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오만 원
아기별꽃
오랜만에 친정집 갑니다.
이맘때가 아니면 얻지 못할
참죽 따러 갑니다.
가는 길에 마트 들러
울 아부지 마실 베지밀
달달한 초코파이
심심할 때 드실 과자도 샀어요.
비가 올 듯 잔뜩 찡그린 하늘
비를 토해내면 제 속도 편할 텐데
뭐 그리 욕심 많은지
꾹 머금고 있네요.
우리 붕붕이가 마당에 들어서자
아버지가 나오십니다.
오랜만에 온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습니다.
간식거리 방에 들여놓고
남편과 나는 참죽 채취 시작했지요.
작은 거 따지 말고
큰 것만 따라고 따라다니며 한마디
하는 울 아부지
알았다니까
큰 것만 따고 안 딸 거니까
방에 가 계셔…
아버지 눈을 피해
냉큼 다른 곳으로 자릴 옮겼습니다.
작고 보들보들한 놈으로
따서 차곡차곡 가방에 넣고 있는데
울 아부지 어디서 보고 있다가
냉큼 오더니
작은 거 따지 말라고
연신 연신 잔소리 중입니다.
점심 먹게 오리누룽지백숙 예약해두고
서당골 밭에 있는 작약 캐러
살살 걸어가겠다는데
울 아부지 하시는 말씀
차 타고 가
멀어서 못 가
금방 갔다 온다니까
자꾸만 차를 타고 가라는 울 아부지.
남편에게 눈짓으로
차 못 올라가, 길이 좁아
아버지 치매라고 안 믿는 나를
꿰뚫고
길 넓어… 차 돌릴 때도 있다 합니다
못 믿었지만 하도 성화 시니
차를 가지고 서당골 가는데
세상에나
길이 언제 이렇게 넓어졌대요.
아버지 말 안 믿은 거 죄송해요.
묵밭에 핀 하얀 꽃
모란이라고 합니다.
모란은 향기가 없댔는데
이 꽃은 벌이 바글바글하구먼…
배천집에 심을 작약과 모란
꽃들을 캐서 차에 싣고 집에 가니
울 아부지 외출 준비 끝내시고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모시고
오리하우스로
미리 주문해놓은 오리백숙
푹 고아서 씹을 것도 없네요.
이 없는 울 아부지 드실 거라
매매 고아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사장님 고맙습니다.
죽이랑 고기를 뜯어 그릇에
담아 드리니 맛있게 드십니다.
울 아부지 옛날이야기
큰딸은 일을 아주 잘하는데
둘째 딸은 일을 안 해서
시킬 수가 없었답니다.
둘째 딸인 내가 그랬지요.
쪼그리고 앉아서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당연히 못 하지
그 큰딸은 하도 고생을 해서
아버지 보러 안 오잖아
그러면서 웃었습니다.
우리 김 서방 고생이 많다며
위로해 주고
아들들이 아주 잘한다는 자랑도
늘어놓습니다
아버지를 집에 모셔다드리고
돌아설 때는 마음 짠해집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하고 돌아서는데
울 아부지 애기 같은 얼굴을 하고
나한테 이럽니다.
돈 있으면 주고 가라고
돈 뭐 할 건데?
그냥 돈이 하나도 없단다…
얼마믄 되는데?
울아버지 왈
오만 원 주고 가, 이러시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남편에게 뛰어가
오만 원 달라고 해서
아버지 주머니에 쏙 넣어주고
이거 김 서방이 준 거야 했더니
손을 흔들며 아주 큰 소리로
김 서방 고맙네 하신다.
주머니 속에 든 오만 원
까먹고 쓰지도 못하실 거면서…
저렇게 좋아하시니
그거면 된 거다.
김천으로 출발
배천집 도착
모란과 작약을 화단에 심고
다시 신음동집 도착
참죽나물 다듬고
씻고 소금물 뿌려 채반에 널어두고
저녁 계모임.
오늘은 이렇게 지냈습니다.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