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혹은 가장 길다는

그것도, 게다가, 밤이 제일 길다는

그것도, 캄캄한 밤이 그토록 길다는

冬至

대구에서 죽어간 노숙자 무연고자가 286명이라는데

이 한파에, 깜깜한 밤에, 더 이상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별도 달도 죄다 도망가 버려

더더욱 새까매진

동짓날

팥죽 먹는다 하여 액운이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별도 달도 나타나

아무도 모르는 어두운 죽음, 죽음의 어둠 비추어줄 것도 아닌데

이미 별도 달도 없는 하늘나라로 떠나갔지

새들도, 집 지을 지푸라기 같은 생을 물고 다니다 온몸 부르르 떨고 남으로, 남쪽으로

일찌감치 떠나갔는데

고양이도 옷 입고 다니고 팔현습지 생물들도 보호를 받건만

빌딩숲에 쪽방마저 빼앗긴 채 노숙자는, 무연고자는

남쪽이 아니라, 북망산천 북쪽으로 야반도주하듯 쫓겨가고

노숙자만이랴 무연고자만이랴

저주받은 땅 위 생명줄 잠시 이어 살다

쫓겨간 자 한둘이랴

분신한 택시노동자 방영환, 산재사망 노동자들, 짐승마냥 쫓기던 이주노동자들

이매망량 두억시니들이 되어

이 동지 한파에 떠도는 자 한둘이랴

동방박사는 별 보고 떠났다는데

우리는 별도 달도 보이지 않아 갈 길을 잃었네

그렇게도 철저한 무관심 속에 건설사 투기꾼들만 배불리는 아파트숲에 가린 채 세상 등졌으나

별빛커녕 수은등조차 불을 끄고

차가운 잠을 청하는 밤

둥지 버리고 떠난 새들은, 일찌감치 겨울냄새 맡고 떠난 제비는

봄이면 돌아오건만

추운 한파 별빛 햇살은 받았으려나

돌아올 수 없네

도주한 별빛 달빛

별과 달을 원망할 일 아니다

하늘 원망할 일 아니다

자본주의세상에서 지상의 양식 먹으며

햇살 따스하게 받으며 살아왔던 나를 원망할 일이다

나를.

 

물동이보다 더 무거운 생을 이고 살다가 속절없이 소멸한 노숙자 무연고자 추모집회가 2023년 12월 22일 동짓날 대구경상감영공원 입구에서 열렸다. 핫팩과 어묵 국물 그리고 팥죽으로 한파를 겨우 이겨내던 자리에 백여 명 사람들이 모여 개발에 밀려 여인숙을 개조해 만든 쪽방에 기거하다 죽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던 자리였다.

일 년 치 세월이 바위들이 되어 절벽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시간, 슬픔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들이 핫팩에 뜨거운 가슴 묻고 저마다 붉은 노을이 되던 시간, 그저 먹먹한 가슴으로 서울 용산 고층빌딩같이 감영공원을 에워싼 마천루만 올려다보던 시간이었다.

유구무언. 토끼띠 해가 용띠 해가 된다 하여, 별로 달라질 것 없을 2024년. 굳이 2023년을 보내며 2024년을 쫓아갈 일이 있을까 싶다. 자본주의는 그 내적 매커니즘으로 화산마냥 화산재 날리며 기우뚱거리며 걸어가다가 용암이 굳으면 다시 비극의 향연을 불러올 것인데 2023년을 훔쳐 달아난 2024년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하루가 또 다른 하루를 내동댕이치며 달아나는 세월이다. 한파를 달래던 핫팩도 굳었다. 민들레 홀씨들처럼 흩뿌려져 사는 우리들, 그저 2023년 12월 32일에도 뉴스풀 독자들만이 아니라 사과박스 한 조각으로 생의 한파를 견디고 있을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하루 무탈한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글 _ 이득재 노동당 대구시당 전국위원 및 정책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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