에 국한되어 맞춰져 왔다. 그러한 기존 형식 문법에 대한 고찰도 본 작업을 비롯해 근래 대두하는 비슷한 유형의 작품들을 논할 때 빠져선 안 될 지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작품 정보

 

소액주주 상륙작전

Saving Private Investor

2023, 한국, 다큐멘터리, 39분, 12세 관람가

감독 선호빈

출연 송종국, 이상태, 정의정, 이용우, 이상훈, 선호빈, 김진영, 선해준

제작 뉴스타파함께재단

2023 15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기획전 <뉴스타파: 카메라를 든 목격자들>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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