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의 시 중에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한 구절로 유명한 시가 있다. ‘기(旗)빨’, 혹은 ‘깃발’이란 시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向)하야 흔드는

영원(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

순정(純情)은 물껼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표(標)ㅅ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마크 맨슨이 한국을 찾아 한국을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했다. 대한민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는 그 원인으로 심각한 경쟁과 압박, 단점만 남은 유교문화, 자본주의 병폐를 들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이기도 하고 그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는 나라다.

 

출처=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통계를 들이댈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은 플래카드의 나라다. 거리마다 플래카드가 넘쳐난다. 다음 달 4월 10일 총선 탓인지 플래카드가 더 늘어난 듯하다. 플래카드만 그러랴. 간혹 사고를 일으키는 간판들은 더더욱 넘쳐난다. 유치환은 ‘깃발’이란 시에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했지만, 전국을 뒤덮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많은 플래카드와 간판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 자영업 경기가 지극히 안 좋은 탓이지만, 동네 고깃집에 붙은 광고지에서는 ‘경기가 미쳤다!, 사장은 더 미쳤다!’라는 아우성이 들린다. 유치환이야 깃발에서 고상하고 단아하게 노스탤지어를 생각하고 깃발을 손수건으로 보았지만, 플래카드와 간판에서는 ‘생의 아우성’,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들린다. 먹자골목의 삐죽삐죽 튀어나온 간판들은 경쟁과 압박에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이 거리로 달려 나와 있다. ‘애수가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가 아니라, 우울증이 생의 날개를 접고 있고 꺾고 있다.

얼마 전 신탄진이라는 곳을 찾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은 술집이든, 가게든, 지극히 문학예술적인 간판들이 많다. 달리 말하면 수식구나 장식적인 말들이 쓰인 간판이 유독 많다는 뜻이다. 외국에서 볼 수 없는 대한민국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꽃가게 이름이 ‘비비드 꽃가게’고 ‘H가의 사람들’이며 ‘술닭’이기도 하다. 물론 브랜드 옷이나 신발 가게는 밋밋한 이름을 갖고 있다. 일일이 그 문학예술적인, 혹은 장식적인 간판의 언어들을 지적할 수는 없지만, 골목이나 거리를 걷다 보면 그저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아우성, 엄혹한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목소리의 아우성을 듣는다.

 

벤야민이 말한 ‘산보자’마냥 걷다 보면 눈길 주기에는 너무나도 민망한 노래방 간판들도 보인다. 이 또한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풍경이다. 예전에 ‘69 노래방’이라는 글자가 적힌 간판이 행정 지시에 따라 그 간판글씨를 바꿨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지만, 주택가에 버젓이 들어선 노래방의 간판들을 보고 있자면 금방 이미지화되는 낯 뜨겁고 민망하고 남사스러운 간판들도 많다. 이제는 아우성을 넘어 팍팍한 삶의 모습이 생경하게 드러나 있다. 포르노적이다. 포르노, 혹은 포르노그라피는 ‘창녀(porno)’에 관하여 쓰인 것(graphos)이라는 의미나 여성들이 가르쳐 주지 않는 ‘감추어진 성적인 진리’로 해석한다. 서갑숙이 1999년에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책을 내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지만, 신탄진이든 어디든 대한민국의 노래방이나 술집의 간판들을 보다 보면 간판이 ‘구멍’으로 변해 포르노처럼 너무나도 훤하게 비루하고 남루하며 힘겨워하는 생경한 생의 아우성이 보인다. 생이 간판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는 이 상태는 포르노그라피적이라 할 만하다. 성적인 표현만이 포르노적인 것이 아니라 간판이나 광고지나 플래카드를 통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넘어 아우성치고 소리 지르는 생의 속살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는 현실 자체가 이미 포르노적이다. CCTV가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의 모습이나 차 등이 관찰되고 감시되는 현실도 포르노그라피적인 것이다. 인터넷이든 카톡이든 인스타든 개인의 생이 버젓이 노출되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유치환의 아래 시구는 다시 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렇게도 우울하고 힘겨운 생을

덕지덕지 공중에 간판들을 걸어놓은 가난한 자는

유치환의 깃발은 ‘맑고 곧은 이념의 표ㅅ대’ 이겠지만, 밤이 오면 네온이 켜지면서 드러나는 간판들과 간판에 쓰인 글씨들은 이념의 푯대이기는커녕 자신을 노출하고, 광고하고, 과감하게 드러내지 않고서는 고물가, 경기 침체에 장사가 너무 안돼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아우성의 포르노그라피다.



글 _ 이득재 노동당 대구시당 전국위원 및 정책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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