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산 넘어 산
[칼럼] 산 넘어 산
  • 지민
  • 승인 2019.09.09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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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자 연예인 볼 때 멋지다거나 섹시하다고 느낀 사람 누구 있어?
나: 공유? 유지태?
A: 그 사람들 볼 때 감정이 어때?
나: 음… 모르겠어. 동경?
A: 그 감정에 확신이 있어? 혹시 네가 그 사람들 보면서 남자라는 성별을 인식하는 순간, 어떤 감정의 굴절이 생겨서 호감을 동경이나 선망으로 바꾸는 거면?
나: 응?
A: 그럴 수도 있다고. 아니면 말고. 한 번 생각해봐.

 

유학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만난 A의 질문에 나는 잠시 당황했다. 이어서 A는 말했다.

“난 남자랑 여자 모두에게 끌려. 바이섹슈얼이라고 하더라. 일본 가서 알았어. 한동안 생활비 때문에 술집 알바를 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 덕분에 내 성향을 알게 됐어.” 

고교 동창인 A와 나는 각별한 사이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붙어 다니며 밤마다 거리를 헤맸다.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썹이 진한 A는 어딜 가든 주목을 받았다. 소위 ‘남자답게’ 잘생긴 외모 덕이다. 성격마저 ‘남자다웠던’ A 주변에는 성별을 불문하고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그랬던 A가 내게 ‘남자도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최대한 덤덤하게 그의 말을 경청했지만, 한편으론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기 위해 애써야 했다. 함께 밤거리를 헤매던 그가, 친구들 사이에서 ‘남자 중 남자’로 칭송받던 그가 남성에게 끌린다고 말하고 있다니. 내 반응과 상관없이 A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처음 남자에게 끌림을 느끼게 된 순간, 처음 남자와 잤던 이야기, 자신을 바이섹슈얼로 정체화하게 된 계기 등.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나고 자란 내가 A의 이야기를 거부감 없이 듣긴 어려웠다. ‘남자답지 못한 남자’를 게이라 욕하고, 동성애를 ‘더럽고 추잡한 죄’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근데 A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로웠다. 마치 다른 나라의 언어를 듣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이성애자라고 확신하잖아. 근데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많더라고. 딱 정확히 이성만 좋아하는 이성애자는 20%, 동성만 좋아하는 동성애자는 20%, 나머지는 양성애나 무성애를 포함한 다양한 성애를 가진 사람들이란 연구도 있어.” 

돌이켜보니 A의 말처럼 내가 이성애자라는 확신의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나를 왜 이성애자라고 생각했었는지 되묻게 됐다. 이성애가 유일한 사랑이라고 믿은 내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A의 설명과 근거들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날 이후 나는 A의 도움으로 고민을 이어갔다.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같은 개념부터 이성애, 양성애, 동성애, 트랜스젠더, 퀴어 등의 용어를 접하게 됐다. A가 가입한 게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둘러보기도 하고,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도 했다.

 

ⓒpixabay
LGBTQI+ flag ⓒpixabay

한편, 커밍아웃 이후 A의 친구들은 대부분 A를 떠났다. 엄청난 유대감으로 똘똘 뭉쳐 보이던 관계가 한순간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남성성’을 중심으로 뭉쳤던 그들에게 A의 성적 지향은 위협과 혐오의 대상으로 다가왔을 테다. ‘니가 날 좋아할 수도 있다고? 더러워’ 따위의 생각으로. 그중 한 명은 내게 “A가 동성애니 양성애니 하는 얘기 받아 주지 마. 그러니까 애가 진짠 줄 알잖아”라고 당부하듯 말하며 A의 성적 지향을 일시적인 질병처럼 취급하고 떠났다. 

어쩌면 떠나간 친구들 덕분에, 나는 A와 더 자주 만나게 됐다. 우린 밤이면 집에서 기어 나와 함께 술을 마셨고 종종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만나기도 했다. 여느 날처럼 A와 나를 포함한 네 명이 술을 마시던 밤이었다. A의 제안으로 술자리 게임이 시작됐다. 

“산 넘어 산! 산 넘어 산!”

양손으로 산 모양을 만들고는 모두가 힘차게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왼쪽에 앉은 친구가 내 목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이어 나는 건너편에 있는 친구에게 목에 가벼운 키스를 하고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건너편에 있는 친구는 자신의 오른쪽에게 목, 이마 키스를 하고 볼 키스를 추가했다. 볼 키스를 받은 친구는 건너편 친구에게 목, 이마, 볼 키스에 이어 콧등 키스를 했다. 내 왼쪽의 친구는 다시 내게 목, 이마, 볼, 콧등 키스를 한 뒤 내 입술로 천천히 다가왔다. 

약 5초간 이어진 키스 상대는 A였고, 다른 두 명 역시 남성이었다. 점점 수위는 올라갔고 결국 키스를 넘어서는 ‘야한’ 장면이 이어졌다. 이상하게도 과거의 거부감은 내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키스할 땐 야릇한 느낌에 휩싸였고, 금기를 깨고 있다는 생각에 짜릿하기까지 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점점 이성애에 대한 유일무이한 확신을 버리게 됐다. 어느 순간 나는 스스로를 바이섹슈얼이라 여겼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1년 후 포항으로 대학을 가게 된 뒤로는 몇 년간 남성을 만날 일이 없었다. 이성과 연애하던 관성 때문인지, 상대가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담배나 술마저 눈치 보며 피고 마셔야 했던 기독교 학교의 문화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두어 번쯤 남성에게 설레는 끌림을 느낀 것 외에는 별일 없이 지냈다. 

그렇게 지내보다니 슬금슬금 질문이 다시 올라왔다. 나 정말 바이섹슈얼일까. 나를 바이섹슈얼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아직 나는 남성과 이렇다 할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주로 여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것 같은데. A와 보냈던 시간은 20대 초반의 치기 어린 추억 같은 걸까. 그렇다고 나를 다시 이성애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그간 남성에게 끌림을 느낀 적이 없던 것도 아닌데. 혼란스러웠다. 난 이성애자일까, 양성애자일까, 무슨 성애를 가진 사람일까. 

“어떤 맥락에서 어쩌면 동성애란 말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같은 성별이란 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지난여름, 어느 성소수자 관련 강연에서 들은 말. 맥락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말이지만, 당시 내겐 심정적으로 크게 공감되는 말이었다. 관련 공부를 할수록 점차 질문이 늘어갔다. 남성은 왜 남성이고 여성은 왜 여성일까. 성기가 달라서? 염색체가, 호르몬이 달라서? 그렇다면 남성도 여성도 아닌 간성(intersex)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남/여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무수히 많은 존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상대의 성별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면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는 어떻게 구분하게 되는 걸까. 내가 누군가에게 끌림을 느낄 때 성별 정보는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 어느 것 하나 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여전히 내가 무엇 때문에 상대에게 끌림을 느끼는지, 내 성별은 무엇이고 상대의 성별은 무엇인지, 나의 끌림에 성별 정보가 필수적인지, 그래서 내가 이성애인지 동성애인지 양성애인지 범성애인지 뭔지, 잘 모르겠다. 온통 물음표 상태다. 이젠 그다지 궁금하지도 않다. 별로 상관없으니까. 그나마 알겠는 건 내가 이성애자만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A와 보낸 그날의 밤들이 짜릿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산 하나를 넘었다. 
 

 

글 _ 지민

한동대 부당징계 당사자. 비혼생활공동체에서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며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여행자>에서 활동합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