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팔레스타인'에서 한국 시민에게 연결되는 경로

 

"사라진 소년병" 스틸 이미지
"사라진 소년병" 스틸 이미지

 

영화제 현장에서 사라진 감독의 이야기, <사라진 소년병>

2023년 10월 9일,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현장에서 작은 사건이 터졌다.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기로 한 감독이 사라진 것이다. 사전에 전혀 공지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 영화 상영 후 부대행사를 기다렸던 이들에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무대에 등장해야 할 외국인 감독은 끝내 등장하지 않았고, 행사 진행을 맡을 예정이던 영화제 프로그래머만이 등장해 자초지종을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혼란은 가라앉았다. 프로그래머가 마이크를 통해 전달한 사정이 너무나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사라진 소년병>이란 제목이었다. 이스라엘군에 징집된 갓 미성년을 벗은 소년병이 가자지구 작전에 투입되었다 탈영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그려내는 가상의 드라마로 형식적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하필이면 영화제 기간에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영화제 내에서 주목도가 대폭 올라간 작품이기도 했다. 생소한 이스라엘 신예 감독의 영화이지만 객석에는 관객이 가득 들어찼다. 하지만 10월 7일 터진 전쟁은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젊은 감독에겐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을 테다. 전날 첫 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감정을 억제하느라 감독이 무척 고생했다는데, 다음 날 아침에 홀연히 숙소에서 사라져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했다. 다만 객실에 편지 한 통이 남겨져 있었을 뿐이었다고 전한다.

감독과의 토크 대신 영화제 관계자는 그 편지를 극장에서 낭독했고, 객석엔 적막만이 감돌았다. 누구도 항의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아니,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편지에 담긴 사과와 토로가 너무나 절절하게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꽂혔기 때문이다. 감독은 편지에서 정중한 사과와 함께 어린 자녀를 둔 아빠로서 무엇이 가장 절박한 지 고민했다고 전했다. 로켓과 미사일이 날아드는 현장의 가족 곁에 함께 있는 것이 한 인간이자 가족의 일원으로서 최우선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진심과 함께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이 최선을 다해 완성한 가상의 드라마는 결국 현실의 파괴적 실제 앞에서 무력화되고 말았다는 성찰이 전달되었다. 아마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 현장에서 가장 극적이고 호소력 있는 자리였을 테다. 영화에 담긴 내용이 실제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사라진 소년병" 스틸 이미지
"사라진 소년병" 스틸 이미지

영화 속 주인공인 만 18세 소년병은 가자 지구 작전에 투입되어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선에서 잔뜩 겁에 질려 있다가 갑자기 뭔가 결심한 듯 총을 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도망친다. 그가 도착한 곳은 전선 인근에 위치한 원래 자신이 살던 집이다. 하지만 가족은 후방으로 대피한 상태이고 집 주변에 아른거리는 인기척이 불안했던 주인공은 도시로 향한다. 수도 텔아비브로 무작정 진입한 그는 군복에 총을 메고 거리를 쏘다니지만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는다. 알고 보니 소년병은 캐나다로 며칠 후 유학을 떠날 예정인 여자 친구를 붙잡으려 탈영한 것이었다. 탈영병 주제에 외국 관광객과 해변에서 노닥거리다 그들의 옷과 신용카드까지 훔쳐 또래 소년들이 그러하듯 여자 친구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허세를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상황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한참 긴장이 높아지던 전선에서 어린 병사가 사라지자 소속 부대는 하마스에게 납치된 것으로 단정하고 그를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가자 일대에 대한 공격을 강화한다. 특수부대가 소집되어 구출 작전이 입안되고 민간인 지대를 향한 공습과 포격이 거세진다. 당연히 인명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주인공은 치기 어린 태도로 오직 여자 친구 붙잡기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린다. 연락이 닿은 가족들의 만류와 자수 권유에도 끝내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남의 자전거와 자동차를 훔치는 등 민폐 행동을 거듭 이어간다.

원치 않은 군 복무 때문에 여자 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처한 18세 소년이라면 종종 칠법한 해프닝이지만 그가 처한 현실 때문에 사태는 눈사태 마냥 커져 버린다. 어떤 이는 주인공의 행태가 마치 발암 작용처럼 여겨질 테다. 실제로 소년병은 아무런 개념 없이 좌충우돌 일을 키우는 중심에 있다. 하지만 정작 그런 어린 주인공의 막무가내 행동이 전쟁으로 연결된다는 게 더 괴이한 노릇 아닌지 따져보기 시작하면, 그가 처한 현실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고작해야 대책 없는 애정행각 민폐 때문에 수백 명의 목숨이 오간다면 그 사회가 더 문제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감독은 던지려 했지만, 그런 상상력은 현실의 전쟁 앞에서 무력화되고 만다. 너무나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해버린 영화는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만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해당 작품이 그런 비상한 조명을 얻게 되지 않았더라면 감독도 관객도 세상도 더 원하지 않았을까.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스틸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스틸

잔혹한 현실의 기록과 맞바꾼,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사라진 소년병>이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픽션으로 모사했다면, 대체 왜 근본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충돌은 사라지지 않는지 원인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20세기 중반 이후 70여 년째 계속 이어지는 중동 분쟁의 역사를 다 소화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립된 평화협정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분쟁은 사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미국의 편파적 비호 아래 이스라엘이 평화협정과 유엔 권고를 무시하고 ‘정착촌’ 정책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정착촌’은 이스라엘의 강경 극단주의자와 신규 이민자들이 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영역으로 인정된 땅에 들어와 벌이는 ‘알박기’ 행태 그 자체다. 슬금슬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경계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영역으로 밀고 들어와 목 좋고 괜찮은 땅에 정착촌을 건설하고 이스라엘 경찰과 군대가 이를 비호한다. 이런 정착촌은 그저 개별적인 계획이 아니라 치밀한 기획 하에 세워지는데 마치 군사작전처럼 팔레스타인 영역들을 분절시키고 이스라엘 통제구역 사이에 고립된 섬처럼 만들어버린다. 심지어 철근 콘크리트로 세워진 분리장벽을 통해 가둬버리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재산권이나 통행권을 일방적으로 침해하고 사실상 분할되어 갇혀버린 팔레스타인 잔존 영역을 하나의 수용소 구역처럼 만들어놓는 것이다. 당연히 눈 뜨고 코 베인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는 그런 이스라엘의 횡포에 저항하면서 가족의 안위를 보살펴야 하는 한 아버지와 가족들의 이야기다. 영화의 공동감독으로 등재된 ‘에마드’는 정착촌의 횡포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 마을 거주민이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이스라엘의 만행에 소중한 터전을 잃어가는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시위를 벌이고 정착민 편만 드는 이스라엘 공권력은 무력 진압으로 일관한다. 맨몸으로 평화시위를 해봤자 아무런 반응도 얻을 수 없다. 애원하고 청원해도 소용이 없다. 자신들의 소유인 과수원에도 수확 철에 1년 중 3일만 겨우 사정해 들어갈 수 있다. 날강도가 따로 없지 않은가. 정착촌 주민들은 무장한 채 원주민들을 위협하고 충돌이 일어나면 군경은 편파적으로 정착촌을 비호한다. 그렇게 무한 반복된다.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스틸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스틸

 

에마드와 그의 가족 역시 시위에 동참한다. 에마드에겐 어린 자녀들의 성장을 기록하기 위해 마련한 비디오카메라가 있었다. 한때 유행하던 캠코더나 DSLR 카메라 구입 열풍과 동일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원래 의도했던 소박한 성장기록 대신 이제 에마드의 카메라는 격동의 사건 현장을 기록하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계속 부서진다. 이스라엘 군경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사된 유탄이나 고무 탄환에 맞아서이다. 카메라를 들고 있기에 오히려 표적이 된 적도 부지기수다. 에마드는 종종 목숨을 걸고 촬영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심지어 그의 카메라는 오랜 친구의 (이스라엘 공권력에 의한) 죽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기록이 되기도 한다.

에마드의 이웃과 친구들이 피를 흘릴 때 그의 카메라도 함께 수난을 당한다. 차례로 카메라가 박살 나고 그 주인의 안위도 위태로워지지만 에마드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석에 끌리듯 에마드는 어려운 형편에도 카메라가 부서지면 어떻게든 새로운 카메라를 마련한다. 어느 순간 그런 주인공의 뚝심은 영화 속 주민 시위대의 결연한 의지로, 꺾이지 않는 투쟁으로 카메라를 통해 승화되기에 이른다. 물론 그저 투쟁 현장만 기록하지는 않는다. 원래 의도처럼 위험천만한 투쟁이 일상이 되어가는 과정에도 성장하는 자녀들의 변천사가 카메라에 오롯이 담긴다. 그렇게 가슴 아픈 순간들이 가득한데도 영화는 불굴의 인간 의지와 함께 그런 상황에도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레몬 트리" 포스터(by 영화사 진진)
"레몬 트리" 포스터(by 영화사 진진)

여성의 눈으로 응시하는 분쟁의 이면, <레몬 트리>

그렇게 이스라엘은 무리한 확장과 상시적 전쟁 상태를 자초한다. 이스라엘 평범한 시민들이 과연 정착촌 정책을 지지하고 모두 전쟁광인 걸까? 그럴 리 없다. 이스라엘 시민들도 대부분 더 이상의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끊이지 않고 공습경보가 울리면 대피소로 숨어야 하는 상황을 그 누가 선호하랴. 하지만 누구도 전쟁의 일상화를 원하지 않는데도 팔레스타인을 향한 도발과 충돌은 끊이지 않는다. 대체 누가 전쟁을 원하는 것일까?

혹자는 팔레스타인 역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은 가해자, 팔레스타인은 피해자로 전제하는 구도가 그릇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팔레스타인의 현재 상황이 이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문제는 이스라엘의 무단 횡포가 촉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부적으로 대화와 공존을 꾀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위축되고 소외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현재의 하마스-이스라엘 전쟁 역시 심지어 ‘적대적 공생’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중이다. 그런 이면을 <레몬 트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여성들의 상호 이해와 그들이 직면한 각자의 환경을 통해 조명해낸다.

 

"레몬 트리" 스틸(by 영화사 진진)
"레몬 트리" 스틸(by 영화사 진진)

 

<레몬 트리>라는 영화 제목처럼 주인공 ‘실마’는 남편을 잃고 유산인 과수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이웃에 이사를 온다. 테러 위협 등을 이유로 이스라엘 정부는 실마의 과수원을 몰수하려 한다. 실마는 과수원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젊은 팔레스타인 변호사 ‘지아드’가 승소하기 어렵다는 우려에도 소송을 담당하게 된다. 일방적인 푸대접과 은근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실마와 지아드는 소송 절차를 이어간다. 소송에 부담을 느낀 이스라엘 측의 회유도 적지 않지만 실마의 과수원에서 수확되는 레몬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이자 추억이 된다.

한편 장관의 부인 ‘미라’는 실마의 이야기를 듣고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선량한 미라는 자신들의 이사 때문에 멀쩡한 레몬 나무를 베어내고 실마를 내쫓아야 한다는 사실이 당혹스럽다. 그는 남편을 설득해 이사를 취소하자고 권유도 해보지만, 정치적 입장 때문에 남편 역시 곤란해하면서도 철회하지 않는다. 그런 과정에서 실마와 미라, 전쟁 상태의 두 사회 틈에 낀 여성들의 동병상련 유대관계가 기묘하게 형성되기 시작한다. 전쟁과 대의명분 아래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는 하찮게 취급되는 상황에 둘 다 분개하기 때문이다.

실마가 지키려는 레몬 나무의 의미는 영화를 통해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과수원에 심어진 울창한 레몬 나무는 척박한 사막에서 몸과 마음에 안식처를 제공하고 수확된 레몬은 시원한 레모네이드로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소중한 감미료가 된다. 단지 레몬 나무 때문에 주변 정찰 시야가 좁아진다는 군사-행정적 이유로 베어내야 한다는 강요를 실마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그 진심에 장관 부인도 공감한다. 평범한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의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런 공감대에 접속하게 된다면 별것도 아닌 의심암귀로 레몬 나무(로 상징되는 공존과 대화의 장) 훼손은 그저 보상으로 끝날 수 없는 사안으로 자연스럽게 승격될 테다.

 

"올 리브 올리브" 포스터(by 시네마달)
"올 리브 올리브" 포스터(by 시네마달)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올 리브 올리브>의 화두

신기하게도 국내 대표적 영화제들을 찾으면 이 지긋지긋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 관련 영화가 해마다 끊이지 않고 소개된다. 그러나 영화제라는 한정된 행사를 놓친다면 일상에서 해당 사안에 대한 이해를 도울 영화 찾기란 의외로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리고 워낙 복잡한 사안이다 보니 안타깝기는 해도 굳이 발 들이거나 이것저것 찾아 공부하기까지 도달하는 경우도 드물다. 대체 대륙 반대편 한국의 시민들은 이 현안을 어떻게 접근하고 소화해야 하는 걸까.

21세기 들어 가족 전체가 스태프로 활약하며 ‘민중의 세계사’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영화공동체 가족 ‘상구네’는 자신들의 두 번째 작업으로 팔레스타인을 찾았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며 온 가족이 함께 팔레스타인의 평범한 시민들을 찾아 그들과 대화하고 이야기를 담았다. <올 리브 올리브>는 그런 수고의 결산 격인 작업이다.

<레몬 트리>에 이어 이번에는 올리브 나무가 중요한 매개체로 기능한다. 올리브는 지중해 일대에서 중요한 작물이다. 올리브는 식용하기도 하지만 고대로부터 기름을 짜는 자원으로 중요한 위상을 가지기 때문이다. 척박한 중동 지역에서도 여전히 잘 자라는 작물이기도 하다. 거친 바람과 가혹한 일교차, 부족한 수량에도 건재한 올리브 나무는 이 영화에서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굴하지 않는 의지를 상징하는 기능도 소화한다.

 

"올 리브 올리브" 스틸(by 시네마달)
"올 리브 올리브" 스틸(by 시네마달)

영화에는 상구네가 만난 여러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등장하지만, 그중에도 올리브 농사가 생업인 ‘위즈단’ 가족이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올리브 나무 과수원을 보살펴 왔지만 이스라엘의 점령 이후 그들의 수확물은 헐값에 팔려 ‘메이드 인 이스라엘’ 표지가 찍혀 팔려나간다. 실제로는 팔레스타인이 붙어야 할 자리이지만 자신들이 애써 재배하고 수확한 올리브의 판로를 이스라엘이 좌지우지하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점령군은 본인들의 땅인 과수원 출입도 허가 없이는 불허한다. 이스라엘 군경의 변덕 때문에 어떤 날은 몇 시간씩 검문소 앞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하고 숫제 별 이유도 없이 며칠씩 가로막기도 한다. 그때마다 농부의 마음은 타들어 간다. 어렵게 수확해 봐야 남 좋은 일 하는 셈이지만 그래도 땅을 경작해 온 이들은 포기할 수 없다.

상구네는 김태일-주로미 공동감독과 아들-딸 자녀로 구성된다. 가족 4명이 모두 각자의 역할을 담당해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 현지 로케이션을 통해 출연자와 배경을 구하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몇 달씩 낯선 땅에서 생활해야만 한다. 넉넉하지 않은 조건 때문에 ‘집 나가면 고생’을 전제로 작업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만 영화를 제작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족들의 공동체험을 통한 소통과 교육과정이 자연스럽게 연계된다. 가족들은 끊이지 않고 토론하고 협의하면서 자신들이 목격하는 상황에 대해 이해를 공유한다. 강 건너 불구경처럼 해당 사안을 한 귀로 흘려보내고 마는 한국인 평균과는 까마득하게 먼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올 리브 올리브>는 해당 프로젝트의 속성처럼 지도자나 전문가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아래로부터 목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한다. 평범한 이들이 진솔하게 자신들의 일상과 생각을 전달한다. 그걸 청취하는 이들 역시 외국의 전문 제작팀이 아닌 낯설지만 평범해 보이는 가족 제작팀이다. 그런 확고한 스타일을 통해 다큐멘터리가 갖는 전달력이 극대화된다. 현재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치열하게 공방하는 미디어 전쟁처럼 쏟아지는 정보의 진위 여부를 머리 싸매고 골머리 썩는 대신 영화 속 가족과 가족 간 대담을 옆에서 함께 경청하는 자세만 취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친근함을 통해 역설적으로 정보 교란과 통제에 현혹되지 않고 각자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올 리브 올리브" 스틸(by 시네마달)
"올 리브 올리브" 스틸(by 시네마달)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세계시민의 수평적 연대를 향해

물론 이 외에도 무수하게 많은 관련 배경과 소재 영화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영화 관계자나 웬만한 영화 애호가가 아니면 쉽게 접하기 힘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접근성도 취약하고 막상 보게 되어도 혼자선 온전한 독해가 어려운 경우에 몰리고 만다. 대중적으로 접근성도 있고 그저 건조하게 정보 획득에 그치지 않으면서 감정이입이 가능한 작업과의 만남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장기적인 분쟁의 연장선으로 지금의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파악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오히려 ‘주화입마’에 빠지기 딱 좋은 시국에서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목적의식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인다. 더 이상의 무고한 시민 희생을 막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부당한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행위를 단호하게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최우선 전제로 놓고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얽힌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너무 민감한 문제라며 관망하기엔 이미 희생이 너무 크다. 우리의 현재가 고대에 인간을 산 제물로 바치던 야만적 시간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그래야만 한다.

 

 


작품 정보

 

사라진 소년병 The Vanishing Soldier

2023, 이스라엘, 드라마, 105분

감독 대니 로젠버그

주연 이도 타코, 미카 레이스

2023 28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포워드 초청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 5 Broken Cameras

2011, 팔레스타인·프랑스·이스라엘·네덜란드, 다큐멘터리·전쟁, 94분

감독 기 다비디, 에마드 부르낫

2011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장편 다큐멘터리 심사위원특별상, 관객상

2012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월드시네마 다큐멘터리

2012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시네필상

 

레몬 트리 Lemon Tree, Etz Limon

2008, 독일·프랑스·이스라엘, 드라마

2008.07.10. 개봉, 106분, 전체관람가

감독 에란 리클리스

주연 히암 압바스(레몬 농장 주인, 살마 역), 알리 슐리만(살마의 변호사, 지아드 역),

로나 리파즈-미셸(국방장관 부인, 미라 역), 도론 타보리(이스라엘 국방장관, 나본 역)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2008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관객상

2008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유럽영화 관객상

2008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각본상, 여우주연상(히암 압바스)

 

올 리브 올리브 All Live, Olive

2016, 한국, 다큐멘터리

2017.07.13. 개봉, 92분, 전체관람가

감독·촬영·편집 김태일, 주로미

제작 상구네

배급 (주)시네마달

2017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환경영화경선-우수상, 관객심사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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