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운동을 일상에서 풀어나가려는 커플의 흥미진진 모험담 돋보기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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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혼인식’의 기억

 

2022년 9월 중순, 온라인 청첩장이 왔다. 원래도 그랬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핑계 대기 워낙 좋아진 이후로는 거의 모든 경조사를 가지 않던 중이었다. 또 누가 눈치도 없이 귀찮게 하는 거지? 그런 짜증 섞인 반응과 함께 일단 무슨 내용인지 들여다봤다. 9월 24일 혼인식 일정을 전하는 주인공들은 익숙한 이름과 얼굴이었다. 박배일 감독(<나비와 바다>, <밀양 아리랑>, <소성리>, <사상> 등)과 그와 함께 얼마 전부터 갖은 닭살 행각을 더불어 보여줬던 황남임 님이다. 그들은 통상적인 예식장 대신에 극장에서 (‘결혼식’이 아니라) 혼인식을 치른다고 했다. 행사를 위해 둘이 준비한 자신들의 혼인 과정을 담은 영상을 상영한다는 내용이 함께였다.

하필이면 그 행사가 열릴 예정일은 (가을 필수 참석 코스인)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한창 절정에 이를 주말이었다. 도저히 일정상 갈 수 없는 상황에 난처해진 나는 곧바로 박배일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혼인식 날짜가 왜 이 모양이냐고 항의했다. 이러이러한 상대방의 오류 때문에 나는 절대 참석할 수 없다는 책임 전가 의도가 아니라 (정말 드물게) 참석해야 하는데 못 갈 상황이라 화가 난다는 표시에 가까웠다. 안 그래도 그 날짜 때문에 갈 수 없다는 원망을 연락을 돌렸던 여기저기에서 어지간히 들었다며 박배일 감독은 쭈뼛쭈뼛 변명했다. 아무튼, 못 갈 상황이긴 하지만 축하를 전했다. 청첩장 맨 아래로 스크롤 쭉 내리면 조그맣게 기입된 계좌번호로 축의금을 송금했다. (영화제 현장에서 축의금 보낼 계좌번호 묻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뒤, 혼인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주변 지인들에게 동영상 링크가 전송되었다. 행사 현장에서 상영되는 미니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연결통로였다. 화면에는 둘의 연애 행각 그리고 누구는 익숙하고 누구는 낯선 얼굴의 두 사람의 지인들 인터뷰가 잔뜩 펼쳐지고 있었다. 조금 보다 일단 중단했다. 홍보영상치곤 40분이 훌쩍 넘어갈 정도로 분량이 꽤 긴 편이기도 하고, 일 때문에 봐야 할 영화는 첩첩산중 쌓여 있다는 핑계를 대었다.

두 사람은 혼인과 함께 꽤 오랫동안 더불어 계획했던 유학길에 곧 오를 예정이라고 했다. 한동안 못 보게 될 상황이라 송별 겸해서 오랜만에 부산에서 열리는 행사에 들렀다. 그곳이라면 그들이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반갑게 재회한 이제는 부부가 된 두 사람과 근황을 나누던 중 해당 작업이 수정과 편집을 거쳐 영화제에도 응모했다는 소식과 함께 황남임 님이 소감을 물어왔다. 아뿔싸! 아직 온전하게 다 보지 않은 상황이라 쥐구멍을 찾아야 하는데 외나무다리에 서 있었다. 얼른 시간을 내서 보겠다며 옹색하게 달아나야 했다.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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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공개된 ‘이 커플이 사는 법’ 탄생 비화

 

그런 사연 덕분에 벼르고 벼르다 마침내 다큐멘터리를 정주행하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최초로 해당 작업이 공개되었던 상영관에 미리 온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들 사이의 짧은 대화가 이어진 후 곧바로 각자의 지인들 소감 인터뷰가 진행된다. 지인들은 그들 각자의 추억과 당부, 염려와 축하 메시지들을 피식피식 웃어가며 들려주었다. 서두의 짤막한 덕담(?!) 시간이 끝나고 이어서 혼자 해외여행 중인 신랑의 편지와 둘의 성장 과정이 여느 혼인식 사전 영상 풍으로 교차하며 시작되었다. 누구는 누굴 닮았구나 하는 단상과 그들의 과거 풋풋하던 시절을 목격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이제는 소리 내어 키득거려가면서 다음엔 누가 나오고 뭐가 공개될까 궁금해진다.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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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다시 등장한 지인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둘의 이미지를 구전동화 들려주듯 형상화 한다. 거기에 사진과 영상으로 꾸민 배경화면을 캔버스 기능으로 지원한다. 예전부터 익히 아는 부분도 조금 있었긴 하지만 (특히 신부에 대해선) 내가 모르는 구석이나 체감이 부족했던 면모가 적지 않았기에 화면 속에 펼쳐지는 내용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그렇게 각자의 인생역정을 떼어놓고 봐도 꽤 흥미로운 구석이 가득한 두 사람의 생애 중간결산이 속속 이어졌다. 이런 건 재미가 없을 수 없다.

그리고 심화학습의 시간이 도래한다. 사실 이 커플은 요즘 세태와 사회적 시선으로만 보면 통 만날 일 없을 사이다. 시쳇말로 ‘급’이 전혀 맞지 않은 관계다. 둘은 나이 차이도 제법 크고 조건 차이도 확 난다. 이런 둘이 어떻게 만났고 무슨 계기로 함께 삶을 개척할 각오에 이른 건지 모두가 궁금해할 비밀이 개방될 순서가 도래한다. 커플이 된 과정 이야기를 예전에 듣긴 했지만, 막상 실감은 덜했기도 하다. 이들이 ‘썸’을 타는 과정의 오글거리는 진실이 하나둘 폭로된다. 일순간 참다못해 배를 잡고 혼자 웃어댔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혼인은 둘이 서로만 좋다고 성사되는 게 아니다. 그런 냉소적인 현실감각을 장착한 지 오래인 나로선 이제 그 쓰라린 이면이 슬슬 나오겠다는 불길한 징후를 느끼기 시작한다.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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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강요하는 ‘조건’으로부터의 험난한 탈주 과정

 

이 커플 중 신랑은 세속적 조건에서 신부보다 현저히 뒤떨어진다. 신랑은 나이가 훨씬 많다. 드라마건 영화건 흔히 신랑이 나이가 많으면 그에 비례해서 경제적 형편이나 집안 배경이 우월해야 하는 것으로 설계된다. 하지만 이 커플에서 나이 많은 신랑은 오히려 수입도 불안정하고 하는 일도 (사회적으로 어쩌다 조명되기는 하지만 지극히 좁은 독립영화계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못한) 가난한 예술가의 전형에 속한다. 물론 지나온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인생의 많은 걸 포기해가며 구축해온 견고한 작품세계와 그 결과물로 보여준 성취를 익히 아는 소수의 사람에겐, 그가 세상에 대해 품은 의문과 지난한 수행 과정에서 구축한 세계관, 그리고 빈궁하지만 자유로운 예술가의 입지가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으로 작동할 테지만 그 격랑은 지극히 좁은 범위에 그칠 따름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SNS에 넘쳐나는 별 의미 없이 반복되는 유머를 통해 커플이 결혼 준비과정에서 서로가 가진 물질적 배경이나 그로 인해 파생되는 생각의 차이로 파경을 맞는 사연을 숱하게 일상적으로 접한다. 물론 과거에도 신분계층의 벽, 지금 따져보면 말도 되지 않는 별의별 편견(특정 지역이나 성씨 차별 등) 때문에 사랑만으로 극복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적지 않았지만, 어느새 정신적인 ‘계급’ 분화가 이뤄지는 요즘 세태에선 이 커플이 결국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졌다는 소식이 더 통상적인 경우로 비칠 지경이다. 대체 둘은 그 예정된 바늘귀를 어떻게 통과하려고 궁리했을까.

다시 화면을 통해 신랑과 함께 다큐멘터리 공동체인 ‘오지필름’에서 10여 년 넘게 활동해온 동료 영화인들의 충격적인 증언이 이어진다. 물질적 욕망과는 담쌓고 사는 것처럼 보였던 그가 갑자기 자가용을 구입한 것은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에 일상적으로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를 알던 이들에게는 실로 충격과 공포 수준의 격변이다. 하지만 그런 경악스러운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이 오랜 동료들은 그런 충격적인 면모가 변절이나 투항, 혹은 속물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단한 신뢰다. 오히려 (남한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파트너와의 새로운 삶을 최소 충분조건을 설정하고 충실하게 준비하려는 인간적인 성의 혹은 각오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와의 관계를 빼면 자기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고 고백할 만큼 긴 시간 동안 그를 지켜봐 온 이들의 판단은 그렇게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게 만든다. 오죽하면 생전 볼일 없을 듯한 상황을 발생시킬 만큼 정말 둘은 떼어낼 수 없도록 사랑하는 것 같다는 심심한 소감이  흘러나온다.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스틸 이미지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스틸 이미지

 

하지만 이것만으로 끝날 리는 없다. 물질적 조건의 격차는 필연적으로 사상과 의식의 갭으로 연결된다. 명시적으로 묘사되진 않았지만, 세상의 통념대로 가족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을 테다. 예정된 수순처럼 그로 인해 둘은 2차 시련을 겪는다. 자신들이 직면했던 험난한 파도를 웃으며 회상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 실로 뻔뻔하게 여기에서 두 공동감독은 전형적인 클리셰 장치를 배경에 마구 투입한다. 멀쩡하던 화면에 갑자기 안개가 엄습한다. 태풍과 호우가 휘몰아친다. 엄동설한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눈보라가 쏟아진다. 뜬금없이 초토화된 밭의 풍경들, 자물쇠와 장애물의 이미지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저 평범한 시골 산책길이 라비린토스의 미로로 돌변한다. 급기야 낯간지러운 신파조의 대사마저 잔뜩 등장한다. 애초에 예술작품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 내밀한 비망록으로 작업했기에 가능한 단면이다. 자신들이 이렇게 고민하고 고생했다는 걸 알아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은 확실히 전달된다.

그리고 둘은 혼인에 대한 관점에서 출발해 이를 표현하기 위한 영상 편집 기조와 방향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다가도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와 토론하며 간격을 좁혀나간다. 영상 편지 속에 가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지만 진솔한 감정이 교차하면서 둘은 어떻게든 답을 찾아간다. 둘은 그저 운수 좋게 모든 문제가 풀려나가는 환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 대신 지독한 현실에 발을 딛고 선다. 하지만 자신들의 노력만큼은 핑크빛 판타지의 공간을 이 지옥 같은 세상 한구석에서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은 놓지 않는다. 장난스러워 보이다가도 마치 백조의 수면 아래 물갈퀴처럼 때로 필사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이 유독 막판에 많다.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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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모색

 

돈 못 버는 괴짜 다큐멘터리 감독이 혼인에 골인하는 과정과 그 증거물로서의 단편 다큐멘터리 기록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늘 우리 곁에서 함께하는 존재라는 기억과 믿음 때문이다. 박배일 감독은 밀양에서, 소성리에서, 그 외에도 숱한 ‘현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늘 카메라를 든 채 출몰하곤 했다. 특히 그의 이름을 알린 몇 편의 영화에서 주인공 자리를 늘 꿰차던 ‘할매’들이 입버릇처럼 ‘장가는 갔나?’ 던지던 질문 겸 안부에 어쩌면 박배일 감독은 ‘대답’을 고심해 내놓은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이 엉뚱한 영상기록은 다른 색깔로 전환된다.

‘86세대’, ‘87년 세대’, ‘민주화 세대’ 등 다양한 명칭으로 호명되는 사회운동 친화적인 한 세대는 ‘활동가’라는 낯선 호칭으로 불리는 일군의 사람을 낳았다. 정신적으로 그들의 선배라 할 의병이나 독립군들과 다르지 않게, 목숨까지 걸고 다른 이들이 누리고자 하던 안락한 삶을 과감히 포기하는 걸 미덕으로 여겼던 이들의 삶에서 일정 부분 표출된 건 공적 활동과 사적 일상의 분리였다. 전자에 집중하며 후자는 중요하지 않거나 챙길 수 없는 것으로 이분법적 분할이 이뤄졌다. 격동의 시절, 거리에서 ‘기동전’이 벌어지던 때에는 필연적인 결과였으리라. 하지만 대번에 극복하고 지양하고자 했던 사회체제가 강고하게 버티면서 다양한 분야로 분산된 ‘진지전’의 시대가 확립되자 이런 면모는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적지 않은 이들이 ‘혁명의 길’에 가족과 사생활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책임을 방기하거나 불가항력으로 포기하던 경향은 진지전이 지속되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예전에는 같이 활동하던 커플 중 (흔히 생물학적 남성인) 일방이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반대로 여성이 대다수인) 일방이 가정과 생계를 책임지는 ‘분업’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었다. 어느새 중장년이 된 이들에게서 과거의 신념만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한계와 격차가 주변에서, 그리고 내부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대응은 각개약진으로 이뤄졌다. 혹자는 가족공동체 내부 문제를 방치하거나 외면했고, 혹자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혹해하다 본래의 의지를 꺾고 ‘생활인’으로 뒤늦게 합류하기도 했다. ‘혁명적 연애’를 지속하는 풍경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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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숱한 시행착오를 목도해 온 상황에서 뜬금없이 출현한 이 간질간질한 기록영상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강제로 분리한 채 성차별과 역할 구분을 합리화했던 과거 사회운동 세대의 오류와, 사적 욕망과 소박한 행복을 복권시키려다 투항주의로 기울어버리는 후속세대의 표류 사이에서 비록 직항로를 쉽게 찾긴 힘들지만 ‘상상의 분리’가 아닌 실제로 당면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통합’된 길을 찾으려는 전인미답의 혼인투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서로에게 궁금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는 결코 놔두지 않는다. 꼭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어야 하는가라는 요즘 세대가 직면한 질문에 자신들이 결정한 선택을 두루뭉술하게 넘기지 않고, 주변은 물론 자신들에게 스스로 응답하기 위해 24시간을 살아내고 있었다. 영화의 후반부는 그 자문자답의 치열함이 유독 돋보인다.

둘은 인생의 동지로 하루하루 여전히 툭탁거리는 중이다. 같은 점 보다 다른 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서로에 대해 일진일퇴하며 교집합을 그려나간다. 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무한운동을 통해 세대갈등에 대한 그들 나름의 대안 모색까지 확장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대비효과 큰 커플도 참 오랜만에 보는 셈이다) 일방에 대해 다른 일방이 양보하고 맞춰주는 게 더 이상 미덕이라 생각 않는 경향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변화 속에서 이 커플이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풍속도를 개척할지 흥미진진하다. 그 가지 않은 길을 기어코 밀어붙이는 자신감의 근거가 대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미지의 길로 함께 손잡고 뚜벅뚜벅 걸어가려는 이 무모한 커플을 바라볼 때는 절로 질투와 함께 입꼬리가 사악 올라가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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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정보

 

사랑, 왜들 이러실까요?

2022, 한국, 다큐멘터리, 42분

감독 황남임, 박배일(촬영 및 편집 병행)

기획 및 제작 나하나 필름 Nahana Film

출연 김주미, 문창현, 박희주, 윤태경, 이승훈, 이영희, 이은지, 전서린, 홍서윤, 황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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