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쿠오바디스, 아이다”
[이 영화를 보라!] “쿠오바디스, 아이다”
  • 김상목
  • 승인 2021.05.21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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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브레니차 학살, 그 죽음의 무도를 기억하라

 

"쿠오바디스, 아이다" 영화 포스터 이미지

 

1. 유럽연합의 어두운 이면, 보스니아 내전을 다루다

2005년, 데뷔작 <그르바비차>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했던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의 신작 <쿠오바디스, 아이다>는 보스니아 내전 막바지에 벌어졌던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주요 배경으로 한다. 내전 이후의 상흔을 자신의 작품 소재로 자주 사용해 왔지만, 전쟁 당시를 주요 배경으로 담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감독으로선 결의를 담은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1995년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지역에 둘러싸인 무슬림계 마을 스레브레니차에서 8,372명이 숨진, 2차 세계대전 후 전무후무한 유럽 내 민간인 학살이다. 나치가 자행한 제노사이드에 치를 떨며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던 유럽연합의 출범 일성은 이 참혹한 사건으로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물론 100분 남짓한 이 드라마는 대하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그런 참혹한 조건에 놓인 가상의 주인공 아이다가 직면한 극한상황을 통해 관객에게 역사적 비극에 대해 환기하고 긴장과 슬픔, 공포와 연민을 가져오는 영화적 창작이다. 영화는 실제 일어났던 학살의 잔인함을 시작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과 함께 전하며 관객에게 그날을 간접 체험하게 만든다.

 

2. 실재와 픽션의 조화로 극대화된 그날의 참극

전직 교사인 아이다는 통역사다. 3년째 거듭된 내전 상황에서 자행되는 민간인 피해를 보다 못해 유엔이 파견한 평화 유지군 소속이다. 그녀는 교대해온 소수의 네덜란드 군과 함께 캠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그녀가 살던 스레브레니차는 유엔이 설정한 ‘안전지대’에 속하지만, 세르비아계가 주도하는 스릅스카 공화국군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차별 공격을 벌인다. 그녀의 가족을 포함한 수만의 난민은 세르비아 군대를 피해 유엔군 주둔지로 몰려든다. 소수의 네덜란드 평화유지군만으로 본국 세르비아의 원조로 탱크 등 중화기를 갖춘 기세등등한 세르비아계 군대를 막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다.

 

"쿠오바디스, 아이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스틸 이미지

통역사인 아이다는 동포인 보슈나크인(무슬림 계 보스니아인)에게는 유엔을 등에 업은 특권자로, 네덜란드 군인들에겐 온전히 신뢰하기 힘든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녀는 이웃과 동포를 구하려는 선의와 그가 통역해 전달해야 할 너무나 부족하기 짝이 없는, 하지만 보스니아 인들에겐 생명의 동아줄과 같은 평화유지군의 지침 전달 양쪽에 시달리면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세르비아 계 군대의 지도자 믈라디치 장군이 위풍당당하게 승리자의 표정으로 스레브레니차에 입성한다. 장군은 쇼맨십과 선전홍보에 신경을 써가며 평화유지군과의 회담을 신청한다. 뾰족한 수가 없는 네덜란드 지휘관은 이를 받아들이고, 캠프에 수용된 주민들 중 협상 대표자를 뽑으려 하지만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나서지 않는다. (아이다의 남편을 포함한) 급조된 대표단이 네덜란드 군인들과 협상 장소에 나가지만 세르비아 계 군인들은 조롱으로 일관할 뿐이다. 하지만 믈라디치 장군은 떠나고 싶은 주민들에게 다른 안전지대로의 이동을 보장한다면서 유화적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그 시각, 평화유지군 캠프에는 일단의 무장한 장군의 부하 군인들이 들이닥쳐 보스니아 군인들이 난민 틈에 섞여 있지 않나 확인하겠다며 위협을 가한다. 네덜란드 지휘관은 진입을 허가한다. 캠프에 밀고 들어온 그들은 난민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장난치듯 빵과 먹을 것을 나눠준다. 오랜 내전에 시달린 몇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을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극소수의 평화유지군은 난민들을 믈라디치 장군의 제안대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한다.

이제 아이다는 필사적으로 자기 가족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이 과정에서 아이다가 보이는 행동은 어찌 보면 이기적인 태도의 극치다. 유엔 직원이라는 아이다의 출입카드는 캠프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노숙하는 난민들에겐 엄청난 지위이지만 그녀 또한 언제든 평화유지군에 의해 내쳐질 수 있는 존재다. 그들을 대상으로 유용한 통역사라는 지위가 그녀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무기인 셈이다.

이후 아이다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처절한 노력과 분투가 펼쳐진다. 때로는 사자처럼 용맹하게, 때로는 여우처럼 교활하게, 포효하다 애걸하기를 거듭 반복하며 그녀는 자신이 가진 조그마한 지위와 정보를 총동원하지만 거대한 역사적 참극의 파도를 막을 길은 없다.

 

"쿠오바디스, 아이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스틸 이미지

3. 그날의 비극을 섬세하게 재현하는 연출과 배우들의 힘

감독은 스레브레니차 학살과 함께 보스니아 내전을 상징하는 양대 사건인 수도 사라예보 포위전을 최전선에서 불과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3년간 견뎌냈다. 감독 자신부터 내전의 생생한 체험자인 데다 사반세기 전 전 국민이 겪은 전쟁이기에 오히려 실제 경험을 극대화하는 게 아니라 절제하는 데 집중한 것이 작품의 큰 미덕이다.

주인공 아이다 역을 맡은 야스나 두리치치는 세르비아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여전히 전쟁의 상흔이 남아 국가 간 대립이 여전한 가운데 꽤나 놀라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국제적 문제였던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주목할 만한 시도에 다국적 배우들이 그 역사적 무게감을 각인하며 대거 참여해 누구 하나 빠지는 게 없는 긴장감 있는 연기를 펼친다.

네덜란드 군 역할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출신 배우들이 담당하고,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계 역할은 재미있게도 서로 바꿔가며 연기한 경우가 제법 된다. 특히나 영화 속에서 보스니아 인 학살의 최고 책임자 격인 믈라디치 장군 역의 보리스 이사코비치는 보스니아 국민 남배우라고 한다.(!!) 이런 파격이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되는 내전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이들에겐 꽤나 놀라움을 준다. 어쩌면 사반세기가 지나는 불안한 평화가 가져다준 작은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이다의 남편 역과 아들 역을 맡은 배우들 또한 실제 부자 관계로 영화 속 가족의 정을 실감 나게 표현하는 데 충분한 고려가 행해졌다.

주요 배역들의 호흡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만, 조연과 엑스트라 연기자들 또한 대다수가 실제 내전을 경험한 이들이기에 그 현실 연기는 여타의 영화와 비교할 게 못 된다. 믈라디치 장군의 부하들이 캠프에 난입할 때 실제 당시 경험을 떠올린 엑스트라 몇 명이나 실신하곤 했다고 한다. 끔찍한 전쟁의 기억은 그들에게 여전히 생생한 체험이기에 촬영 현장에서도 즉석 토론과 조언을 통해 일정 부분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캠프 내의 혼란스러운 광경 등에서 그런 고증은 빛을 발한다. 많지 않은 예산 조건 속에서도 그런 적극적 참여가 훌륭하게 영화의 배경을 구현한다.

 

"쿠오바디스, 아이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스틸 이미지

4. 극도로 절제된, 하지만 재현된 ‘공포’

(※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므로 영화를 보실 분은 건너뛰길 권합니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주도한 ‘발칸의 도살자’ 라트반 믈라디치 장군과 그 부하들의 캐릭터는 소름 끼치는 공포로 표상된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학살을 기획하면서도 국제정치적 상황을 고려해가며 미디어 홍보에 열중하는 믈라디치의 위선적 태도는 그의 부하들이 벌이는 조롱과 위협보다 몇 배는 더 공포스럽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감독이 공들여 설치한 몇 개의 인상적 장면들에서 진정으로 극대화된다.

장면 1.

믈라디치 장군과 평화유지군&주민대표단의 협상 장소. 대표단 중 경제학자인 여성의 맞은편에 앉은 장군의 부하는 서로 학창 시절 동기라고 한다. 장군은 이 말을 듣고 두 사람은 통성명할 필요도 없겠다며 웃으며 둘이 어떤 관계였냐고 농담을 한다. 하지만 둘은 한 마디도 서로 나누지 않고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장면 2.

캠프 밖에서 세르비아 계 군인들의 무력시위에 겁에 질린 난민들을 응시하던 아이다를 한 군인이 부른다. 알고 보니 그녀의 제자였던 학생이다. 하지만 아이다는 이리 와 보시라는 과거 제자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제자는 아이다의 아들과 동기다. 아들이 잘 있냐고 묻지만 아이다는 아들의 소재를 답하길 꺼린다.

장면 3.

학살을 준비하기 위해 무장한 군인들이 피해자들을 굴비 엮듯 결박해 끌고 간다. 그 광경이 벌어지는 현장 바로 앞 건물 2층 테라스에선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세르비아 계) 남자들이 차를 마시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감금되는 극장시설 바로 밖에선 아이들이 떠들썩하게 뛰어다니며 공놀이를 한다. 군인들이 들이닥치자 겨우 장소를 옮길 뿐이다.

이런 살풍경은 <쿠오바디스, 아이다>가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폭력의 스펙터클을 전시하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아득한 공포의 심연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것이다. 과거의 이웃과 동료와 친구들이 서로 죽고 죽이던 보스니아 내전의 잔인한 특징을 이 영화는 정말 간결하면서도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5. 학살이 끝난 자리에 남은 것

 

"쿠오바디스, 아이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스틸 이미지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그 참혹한 결과에 전율한 국제사회의 개입을 이끌어냈다. 자신감에 넘치며 승리가 눈앞에 왔다던 믈라디치 장군은 결국 제 무덤을 판 셈이다. 하지만 이미 4년간의 내전은 국가 자체를 파괴시켰다.

역설적으로 선한 의도와 이상주의로 개입했던 유엔의 시도는 철저히 무력화되었다. 독자적인 무력과 실행수단이 거의 전무했던 유엔은 늘 지루한 회의와 강대국의 이해타산에 시달렸고, 세르비아 계 정치세력과 무장집단은 그런 속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일단 힘으로 제압하고 기정사실화하면 타협안이 나올 거라는 식으로 기만책으로 일관하는 그들 앞에 유엔의 모든 노력은 무기력하게 놀아났다. 유럽연합은 바로 앞마당에서 일어난 4년간 수십만의 인명피해를 낸 전쟁에도 방관자로 일관했다. 학살의 주된 희생자였던 보스니아인은 보슈타크라 불리는 무슬림들이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살자인 세르비아 계는 그리스 정교회, 보스니아의 뒤통수를 치는 데 시종일관 열심일뿐더러 학살의 종범이던 크로아티아 계는 카톨릭이었기에 이런 방조는 더욱 노골적으로 행해졌다.

스레브레니차 학살이 대대적으로 폭로되고 난 뒤에야 그동안 자신들이 책임질 일이 아니라며 미온적으로 대처하던 미국이 개입한다. 초강대국 미국의 첨단 공군력이 세르비아 계 스룹스카 공화국 군대를 맹폭격해 박살을 내놓는 바람에 공식적 전쟁은 학살이 일어난 그해에 끝난다. 하지만 데이턴 협정으로 내전을 종결시킨 미국의 군사개입은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성 추문을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의도라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선한 의도는 모두 실패하고 그런 추악한 계산과 거래가 평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도 이런 끔찍한 아이러니가 또 없다.

 

6. 영화의 시작과 끝이 상징하는 보스니아의 현재

오랫동안 쉬쉬해왔던, 압도적 비극의 드라마적 재현이라는 1차 과제를 성공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구현해내며 영화는 내전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온 아이다의 시간을 에필로그로 전한다. 감독은 여기에 놀랄 만큼 강렬한 메시지와 학살 이후 상황에 대한 정보들을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아이다는 이미 너무나 변해버린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에필로그 장면은 곧바로 초반부에서 아이다가 꾸던 꿈 혹은 기억과 연결된다. 내전이 발발하기 전 행복했던 한때의 콘테스트 풍경이다. 활짝 웃으며 화장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아이다와 파티 참여자들의 즐거운 한때에 묘한 표정의 남자들이 클로즈업된다. 이 장면은 이미 보스니아 내에서 잠재되어 있던 민족 간 갈등과 대립이 서서히 번져나가기 시작하던 수면 아래 분위기를 암시한다. 그리고 그 눈빛은 아이다가 돌아온 그리운 고향 동네에서, 그녀가 귀환한 학교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그 그로테스크한 지옥도 아래 놓인 한 인간의 비극적 실존은 화면 속에서 화면 안과 밖을 동시에 응시하는 아이다의 눈빛으로 완성된다.

 

"쿠오바디스, 아이다" 영화 스틸 이미지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스틸 이미지

조금 더 부연 설명을 덧붙이겠다. 세르비아 계가 잔혹한 인종청소를 한 건 아주 현실적인 ‘정치적’ 판단에서였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구성하던 공화국들이 분리 독립하면서 그 중심이던 세르비아인들은 타 민족들이 세르비아 외의 국가에 분산된 자신들을 학살할 것이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불안을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이 부추겼다. 보스니아 내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였던 세르비아 계는 세르비아에 합병되거나 세르비아 계 다수 지역을 가능한 한 확보하고 연결하려 했다. 스레브레니차는 그 연결통로에 있었기에 ‘청소’되어야만 하는 지역이었다. 그 간단한 지정학적 이유로 스레브레니차의 비극이 결정되었다.

보스니아 내전과 학살의 결과로 스레브레니차 지역의 인구 비율은 역전되었다. 현재 보스니아는 보스니아-크로아티아 계가 통치하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 계가 사실상 반독립 상태로 정부를 꾸린 스룹스카 공화국으로 분리된 상태다. 스룹스카 공화국 내 인구 비율은 내전 이전에는 세르비아 계 60%, 보슈나크 계 30%, 크로아티아 계 10% 전후였다. 내전이 끝난 뒤 이 비율은 세르비아 계 96%, 보슈나크 계 3%, 크로아티아 계 1%로 바뀌었다. 그럼 그 나머지는? 죽거나 쫓겨났다. 스레브레니차 또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아이다는 그런 고향에 제 발로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고발하고 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는 알고 당신들도 알고 있다고. 그날을 기억하라고. 그녀는 화면 속의 사람들을, 그리고 화면 밖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을 차례로 응시한다. 1995년 스레브레니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해야 한다고, 그 일을 잊지 말라고 그녀는 침묵으로 웅변한다. 그 강렬한 영화적 체험과의 교환으로 영화를 본 모든 이가 받아들여야 할 숙제다.

 


작품 정보

 

쿠오바디스, 아이다 Quo Vadis, Aida?

2020, 보스니아, 드라마, 역사

2021.5.19. 개봉, 104분, 15세 이상 관람가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

배우 야스나 두리치치, 이주딘 바이로비치, 보리스 레르

2021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국제영화상

2021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관객상

2021 예테보리 국제영화제 국제영화 드래곤상

2020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2020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

2020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2021 영국아카데미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최종후보

2021 아카데미영화제 국제장편영화상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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