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가벼운 마음으로 경주에서 독립서점 운영기를 연재할 너른벽 서점지기입니다.

‘너른 벽(wide wall)’은 돛과 닻 출판사에서 펴낸 제로의 책 ‘메타버그 세계관’에서 접한 단어인데요. 너른벽이 등장하는 문장에서 강한 메시지를 오랫동안 기억하며 실천으로 삼고자 서점의 이름으로 선정했습니다. 문장은 “…더 많은 사람이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너른 벽을 추구해야 합니다.”인데, 접근성에 대한 고민과 다양성을 포괄하기 위해 어떤 실천이 있어야 하는지와 같은 현실적 고민도 연결 지어 볼 수 있어 좋습니다.

 

너른벽 ⓒ박슬기
너른벽 ⓒ박슬기

서점에는 한 권 한 권, 각자의 의미가 뚜렷하고 교차적인 사유를 권하는 다채로운 책을 위주로 선별해 두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1년 전 창업할 당시 “아~ 이 책은 대박이다! 꼭 있어야지!” 하며 호기롭게 들여왔던 책들이 여전히 저와 함께 서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에는 빛도 못 본 채 그저 ‘짱박혀’져 ‘찌그러진 채’ 있는 책들이 서러워 보여 그중 또 몇을 꼽아 ‘시급하지만 1년 동안 판매되지 않는 책’이라는 주제로 큐레이션 서가도 꾸려 보았어요. 약간의 유머를 더한다면 조금이나마 방문한 분들의 관심을 끌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진지한 궁서체 24 포인트’로 그 옆에 소개 내용을 뽑아 붙였는데요. 미루어 보아 여전히 서점을 벗어나 사람들에게 읽히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듯하지만, 저처럼 취약하고 주목받지 못한 이야기를 찾아 헤매고 있을 누군가를 그리며 지치지 않고 기다리고자 합니다.

 

ⓒ박슬기
ⓒ박슬기

아직 글쓰기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보니 지면이 주어졌을 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얼어붙은 저를 상상해 보세요. 하여 한 달에 한 번 서점에서 주목하는 도서를 추천하는 글도 함께 녹여내 보고자 하는데요. 해당 도서가 지닌 가치를 재조명함과 동시에 글의 분량을 늘릴 수 있는 전략인 셈이지요. 이번 3월의 너른벽 추천 도서는 루시 쿡의 ‘암컷들’입니다. 최근 3.8세계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울산 페미니즘 모임원들과 시민활동가들이 모여 북토크를 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암컷들’은 기존 주류 사회에서 ‘성별’과 ‘성적 행위’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고 고정된 것으로 여겼던 관념들이 사실 자연계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로 비이원적이고, 단일하지 않으며 ‘섹슈얼리티 뷔페’와 같은 형식으로 발현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책에서 제가 주목한 사례는 성을 넘나들며 다양한 성 체제를 아우르는 ‘따개비’입니다. 따개비는 비단 자신의 성을 환경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넘어 다른 개체를 ‘숙주화/암컷화’ 하는 트랜지션을 감행하기도 한다는 점인데요. 따개비에 의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통도 없고 평화롭게 암컷으로 성전환을 끝낸 게의 모습을 통해 자연계의 무궁무진한 환경적 다양성을 포착해 볼 수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 사회에서 성과 젠더에 대한 다양성 인식은 어떨까요? 대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생물학적 본질만을 강조하며 ‘트랜스젠더’ 발생과 존재에 의문을 품거나 더 나아가 혐오를 표하는 주장이 많습니다. 숙명여대 입학이 무산된 트랜스젠더 여성 사례와 변희수 하사의 군대 내 강제 전역 사건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암컷들’의 따개비 사례가 말하는 것처럼 생물학적 본질성은 비이원적이고 다양하며, 환경에 따라 트랜지션을 감행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적인 것이라는 배움을 가지고 기존의 이분법적인 지식 체계를 재인식해야 할 듯합니다.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암컷들’ 도서를 통해 즐거운 전복적 발견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한 달에 한 번 서점과 주변을 둘러싼 재미있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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