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矛盾이란 말은 아래의 일화에서 나온 고사성어, 또는 그 의미를 반영한 단어로서 출전은 한비자다.

초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자가 있었다. 그가 방패를 칭찬하며 말하였다. “내 방패는 견고해서 그 어떤 물건으로도 뚫을 수 없다.” 그리고서는 창을 칭찬하며 말하였다. “내 창은 날카로워서 그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있다.” 누군가가 말하였다. “그럼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 사람은 대답할 수 없었다. 무릇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한세상에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고사에서 유래해 ‘논리 따위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창 모(矛)와 방패 순(盾)을 써서 모순(矛盾)이라고 한다.

창과 방패의 이야기는 스포츠, 전쟁 등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어느 날 어느 집에서 마누라가 하도 남편이 죽일 만큼 미워서 매일 밥에 쥐약을 타 먹였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돼가도록 남편은 죽기는커녕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하루 이틀만 먹어도 죽어야 할 밉상이 죽지 않으니 마누라는 자신의 행동이 들통날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남편은 속이 안 좋아 쥐약을 탄 밥을 먹은 후 위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었는데, 그 약 안에는 비타민 k가 처방되어 있었다. 쥐약을 먹어도 쥐약에 견딜만한 비타민k 성분이 있었으니 쥐약을 먹어도 끄떡없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어느 유튜브인가 방송에서 실제로 본 실화다. 이 이야기를 듣고 세상사가 거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이 작은 해프닝 같은 사건(살인은 결코 해프닝은 아니지만)에서도 관철되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는 서로 길항작용을 하는 성분들이 많이 있다. 수많은 채소나 과일 등도 효능이 있고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고 병원에서 처방받는 약에도 좋은 성분, 나쁜 성분이 있다. 가령 감주는 혈압을 낮추지만, 많이 먹으면 당분 때문에 안 좋다. 모든 물질이 다 이런 식이다. 거창하게 자본주의사회 안의 노동과 자본의 대립과 모순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세상사, 인생사가 모순과 대립으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과 죽음도, 낮과 밤도, 살을 에는 추위와 더위도, 음양도 우리의 인생사는 대립, 모순으로 그득하다. 남녀관계도 개인과 사회도 그 모순과 대립, 그리고 거기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피해 갈 수 없다. 우리 인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우주 전체에도 모순의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다. 인생사, 세상사는 이토록 모순덩어리인데 왜 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절대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물리학자 와인버그가 말하듯이 진공 속의 에너지 속도는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11056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값의 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1퍼센트만 달라졌어도 우주는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우주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말이다. 유튜브는 지구가 곧 망한다는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지만 밤이 지나면 새벽은 기적같이 찾아온다. 모순이란, 그저 고사성어에 나오듯이 창과 방패의 관계인 것만이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밖에 없는 삶과 죽음의 모순이 그러하다.

 

 

2024년은 한 인간의 살인미수로 시작하기도 했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국과 중국, 더 넓게 보면 미국, 유럽 등의 서방세계와 중국, 러시아 등의 비서방세계도 모순과 대립 속에 갈등을 더욱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들, 약, 생명으로부터 시작해 역사까지 세상사와 인생사가 모순덩어리다. 인간 자체도 모순의 화신이고 모순덩어리로 가득 차 있다. 해서, 세상을 바꾸고 변혁시킨다는 것이 사실 따지고 보면 황당무계하고 불가능에 가깝거나 아예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뭘까? 모순과 대립을 먹고 자라는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일까?

모순이란 단어는 2024년 만의 화두가 아니다. 2024년에만 해당하는 화두인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화두일 수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유효성분만 따로 모아 먹는다 해도, 그 자체도 불가능할뿐더러, 우리 인간은 그 모순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Trotzdem, 우리는 2024년이라는 시간의 주름들 위로 사건들이 펼쳐질 새해를 지내고 있다. 대한을 지나 한파가 몰아치는 지금, 우리는 2월 4일 입춘을 기다리고 있다. 겨울과 봄의 모순, 봄을 잉태한 채 매섭게 삶과 생명을 몰아치는 한파, 봄이 올 것 같지도 않은 시간에 ‘모순’을 생각해 본다. 나는 매일 쥐약을 먹고 있지만 그 쥐약에 길항작용을 하는 무엇을 나는 먹고 있는가? 먹을 것인가?

 

글 _ 이득재 노동당 대구시당 전국위원 및 정책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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