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노동 현장, 투쟁으로 바꿔내자”
열사의 뜻 ‘노동자가 주인된 세상’

 

故 하중근 열사 17주기 추모제
故 하중근 열사 17주기 추모제

28일 오후 4시, 포항 형산오거리 포스코 협력회관 앞에서 ‘열사 정신 계승! 민주노조 사수! 2023 임금투쟁 승리! 故 하중근 열사 17주기 추모제’가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포항지부 주최로 열렸다.

이승렬 건설플랜트노동조합 포항지부장은 추도사를 통해 “세월이 무척 빠르게 지나간다. 17년 전 우리가 여기에서 폭력경찰과 싸울 때가 엊그제 같다. 이 자리에만 오면 그날이 어제처럼 기억이 난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왜 왔고, 왜 이 자리에 섰는지 그 의미를 잘 알아야 한다. 우리 노동조합을 깨기 위해서 포스코가 온갖 짓을 다 했다. 선배 노동자들이 지금껏 꿋꿋하게 단결해서 노동조합을 지켰다”라며 2006년 투쟁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하나가 되지 않으면 사 측은 답을 내지 않는다. 사 측은 작년에 직장폐쇄로 우리 조합원들을 갈라 쳤다. 올해는 임금으로 갈라 치기를 하고 있다. 사 측의 의도를 막아내고 조합원을 갈라 치려는 사 측에 맞서 싸우자. 2006년에 단결해서 지금까지 왔다. 올해도 단결해서 우리 스스로 돌파해 내자”라며 조합원의 단결을 호소했다.

이주안 건설플랜트노동조합 위원장은 “17년간 변하지 않는 노동 현장 투쟁으로 바꿔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장옥기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은 “양회동 열사는 노동자가 주인 된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라며 “반드시 윤석열 정권을 퇴진시키고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건설플랜트노동조합 포항지부는 임금 10% 인상을 요구하며 2023년 임금교섭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사용자 측인 전문건설업체가 임금 동결안을 제시하자 노동조합은 지난 7월 24일부터 오전에는 근무하고 오후에 파업하는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노동조합이 부분파업에 나서자 7월 27일 전문건설업체는 임금 인상액으로 기능공 2,000원, 기능공 1,500원, 조공A 1,000원, 조공B는 동결, 여성 동결안을 제시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사용자 측의 안은 노동자를 분열시키고자 하는 안이라며 7월 31일 오후 2시, 포항고용노동지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포스코와 전문건설업체를 상대로 투쟁을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김태영 민주노총 경북본부장은 “우리가 뜨거운 날씨에도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하중근 열사의 뜻을 함께 새기기 위함이다. 하중근 열사가 죽어가던 그 거리에 정부는 없었다. 우리 노동자를 지켜줄 그 어떤 권력도 없었다. 그렇게 17년 우리 노동자들은 열사의 뜻을 가슴에 안고 우리 스스로를 지켜왔다. 그 결실이 민주노총”이라며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투쟁하자고 말했다.

고 하중근 열사 투쟁 당시 노동조합 집행부를 맡았던 황봉우 조합원은 “벌써 17년이 흘렀다. 하중근 열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지부장을 맡은 2006년 투쟁 당시 영상을 모으고 편집해서 조합원들을 위한 교육자료 등으로 활용하려고 했다. 자료 부족 등으로 지연되다가 중단됐다. 당시 투쟁에 함께 했던 사람들은 퇴직하고, 조합원들의 기억에서 흐려지고 있다”라며 2006년 투쟁이 잊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추모제가 열린 포스코 협력회관 앞은 故 하중근 열사가 2006년 포항지역건설노동조합의 파업 투쟁 중에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쓰러졌던 곳이다. 추모제에는 건설플랜트노조 포항지부 조합원과 전국건설플랜트노동조합, 전국건설산업연맹, 민주노총 경북본부, 진보정당, 사회단체 회원 등 2,000여 명이 참석했다.

 

‘故 하중근 열사 17주기 추모제’에서 파업가에 맞춰 함께 동작을 하는 참가자들. 사진 김혜인
‘故 하중근 열사 17주기 추모제’에서 파업가에 맞춰 함께 동작을 하는 참가자들. 사진 김혜인

고 하중근 열사는 2006년 7월 16일 포스코 본사 점거 투쟁에 나선 조합원들을 지원하기 위한 결의대회에서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이후 동국대학교 포항병원과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서 여러 차례 수술과 진료를 진행했다.

하지만 고 하중근 열사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8월 1일 새벽 2시 55분 운명했다. 열사의 장례는 사망 56일 만인 2006년 9월 6일 엄수됐다.

2006년 7월 16일 결의대회 당시 집회 참가자들은 포스코 본사 점거 농성 중인 이지경 포항지역건설노동조합 위원장의 발언을 듣기 위해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경찰은 이지경 위원장의 발언을 막겠다며 소화기를 난사하고,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며 평화롭게 진행되던 집회장에 난입했다.

경찰이 갑자기 소화기를 난사하며 집회장을 침탈하자, 조합원들은 맨손과 가로수 지지대 등으로 맞섰다. 경찰이 집회장 밖으로 물러나고 소화기 분말이 가라앉은 후 길가에 세워진 승용차에 기댄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고 하중근 열사가 발견됐고 즉시 동국대학교 포항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옮긴 후 확인 결과 머리 뒤쪽에 방패에 찍힌 것으로 보이는 찢어진 상처가 있었다. 특히 왼쪽 후두부에는 커다란 상처도 확인됐다. 이외에도 팔과 몸통 등 여러 곳에서 멍든 자국이 발견되었다.

병원의 진단 결과 하중근 열사가 의식을 잃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후두부 충격에 의한 대측손상(뇌가 외부로부터 큰 충격을 받아 반대쪽으로 힘이 가해지면서 나타나는 뇌 손상)으로 나왔다. 이는 ‘경찰의 집회장 폭력난입 과정에서 방패에 찍혀 쓰러졌다 일어서려는 고 하중근 열사의 후두부를 소화기로 가격하면서 일어난 사건이다’라는 주장의 근거였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의 과잉진압이라는 진정을 받아들여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한편 논란이 확산하자 노무현 정부는 69명의 수사관이 참여하는 대규모 수사본부(포항 건설노조원 변사사건 수사본부)를 구성하는 등 수사에 나서는 듯했으나 1년 만에 슬그머니 수사본부를 해체했고 지금까지도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있다.

고 하중근 열사의 유해는 화장 후 고향마을 앞 갯바위에 뿌려졌고, 위패는 고향 마을과 가까운 해봉사(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소재)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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