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 청구가 2월 14일 시의회에서 수리됐다. 서울시의회는 지난해 8월 청구인단이 제출한 6만 4,347명의 명단을 검증한 결과 4만 4,856명의 서명이 유효한 것으로 확인돼 청구 요건인 2만 5천 명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서울시의회 의장은 수리한 날부터 30일 안에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발의해야 하고 1년 이내에 심사 의결을 마쳐야 한다. 참고로 서울시의원 여당:야당 비율은 7:3이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거나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충남, 경기, 전북에서도 진행 중이다. 학생인권을 반대하는 세력에는 일부 종교 집단 말고도 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 구도로 바라보며 마치 학생인권조례가 교권 추락의 원흉인 것처럼 왜곡하는 교사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진보, 보수 구분 없이 교권 침해의 심각성을 토로하며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아야만 교권이 지켜진다’는 부끄러운 논리를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1월 26일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의 날 기념행사’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통해 학생인권에 대한 편견들에 질문을 던져 본다.

 

학생인권조례의 성과?

2022년 1월 26일, 서울학생인권조례 10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그날 교육청이 발표한 학생인권조례 10년의 성과에 ‘학교마다 편안한 교복, 두발, 속옷 규정을 공론화시킨 것’이 들어간 데에 대해 ‘청소년 인권운동연대 지음’의 활동가는 “당연한 권리인 학생 인권을 공론화하거나 찬반 의견을 묻는 것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바로 이 대목이 “왜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폐지 위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지점이다. 학생인권을 바라보는 교육청의 잘못된 관점이 학교와 교사에게 그대로 지침으로 내려져 각 학교의 학교생활규정(아래 ‘학칙’)과 상벌점제에 담겼다. 또한, 학생 대상의 인권 교육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학부모에게 학생 인권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자체 점검, 설문조사에만 중점을 두고 10년 동안 자화자찬했다. 정작 학생과 학부모는 학생인권조례를 모르고 있는데 교육청과 반대 세력들은 학생인권의 공과를 논하고 급기야 폐지될 상황까지 온 것이다.

 

학부모는 학생인권조례를 몰라도 된다?

공교롭게도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시작된 2012년에 첫째 아들이 14세였고, 폐지 위기에 놓인 2023년에 둘째가 19세다. 두 자녀의 중고생 시절을 학생인권조례와 함께한 것이다. 지난 11년간 학부모 입장에서 체감한 서울 중·고등학교의 학생 인권 수준은 한 마디로 ‘운’이었다. 어떤 학교에 배정되느냐, 어떤 교장이 부임하느냐, 어떤 교사가 생활지원부장이 되느냐에 따라 해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갔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중학교든 고등학교든 학생인권조례보다 힘이 센 것은 ‘학칙’이었고, 그 학칙마저도 교장과 교사에 따라 다르게 적용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존재했던 11년 동안,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몽둥이를 선물하는 학교, 오리걸음이 체벌인 줄도 모르는 학교, 휴대전화를 수거할 때 공기계를 낼까 봐 기종까지 적는 학교 등 조례를 위반하는 사례들을 많이 겪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번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학부모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학부모들에게는 한 장으로 요약된 학칙과 상벌점제만 가정통신문으로 배부하거나 홈페이지에 형식적으로 올려놓는 게 전부였다. 그중에서도 ‘교사 지시 불이행 시 징계’처럼 악덕 규정은 슬그머니 빼놓고 두발, 복장같이 학생이 지켜야 할 규정 위주로만 알려줬다. 홈페이지에 공시된 학칙은 로그인을 해야 볼 수 있는 학교가 많다.

1년에 몇 차례씩 필수로 받으라는 ‘학부모 연수’에서는 좋은 부모가 되는 법만 강조할 뿐 보호자로서 자녀를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 학부모회장과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대상으로 진행된 교육청 직무연수에서도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에게 어떤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 교육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학부모에게 학생인권조례를 알려주면 교권이 침해당할까 봐 그런 걸까?

 

 

학생인권이 교육을 망친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측은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들을 망치고, 교육을 망친다고 말한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다.

‘학생’의 사전적 의미는 ‘배우는 사람’이다. ‘배우다’는 새로운 지식이나 교양을 ‘받아 얻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 익히다’, 남의 행동이나 태도를 ‘본받아 따르다’인데, 문제는 배움의 개념을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몇 세대를 거치면서도 “학생이라면 이래야지” 하는 기준이 ‘까까머리, 귀밑 3cm 단발, 스승에게 말대꾸하지 않는’ 시절에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일 뿐인데 그 사람의 상(像)을 박제해 복장, 두발로 징계 받고, 그런 사소한 잣대로 인해 정작 중요한 ‘배움의 장’에서 배제당하고 있다. 가르치는 일에 집중하기 위해 정장 대신 캐주얼로 출근하는 교사와 배움에 충실하기 위해 공부하기 편한 옷으로 등교하는 학생이 무엇이 다른가? 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가르치면서 ‘학생 빼고’가 당연한 건지, 서로의 평등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최소한으로 정한 규칙이어야 할 학칙이 헌법과 국제법을 무시한 내용들로 버젓이 채워져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학생인권은 11년간 제대로 보장된 적이 없고, 교육을 망칠 정도로 힘을 가져 본 적이 없다. 학생인권조례를 그대로 이행한 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학생이 없으면 교육도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될지도 모른다고 할 때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보면 안타깝다. 이는 학생인권조례를 왜곡하고 공격하는 일부 집단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존재조차 모르거나, 조례가 있든 없든 별 차이가 없다고 느낀다는 건 지난 11년간 서울시교육청과 학교, 교사들의 책임이 크다.

교실에서 누워서 휴대전화를 본 학생의 사례는 불법 촬영이 아닌 데도 언론이 왜곡하고 교권 침해로 몰아가 생활지도법까지 제정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학생들과 친했을 뿐이었던 해당 교사는 학교를 그만뒀다고 한다. 세대가 달라지고, 문화가 달라지고, 정보 습득 채널이 달라지고, 배움의 형태가 달라진 것인데 이를 모두 ‘교권 침해’라고 몰아가는 한, 굳이 ‘학생’의 신분으로 억압받으며 학교 안에 남아 있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 밖에서도 원하는 ‘배움’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사회에 여전히 기대하는 바가 조금은 남아 있어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일방적인 복종과 인내심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올해 6월 28일부터 시행되는 초중등교육법 제20조의 2항은 기존의 학교의 장에게만 국한되었던 권한을 ‘학교의 장과 교원’까지 확대하고 ‘지도’를 별도로 명시해 ‘법령과 학칙에 따라 지도할 수 있다’고 조항을 신설했다.

이렇게 ‘생활지도’라는 명분까지 확대해 학생을 내치려는 학교라면 학부모들은 자녀가 존중받으며 배울 수 있는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이다.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학교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학생인권은 누가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천부 인권이다. ‘학생 중심의 교육’은 교육감 선거 때만 외치는 공약(空:빌 공)이어선 안 되며, 학생은 교육을 존재하게 하는 근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건 학생인권 ‘조례’가 아니라 ‘학생인권’이다. 지역별로 힘겹게 조례를 지킬 게 아니라 국회에 계류 중인 학생인권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거대 야당이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이다.

 

글 _ 이윤경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

 


※ <학부모신문>과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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