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에이지' 논란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어김없이 역과 고속버스터미널,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귀향 인파.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설을 맞는 풍경이다.

설날 떡국 한 그릇을 다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을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에, 두 그릇을 먹고 두 살씩 건너뛰고 싶었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한 기억이다. 하지만, 이번 설의 떡국과 나이 듦은 불편함을 더한다.

새해 첫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제발 한국식 나이 계산법 좀 폐기해주세요>란 청원이 올라왔다. 이어 <만 나이의 공식적, 일상적 사용을 선포해주세요>, <만 나이로 바꿔주세요> 등 1월 1일 하루에만 나이를 세는 방법과 관련된 국민청원이 9건, 빠른 연생들의 불편함에 대한 청원 2건까지 전체 11건이 올라왔다.

한국식 나이는 법적 효력도 없고 일 처리를 할 때 많은 불편함이 있기에, 정부에서 만 나이로 교통정리를 해 주었으면 하는 내용이다. 새해에 17세의 고등학생이 되는데, 만 나이 때문에 계좌 개설도 못하고, 생일이 안지나 만 15세 이상이 하는 게임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만 나이를 없애 달라는 청원도 있었다.

1월 3일에는 모 국회의원이 나이를 표시할 때 ‘출생한 날부터 계산한 연수(年數)로 나이를 표시’하도록 하고 ‘1년에 이르지 않은 잔여일이 있는 경우 개월 수를 함께 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 (이하 “세는 나이 금지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공공기관의 공문서에는 만 나이 기재를 의무화하고, 민간에서는 만 나이로 나이를 계산·표시하도록 권장한다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세는 나이를 금지하여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낭비와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가 일으키는 갈등을 바로잡고, 연령 관련 정보 전달의 혼선이나 특정 월 출산기피 현상 등 부작용 해결’ 등을 위해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는 나이 금지 법률안이 발의 되자 수많은 지지 댓글이 달리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세는 나이 금지 법률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등 한 달 넘도록 이슈가 되고 있다.

이후에도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만 나이'를 일상 및 공공기관, 행정에 적용해주십시오> 등 나이에 관한 여러 건의 청원이 1월을 장식했다. 이에 더해, 2월 3일 모 신문은 지난해 한 리서치 결과를 소개하면서 나이 계산법에 대한 질문 결과 ‘만 나이로 나이 계산법을 통일하자는 의견이 응답자의 68.1%’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만 나이를 세는 방법이 세 가지나 돼 불편함을 초래한다고 보도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일상과 법률에서 네 가지의 나이 계산방식이 사용된다. 일상생활에서는 태어나면 한 살이 되고 해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증가하는 ‘세는 나이’, 민법과 관공서나 병원 등 행정상으로는 태어난 날부터 나이를 계산하는 ‘만 나이’, 병역법과 청소년보호법에서는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는 ‘연 나이’가 사용된다. 또한, 현실에서는 1~2월 출생자들의 경우 앞선 해 태어난 사람과 같은 해에 학교에 취학하면서 생겨난 이른(빠른) 나이까지 혼용되고 있다.

일상에서는 세는 나이, 법률과 행정상으로는 만 나이, 연 나이 등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 혼란을 주는 일이다. 세는 나이로 하면 12월에 태어난 사람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심지어 섣달 그믐날 태어난 사람은 하루도 되지 않아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이런 경우 우리 사회에서는 ‘애먼 나이’를 먹었다고 한다. 애먼 나이, 이른(빠른) 나이로 인해 관계가 복잡하게 꼬이기는 것을 ‘족보가 꼬였다’고 표현한다.

서열문화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정서상, 나이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나이의 혼선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게 하고, 갈등의 원인이 되며, 나이 정보 전달의 혼선 등을 가져다주는 부작용의 원인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여러 나이 계산 방법이 서열문화 등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서열문화의 단면이 나이에까지 투영된 것은 아닐까.

나이를 세는 것을 법률로 강제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처방으로 보인다. 설날의 풍습도 그렇다. 일제 강점기와 새마을운동 시기에 부단히도 없애려 했고, 사라져야 할 폐습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심지어 1월 1일 신정에는 3일 연휴를 쉬면서, ‘설날’은 쉬지 않거나 하루만 휴일로 정한 적도 있다. 그래도 민간의 풍습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생명력을 유지했다. 그 결과 지금은 1월 1일에는 하루를 쉬고, 설날에는 3일을 쉬고 있다.

나이 계산 방식의 통일보다, 무엇 하나라도 남보다 앞선 것을 찾아 서열을 정하고, 위계를 세워야 편안함을 느끼는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나이를 세는 방법을 강제하기보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권위주의를 걷어내려는 사회적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타인보다 더 우월한 것을 찾아 위계를 정하려는 문화는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진 자 앞에서는 굴종하면서도, 덜 가진 자에게는 권위적으로 변하는 우리의 태도에 녹아 있다. ‘갑질’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것이다.

나이의 셈법까지 문제가 되는 사회. 나이 듦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설날. 새해에는 서열을 확인하는 사회를 벗어나,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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