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서스 트랩’이 구현된 빙하기 속 최후의 ‘인류세’

 

“설국열차” 그래픽 노블 합본판(by 세미콜론 출판사)
“설국열차” 그래픽 노블 합본판(by 세미콜론 출판사)

 

◆ 확장을 거듭하며 다시 소환되는 설국열차의 세계

 

첫 시작은 만화였다. 다만 청소년 대상의 ‘코믹스’가 아닌, 성인용 그림 소설 형태인 ‘그래픽 노블’에 가까운 형태다. 1970년대부터 이야기를 구상했던 자크 로브는 1984년, 그림을 담당한 장 마르크 로셰트와 함께 1권 <탈주자>를 출간한다. 이후 자크 로브가 사망하자 장 마리 로셰트는 뱅자맹 르그랑을 영입해 2권 <선발대>와 3권 <횡단>을 각각 1999년과 2000년에 선보인다. 전 3권으로 완성된 <설국열차>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2004년 세미콜론 출판사에서 국내 번역 출판이 이뤄진다. (이 만화의 국내 독자 중에는 봉준호 감독이 있었다) 현재는 1~3권 합본 판형이 국내에서 판매 중이다.

알음알음 아는 이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나돌던 만화는 201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화로 세계적 열풍을 불러왔다. 인위적 원인에 의해 졸지에 전 지구가 빙하기로 돌변한 세상, 그 가운데 생존이 확인된 인류는 지구를 한 바퀴 횡단하며 엔진 동력으로 온기를 유지하는 ‘설국열차’ 탑승객뿐이다. (훗날 보강된 설정으로 3천여 명 수준) 그러나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류는 열차 안에서 생존을 위한 상호 협력 대신 끝나지 않는 계급투쟁을 거듭한다. 어떤 이는 열차 내 기득권층에 맞서 ‘혁명’을 꿈꾼다. 다른 이는 고립된 열차 안에서의 무한투쟁 대신에 열차 밖으로 탈출 후 다른 방식의 생존을 모색한다.

영화의 상업적-비평적 성공을 본 원작 만화가들은 에필로그 성격으로 4부 <종착역>을 2014년에 완성한다. 3부 결말에서 이어지는 후일담 성격을 갖췄지만, 영화의 오리지널 스토리에 영향을 받아 이야기가 연결되는 형식을 취한다. 그렇게 만화는 처음 3부작의 암담한 디스토피아에서 영화화 이후 낙관적으로 선회해 마침표를 찍는다. 이렇게 종결될 줄 알았던 이야기는 넷플릭스 제작의 오티티(OTT) 드라마로 새로운 출발을 알린다. 드라마 시리즈는 2020년부터 매년 1시즌씩 공개되고 있다. 총 4시즌 계획으로 영화에서 10년 전 상황을 배경으로 방영 중이다. (현재 1~3부는 넷플릭스 채널에서 시청 가능) 드라마 버전의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1편의 영화로 제작될 당시엔 세부적으로 언급되지 못한 가상의 열차 속 세세한 묘사는 그동안 팬들이 품었던 호기심에 대해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선사한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영화에서는 꼬리 칸에서 점점 열차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 가운데 설국열차 내의 차별적 공간 구획으로 묘사되던 계급 갈등이 드라마는 시즌마다 10부작 편성으로 여유 있게 배치된 분량 덕택에 세세한 설명이 가능해졌다. 영화에선 익명으로 등장하던 군대와 상류계급이 드라마에선 좀 더 구체적으로 캐릭터화가 이뤄진다. 무엇보다 꼬리 칸 vs 선택된 상류층으로 단순화되었던 계급 구도가 꼬리 칸 vs 3등 칸 vs 2등 칸 vs 1등 칸으로 세밀하게 나눠진다. 그 결과는 좀 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정치지형에 근접한다.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설국열차 속 세계는 바로 ‘맬서스 트랩’이 실현된 유일무이한 사례라는 점이다.

 

설국열차 영화 스틸(by 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 영화 스틸(by CJ엔터테인먼트)

 

◆ 맬서스가 상상했던 잔인한 세계의 본질

 

십자군 전쟁과 중세를 경유하며 서유럽 내에서 중세 봉건제를 넘어서는 다양한 사회 변화 속에서 상업자본이 축적된 서구 세계는 이후 지리상의 발견과 식민지 경영으로 상업혁명의 시기를 맞는다. 이후 산업혁명 과정을 거치며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을 시작한다. 경제 측면에서 자본주의는 정치적으로는 시민혁명, 군사-외교적으로는 제국주의로 연속된다. 그런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한다. 초창기에 자본주의와 시장의 법칙을 설명하려던 이들이 이른바 ‘고전파 경제학자’들이다. ‘보이지 않는 손’의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비교우위론’을 창안한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맬서스가 대표적인 고전파 경제학자다.

이 고전 경제학자들은 대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보이지 않는 손’의 권능을 믿으며 미래에 대해 낙관했다. 심지어 칼 마르크스조차 자본주의가 가져온 생산력의 눈부신 변화를 예찬하던 시절이다. 하지만 토머스 맬서스의 시선은 조금, 아니 꽤 달랐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인구론>에서 악명 높은 ‘맬서스 트랩’을 설파하기에 이른다. 그는 전체 인구의 삶의 질은 아무리 기술과 생산력이 발전한다 해서 향상될 수 없다는 서슬 퍼런 주장을 제기한다. 가난한 이는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섣부른 동정은 오히려 더 큰 불행을 낳을 뿐, 현실 개선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시혜적으로 부를 분배하고 복지제도를 시행하면 결국 경기후퇴 혹은 불황으로 추락하는 패착으로 보았다.

맬서스의 이론에 의하면, 식량 생산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인구 증가는 기하급수적으로 가파르게 증가한다고 봤다. 그중에서도 사회적으로 실업과 빈곤을 불러오는 대상인, 불필요한 하층민 잉여 인구는 반드시 지속해서 억제되어야만 했다. 빈곤층의 결혼과 출산을 늦추는 건 필수다. 산아제한 정책은 지극히 정당한 조치가 된다. 심지어 극단적으로는 전쟁과 기아가 인구 조절 최종 해결책으로 고려되었다. 그의 학설은 이후 우생학과 결합하기도 한다. 그 결과 ‘우량 민족’의 ‘생활권’이라는 사이비 이론이 창궐하고 ‘열등 민족’은 절멸되어야 한다는 해괴한 주장이 과학으로 둔갑한다. 그 끔찍한 귀결은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의 이론 토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을 믿지 않고 경기 침체를 대비하려는 이론에 주목했던 이들이 있었다. 그중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 의해 반영된 맬서스의 이론은 불황에 대처하는 수정자본주의로 변환되면서 영욕을 거듭한다.

물론 맬서스의 <인구론>은 지구상의 인류가 80억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유효성을 인정받는 것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현재도 세계 인류의 빈곤과 기아는 절대적 식량 생산량의 부족이 아니라 상대적 불평등에 기인하는 문제라는 게 입장을 달리하는 모든 경제학자의 판단이다. 인류가 지구 환경을 파괴하고 천연 그대로의 자연환경을 박살 내는 와중에도 실제로 거주하거나 활용하는 면적은 지극히 적고, 식량 생산량은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 물량 자체는 넉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맬서스 트랩’은 경제학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로, 사회적 극단주의 주장으로 기이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중이다. 그런 과도한 상황 설정이 유일하게 실현된 공간은 바로 가상의 ‘설국열차’ 안 극도로 폐쇄된 생태계뿐이다.

 

“설국열차” 드라마 포스터(by 넷플릭스)
“설국열차” 드라마 포스터(by 넷플릭스)

 

◆ 설국열차 속 계급투쟁의 지형도

 

영화 <설국열차> 안 세계는 현대사회 모순을 그대로 닮았다. 한 OTT 드라마에서 근래 화제가 된 ‘커튼 한 장으로 계급이 구분되고 누구도 그 얇은 커튼을 넘지 못하는’ 항공기 좌석의 계급 묘사가 설국열차에선 탑승한 칸에 따라 더 극단적인 형태로 재현된다. 비행기야 짧은 비행시간 동안만 견디면 되지만 설국열차는 바깥으로 (설정상으론) 영구적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가면 곧바로 얼어 죽는 것으로 묘사되니 말이다. 좋든 싫든 열차 내에서 버텨야만 한다.

열차는 철저히 탑승 칸에 따라 신분제로 구분된다, 내부에서 생산되는 자원만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1,001칸 규모의 초호화 열차를 만드는 데 거액의 지분을 투자한 갑부들이 오늘날의 초국적기업 대주주들처럼 이권을 공유한다. 그 소수가 일등석을 차지한다. 영화 속 1등석 풍경은 웬만한 현실의 고급 맨션이나 궁전 같은 호화주택을 능가한다. 소수의 가족이 열차 1칸을 독차지하기에 조금 갑갑하긴 해도 폐쇄공포증 생길 일은 없어 보인다. 게다가 드라마상에선 1등석 승객의 개인 경호원들만이 총기를 휴대한다. 무력 수단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열차의 자원 중 가장 좋은 건 이들의 독차지다.

 

“설국열차” 영화 스틸(by 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 영화 스틸(by CJ엔터테인먼트)

 

군대와 기술자로 구성되어 필수유지업무를 지탱하는 전문가 집단이 2등석을 차지한다. 이들은 일종의 중산층이자 관료 역할을 맡는다, 대개 생산과 서비스 노동자들이 3등석을 차지한다. 사실상 서민층에 해당한다. 이들의 인구 비율은 1:2:7 정도다. 그런데 원래 열차 설계자들의 계획에 없던 존재가 끼어든다. ‘불청객’에 가까운 꼬리 칸 승객들이 바로 그들이다. 기후 재앙으로 인한 멸망이 도래할 때 살아남기 위해 열차에 무임승차한 이들이 맨 끝 창고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들은 생존에 필요한 최소 물자만 공급받으며 불가촉천민 대접을 받는다. 내쫓지 않고 받아들여 준 것만도 모든 게 얼어붙은 세계에서 베풀어진 ‘온정’이라 해야 할까?

실은 ‘다 계획이 있다.’ 열차의 경영진은 처음에는 얼어 죽거나 말거나 내쫓으려던 군식구들에게서 어떤 ‘쓸모’를 발견한 것이다. 꼬리 칸은 극한의 푸대접 속에 수시로 폭동을 일으키곤 한다. 물론 힘의 차이가 너무 크기에 이들의 분노는 압도적인 진압에 곧 무력해진다. 늘 패배하고 말지만 경영진으로선 이 과정에서 열차 내 인구 증가를 막아 한정된 자원을 절약할 수 있다. 즉 1등석 승객들에게 피해가 끼치지 않는다면 적당한 인명피해는 오히려 이득인 셈이다. 실로 맬서스가 봤다면 대만족할 절감 정책이다.

 

“설국열차” 영화 스틸(by 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 영화 스틸(by CJ엔터테인먼트)

 

종말로부터 17년이 지나 열차 내 자원도 한계에 봉착한 영화에선 숫제 꼬리 칸 정원을 이번엔 어느 정도까지 죽일 것인지 미리 정해 두기도 한다. 열차에 여유가 조금 있던 드라마 시점에선 전 계층에 걸쳐 산아제한을 엄격히 하는 것으로 대응한다. 그런 푸대접 속에서 방치해두다시피 하지만 꼬리 칸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1등석 승객에게 필요한 노동 인력은 그들 사이에서 강제로 차출한다. 전문 기술을 가진 이들, 그리고 열차의 치부를 숨기기 위한 아동노동에 동원될 어린아이들이 주요 대상이다. 아동노동 풍경은 산업혁명 시기 광범위하게 이뤄지던 공장 사진에서 고스란히 따왔다.

여기에 두 번째 효용이 추가된다. 1등석은 열차 내 무력 수단을 독점하고 기득권을 누리지만 숫자는 3등석이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3등석 승객들은 놀고먹는 1등석에 늘 불만이 많다. 형식적으로는 계급 간 협의가 이뤄지는 각 칸 대표들 모임에서 1등석과 3등석은 항상 긴장 속에 대립한다. 그런데 여기에 변수로 작용하는 게 꼬리 칸 실업자들이다. 이 예비 노동자층은 3등석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해 저항을 억제하는 잠재적 대체인력인 셈이다. 열차의 운영 방침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권력자들은 분배와 평등을 추구하다가는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며 현상 유지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강변한다. 열차 내 상황을 솔직히 터놓고 공동체 의식을 키우기 위한, 충분히 가능한 조치도 외면한 채. 그 결과는 드라마로부터 10년 후, 퇴폐와 향락에 찌든 1등석과 점점 쇠락해버린 중간계급, 그리고 폭력혁명으로 치닫는 꼬리 칸의 무한투쟁이다.

 

“설국열차” 영화 스틸(by 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 영화 스틸(by CJ엔터테인먼트)

 

◆ 2022-2023 난방비 대란으로 다시 본 <설국열차>의 세계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넘기면서 세계 에너지 위기가 지난겨울 공포로 다가왔다. 다행히 전반적으로는 큰 파국 없이 세계가 우려한 바에 비교해선 잘 넘긴 셈이다. 하지만 국내 상황만은 좀 다르다. 2023년 초부터 국내 초유의 난방비 대란이 도래했다. 지난해 4차례에 걸쳐 40% 넘게 인상된 도시가스 요금은 가파른 물가 인상의 한 축을 도맡았다. 하필 이례적으로 2022년 연말부터 2023년 초반에 전례 없는 동계 혹한이 에너지 요금 인상을 체감하게 했다. 순식간에 난방비 인상 폭은 민심의 척도가 되었다.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누적 적자를 감안해 차후에도 에너지 요금은 가파르게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설 명절 당시 오랜만에 모인 친지들 사이 최대 화두도 난방비 인상이었다. 위기에 직면한 여야 정치권은 책임 소재를 놓고 전임 정부 vs 현 정부 책임론을 지피며 여전히 대치 중이다. 하지만 시민들은 책임소재보다 당장 난방비 대란을 어떻게 극복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급속도로 불어나는 국가부채를 봐서라도 난방비 인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사회 각계각층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불만의 겨울’이 도래한 상황이다. 그런 사회적 분열 속에서 갈등을 누그러뜨리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감내하도록 설득하지 못하는 정치의 책임은 분명해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을 정복에 나선 나치 독일에 맞서 항전을 선언한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취임 직후 하원 연설에서 역사에 기록될 어록을 남긴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 눈물, 그리고 땀뿐.”(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

하지만 단호한 저항 의지에 가려진 이면이 있다. 영국의 양대 정당 보수당과 노동당은 서로 정권 획득을 위해 치열하게 대립하던 갈등을 내려놓고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국난에 손을 잡은 것이다. 거국연립내각을 구성해 보수당 대표 처칠이 전쟁을 지도하고, 내치는 노동당 대표 클레멘트 애틀리가 맡아 전후 복지국가 건설의 초석을 닦았다. 그렇게 전시상황을 극복한 영국인들의 지혜와 협력은 여러모로 요즘 국내 정치 현실에 시사점이 많다. 반면에 현실 국내 정치에서 여야 무한 대립은 정책과 노선 차이라기보다는 ‘적대적 공생’ 관계에 가까워 보인다. 누구도 실제로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것보다 상대의 실책을 물고 뜯어 차선으로 선택되는 ‘게임’에만 골몰하는 형국이다.

설국열차의 세계관은 작금의 한국 사회 현실에서 반면교사 역할로 여전히 효용을 가진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화 버전이 꼬리 칸에서 정수 칸-식물 칸-농업과 목축-어업 칸-교육과 레저 칸으로 차례로 이동하면서 인류 문명의 생산력 발전상과 그에 따르지 못하는 생산관계 설정을 압축한 것에 비교해, 현재 진행 중인 드라마 버전은 좀 더 계급투쟁에서 합종연횡을 벌이는 각 계급 간 대립과 ‘정치’의 영역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영화와 설정을 공유하지만 온전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닌지라 영화 속 결말과는 어떻게 다른 귀결을 선보일지 올해 내로 등장할 시즌 4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설국열차” 드라마 스틸(by 넷플릭스)
“설국열차” 드라마 스틸(by 넷플릭스)

 

◆ ‘맬서스 트랩’의 주박을 넘어 사회통합은 가능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전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과 저성장의 고통을 안기는 중이다. 하지만 그 고통은 결코 평등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1차적으로 개별 국가별로는 3세계에 피해가 전가되는 중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등 거듭된 경제난과 기후 재난으로 식량과 에너지 자급이 불가능한 여러 나라가 당장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수급하지 못해 비명을 지르지만, 전쟁을 도발한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을 치르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미국 중심의 서방 진영도 무책임할 뿐이다.

물론 재앙은 3세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1세계 내에서도 위기는 고조되고 있다. 한데 그 재난은 일국 내에선 불안정노동과 장기 실업 상태에 처한 저소득층에게 더욱 가혹하게 닥치는 중이다. 불황의 고통마저 ‘상후하박’으로 펼쳐지는 셈이다. 공통적으로 가장 도움이 절실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제도는 축소 지향으로 치닫는다. 이런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통합을 요원하게 만든다. ‘시민’의 일체감이 소멸한 자리에서 적대적 갈등은 대책 없이 극단화될 것이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완전히 분열된 세상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폭발할지 모른다. 한국 사회가 1세계로 온전히 진입하느냐 vs 남미형 모델에 갇히느냐를 놓고 논쟁도 있었지만, 경제 규모가 아니라 사회의 건전성 제고에서 그 판가름이 날 상황이다.

이번 겨울 난방비 대란은 그런 위기를 예방하느냐, 심화시키느냐의 기로가 아닐까 문득 걱정이 앞설 때가 있다. 예측해 방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요즘이지만, 그렇게 피할 수 없는 고통을 공정히 분담하느냐 일방적으로 전담하느냐를 놓고 그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감정은 종이 한 끗 차이가 아니라 절대 건널 수 없는 강처럼 차원이 다른 문제다. 현실의 갈등을 극단화한 <설국열차> 속에서 일어나는 파국은 그래서 꽤나 ‘징후’적으로 섬뜩하게 다가온다.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기득권층이 내세우는 ‘맬서스 트랩’에 입각한 현상 유지는 불공정의 변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결말이 어떻게 나게 되는지 확인하는 것은 현실 사회문제에 대한 유용한 영감으로 작용할 테다.

 

“설국열차” 영화 포스터(by CJ엔터테인먼트)
“설국열차” 영화 포스터(by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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