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대국 이란의 현 정세를 이해하기 위한 영상해설서

 

“우리의 목소리”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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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이란 히잡 반대 시위에 대하여

2022년 9월 16일, 3일 전 이란의 수도 테헤란 시내에서 ‘히잡’을 올바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구금되어 있던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정부기관에서는 그녀가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가족 측은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며 시신에서 물리적 폭력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반박했다. 이란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 출신인데다 히잡을 거부한 것도 아니고 착용 상태가 올바르지 않다는 혐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녀를 체포한 건 ‘도덕경찰’이라 불리는 종교 근본주의 세력이었다.

사태가 불길 번지듯 확산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비록 이란 대통령이 유가족과 연락을 취하며 진상 규명에 힘쓸 것을 천명했지만, 이란의 특수한 정치체제에서 제대로 해당 사안이 처리될 것이라 믿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 결과 3달째 전국적인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이미 군경 사망자만 40여 명, 시위대의 희생은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340여 명이 넘고 체포된 인원은 16,800명을 초과한 상태다. 고작 ‘히잡’ 때문에 저런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다는 걸 멀리 떨어진 한국 사회에선 쉽게 체감하기 어렵지만, 이 사안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이란은 아라비아반도의 왕정국가들이 신봉하는 중세적 와하비즘이나 IS, 알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 집단과는 궤를 달리하긴 하지만 신정국가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상당 부분 비록 보수적인 경향이 짙어도 제법 제도적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 같지만 그 근본에는 종교근본주의가 여전히 뿌리내린 상태다. 그저 머릿수건에 불과해 보이는 ‘히잡’이 이란이라는 중동의 대국이자 이슬람권에서 소수종파인 시아파의 종주국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체 왜 이런 참상이 일어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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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간략하게 훑어보는 이란 현대사

20세기에 이란을 지배하던 팔레비 왕조는 ‘백색 혁명’이라는 서구적 근대화와 함께 경제개발과 군사력 강화를 추진했다. 이 시기 이란은 중동에서 이스라엘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맞먹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기도 했다. 오일머니를 마구 끌어다 군비에 투자한 덕분에 1970년대에 이란 공군은 미 해군 외에는 수출이 불허되던 F-14 ‘톰캣’(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항공모함에서 몰던 바로 그 전투기다!)을 도입했을 정도였다. 그만큼 미국의 대 중동 정치외교 파트너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이 왕정국가는 독재와 기득권 중심의 정책으로 대중의 불만을 한몸에 받았다. 이를 억누르기 위해 공안탄압을 일삼았지만 1979년에 폭발한 민중봉기로 부패한 왕정은 축출되고 만다.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왕을 몰아낸 대중은 좀 더 민주화되고 평등한 세상을 기대했지만 정작 집권한 건 광범위한 보수층의 지지를 얻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었다. 물론 이란은 공식적으로는 (이슬람) 공화국이다. 선거로 대통령과 의회를 선출하는 제도가 작동되는 나라다. 그렇지만 헌법 등에서 신정국가에 가까운 체제임을 명시하고 있기에 공식 국가 원수는 대통령이 아닌 최고 종교지도자 ‘라흐바르’에게 주어진다. 신의 대리인으로서 호메이니에 이어 (보수파 세력의 영수로 대통령을 역임한 경력의) 하메네이가 라흐바르 직을 수행 중이다.

그런 체제 특성 때문에 이란은 아라비아반도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동네에 비하면 그나마 개방된 문명사회로 보이다가도 꽉 막힌 면모를 드러내곤 한다. 여기에 타도 된 왕정과 친밀하게 지내며 독재를 눈 감던 미국에 대한 악감정이 만만찮다 보니 현재 대표적인 반미 국가이기도 하다. 핵 개발 추진 의혹 때문에 미국에겐 ‘공공의 적’으로 불리며 장기적인 경제제재 대상이기도 하다. 1979년 이란 혁명 직후 혼란한 틈을 타 침공한 이라크와의 오랜 전쟁과 경제봉쇄 때문에 이란 사회의 보수화는 더욱 심화 일로를 겪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회 일각의 보수적 색채는 한층 더 짙어졌다. 이란에는 정규군대나 경찰과 별개로 작동되는 ‘혁명수비대’나 ‘종교경찰’의 사적 제재와 지하경제가 거대한 규모로 가동되고 있으며 대통령 출마도 보수적 종교지도자에게 결격사유가 없다는 것을 인정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시아파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있음에도 예상외로 이란 대중의 종교적 색채는 옅은 편이다. 과거 페르시아의 후신인 이 대국은 오래되고 다양한 문화예술과 다민족 정체성이 어우러진 국가이기에 항상 세속주의와 근본주의 간 갈등이 내재한 상황이다. 보수파는 자신들의 권력을 사수하기 위해 여러 문화·종교적 상징을 내세우며 헤게모니를 놓지 않으려 한다. 이란 정치권력의 핵심들은 소수종파인 자신들이 중동에서 포위당해 있다고 믿는다. 다수파인 수니 종파 국가들이 이라크를 부추겨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장기간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어야 했던 악몽과, 미국의 끝나지 않는 제재는 국가 안보를 내세워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내세우게 만들었고 사회 내부적으로 민주화나 경제난을 호소할수록 더 정신무장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터워지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란↔이스라엘, 이란↔수니파 계열 국가(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등의 복잡한 구도로 진행되는 중동의 분쟁 구도는 이란의 내부 사정을 자국 내의 문제로만 한정 짓지 못하게 만든다. 지금도 시아파가 적지 않거나 권력을 쥔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지에 입지를 확대하려는 이란과 이를 저지하려는 타 국가들의 대리전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란 내부 갈등은 국제적 위험을 높이는 화약고가 되어간다.

 

“우리의 목소리”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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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목소리>, 2022년 히잡 반대 시위의 기원

여기 두 명의 여성이 있다. 첫 번째는 1979년 이란 혁명에 참여했지만, 혁명이 민주화와 자유를 향하기보단 이슬람주의로 기울면서 고향을 떠나 40년째 외국에 체류 중인 1960년생 다큐멘터리 감독 나히드 페르손이다. 감독은 2008년에 자신이 시위대로 참가해 축출했던 왕정의 마지막 왕비인 파라 팔레비를 인터뷰해 완성한 <왕비와 나>, 2013년에 혁명 당시 학생 시위대로 참여한 본인의 기억을 담은 개인사적 다큐멘터리 <나의 도둑맞은 혁명> 등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1979년과 2022년, 40여 년의 시차를 아우를 수 있는 경험과 시야를 가진 셈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인물이 등장한다. 1979년 혁명 이후로 변화된 이란에서 나고 자라 이란 의회에 출입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민완 저널리스트가 되었지만 여성인권 문제를 제기하다 탄압을 당한 후 유학을 떠났다가 10년 넘게 귀국하지 못하는 마시 알리자네드다.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 때문에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얻어 활동가가 된 후 왕성하게 인권운동을 벌이는 마시를 만나기 위해 스웨덴에 살던 감독은 미국 뉴욕으로 출발한다. 마치 친자매처럼 둘은 금방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 결과물이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의 목소리>로 완성된다.

영화는 마시 알리제나드의 인권 관련 활동을 통해 우리에겐 잘 드러나지 않은 이란의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를 끄집어내 문제를 제기한다. 마시는 해외에서의 행보 때문에 고향에 돌아갈 기약이 나날이 사라져가는 처지이지만 SNS를 이용해 활발히 이란의 수많은 이들과 교류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활동가다. 언론인 경력을 살려 다양한 방송 콘텐츠를 제작해 이란의 여성 인권 문제를 쟁점화하는 데 애쓰다 보니 이란 정부에겐 점점 더 눈엣가시로 찍히는 중이다.

감독은 마시를 통해 떠나온 지 오래인 이란 현지의 무수한 움직임들을 전달받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국가 원수가 된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 치세에서 갈수록 극단적 보수화와 권위주의 독재로 치닫는 이란의 실정,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영화를 지켜보는 이들의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저런 것까지 공개해도 될까 싶을 만큼 마시에게 도착한 내용을 편집해 화면에 소개하는 장면들은 구체적인 동시에 충격적이다.

자료 성격을 띤 화면들이 소개되면서 아주 잠깐, 정부의 탄압에도 용기 있게 히잡을 벗어던지고 거리에 나서는 이들이 등장해 놀라움과 충격을 전한다. 하지만 곧 이란 정부의 탄압과 이에 편승한 테러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마시는 물론 ‘불신자’이자 ‘방종’을 일삼는 이들에게 SNS나 전화로 악플과 협박 전화가 쏟아진다. 단순히 언어적/사이버공간의 문제가 아니다.

조금만 걸러서 소개된 것일 텐데도 물리적 구타 시도가 공공연하게 넘쳐난다. 한술 더 떠 빼도 박도 못할 만큼 증오범죄 그 자체인, 여성을 타깃으로 삼는 염산 테러가 판을 친다. 그릇된 방식으로 자신들이 가진 힘을 과시하려는 개별적 혐오 행태도 혀를 차게 만들지만 몇 배로 두렵게 만드는 건 공권력의 행보다. 이란 정보당국은 국외에 나가서 반정부 활동을 벌이는 운동가들을 납치한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마시의 동료도 국경 인근으로 유인당해 국내로 강제 송환되어 고초를 겪고 있다.

그런 이들이 국내에서 탄압받고 있다는 생생한 현장 영상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런 무수하게 넘쳐나는 테러와 희생을 지켜보면 마시가 일상적으로 겪어야 하는 불안과 공포가 대체 어떤 강도일지 측량하기도 쉽지 않다. 동료나 지인들의 실종과 체포를 지켜보면 만약 마시가 이란에 인접한 나라를 들렀다가 비상사태를 맞는다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우리의 목소리”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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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란 여성과 연대하는 남성들은 굴하지 않고 싸우는가?

이쯤 되면 대체 이란 의회에 출입하던 엘리트 저널리스트가 왜 이렇게 일신의 안위를 포기하고 히잡을 매개로 국내 여성인권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걸까, 다들 궁금해할 법하다. 이제 마시의 성장담과 가정사가 소개될 차례다. 유쾌하게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거려질 정도로 앞뒤가 척척 맞아떨어진다. 그냥 팔자일까 싶을 정도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녀가 그리워하며 회고하던 가족들은 지금 자신이 이란 정부와 벌이는 갈등으로 핍박받고 있다. 그 때문에 마시는 너무나 힘겹다. 정부는 단순하게 가족을 협박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어릴 적부터 마시를 격려하고 응원해왔던 오빠를 구금하고 다른 가족을 회유해 마시를 고립시키려는 등 치졸한 행태를 이어간다. 가족들이 방송에 나와서 마시가 그릇된 주장을 하고 타락했다며 적대하는 장면이 이리 와서 보라는 듯 공개된다.

마시에게는 단지 피를 나눈 가족과의 단절만이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 정부에 맞서 싸우거나 귀중한 실황을 제보해 주던 동지들이 속속 체포되고 중형을 받는다. 히잡을 벗고 거리를 다니거나 선전한 것뿐이니 처벌은 경범죄 수준으로 시늉만 하겠지 생각하는 건 이란 체제를 너무 쉽게 본 거다. 전철에서 여성인권 선전전을 사이좋게 벌이던 모녀는 징역 24년을 구형 받는다. 자녀를 시위에서 잃고 절규하며 싸울 것을 다짐하던 그 모친은 4년 징역에 처해진다. 마시의 오빠는 ‘동생 간수 제대로 못한’ 비공식적 괘씸죄로 8년형에 처해진다. 그뿐만 아니다. 이란은 사형제를 유지하는 국가다. 체제를 위협하는 정치범에게는 사형선고가 숱하게 떨어진다. 히잡이 뭐라고 목을 매달려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이란 정부와 반대자들은 마시나 인권활동가들에 대해 외국의 사주로 움직이는 반역자 취급하며 매도하는 중이다. 하지만 정작 영화 속 서방세계 또한 마시의 활동을 억누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인권의 기준으로 올바른 외교를 행하지도 않는다. 서구 정상들은 교역 문제로 이란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히잡까지 착용하면서도 인권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 실정이다. 마시는 각국을 돌며 국제사회가 이란의 반인권적 조처에 대해 압력을 행사해 주길 호소하지만, 서방의 인권기준은 지극히도 편의적이다. 이란 국민들이 스스로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빤한 소리에 마시는 그만 분통이 터진다. 목숨 걸고 희생해가며 반 발짝이나마 전진하면 외국 정상들이 히잡 쓰고 입국해 도로 후퇴시키는 거라며 말이다.

 

“우리의 목소리”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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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시위를 통해 이후 미래의 투쟁을 예견할 기회

두 사람이 만나서 영화를 위해 촬영하는 시간대는 2019년이다. 그리고 촬영 중반에 “피의 11월”이라 불리는 대규모의 투쟁이 일어난다. 우리는 단지 2022년 9월부터 격화된 히잡 반대 시위만 알뿐이지만 이란 내에서 히잡 강제 착용을 매개로 한 반정부 시위는 꾸준히 도전받는 중이다.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원인 없는 결과 안 생기는 것처럼 이미 이란에선 21세기 들어 몇 해마다 지속적으로 전국적 차원의 반정부 투쟁이 벌어져 왔다. 비록 2022의 전국적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2019년 11월에도 대규모 투쟁이 일어나 무수한 희생자를 낸 바 있다.

이란은 문제투성이다. 어려움의 근본이 외세의 간섭과 개입이냐 아니면 평범한 경조사이냐 쟁점은 다양한 토론을 요구하는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외압을 핑계로 자국 시민들의 민주화와 빈곤 퇴치 요구를 억누르고 무력으로 진압하는 건 결국 내부적 모순과 한계를 인정하는 꼴이다. 처절한 투쟁과 진압 과정에서 속속 도착하는 속보 영상과 문자가 산처럼 쌓여간다. 마시에게는 하루에도 1,500개 단위 메시지가 도착하는 상황이 거듭된다. 그렇게 단순히 수량으로 누적될 수 없는 개별의 고통과 희생들은 마시를 지치고 절망하게 만든다. 절친한 동료였던 저항 언론인은 납치되어 고문당한 끝에 사형선고에 처해진다. 사방에서 시위 중 사망과 정치범 처형 소식이 들려온다.

대개 시련 속에서 의지를 꺾지 않는 반정부 활동가를 다루는 톤은 일정하다. 고난이 마구 달려들지만 굳은 의지로 평범한 이들은 다가가기 힘든 신념과 고결함을 드러내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검증되고 익숙한 방식과 달리 감독은 평정심을 잃고 점점 더 흔들리는 마시의 번뇌와 실수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려는 기조를 분명히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너무나 불안하고 위태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박제된 위인전이 아니라 실제 주변에 존재하는 인물처럼 마시의 캐릭터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마시 개인이라는 지도자의 영웅담이란 절벽을 넘어, 투쟁하고 저항하는 이들의 마이크이자 통로로서의 평범한 면모를 부각하는 데 집중한다.

그렇게 현재 석 달 넘게 이어지는 투쟁이 어떤 과정과 배경 아래에서 연속되고 있는지를 <우리의 목소리>는 찬찬히 돌아보게 만든다.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희생과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간다. 이란 정부는 ‘도덕경찰’ 제도를 폐지 고려 중이라거나, 헌법 규정을 유연하게 해석할 수도 있다며 유화책을 넌지시 떠보는 동시에 이번 시위로 체포된 정치범들을 사형 집행하는 등 공포심 유발도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투쟁은 여태까지 분출했던 것처럼 히잡으로 표상되는 여성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지속하는 경제난과 실업 문제 같은 민생 전반의 파탄에서 촉발되고 있기에 쉽게 진압될 수도, 단발로 그치기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정권에 선택을 강요하는 거대한 투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해설하는 유의미한 해설로 <우리의 목소리>는 현재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귀한 영상 자료다.

 

*EBS D-box에서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중

 

“우리의 목소리” 포스터 이미지
“우리의 목소리” 포스터 이미지

 


작품 정보

 

우리의 목소리 Be My Voice

2021, 스웨덴·미국·이란·영국·노르웨이, 다큐멘터리, 83분

감독 나히드 페르손

출연 마시 알리네자드

2022 19회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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