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사가 매일 아침 출근 전 자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런데 의사는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의사의 아들이 맞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내가 만난 이백여 명 남짓의 열세 살 아이들은 이 수수께끼에 금세 ‘아이가 입양아다,’ ‘의사가 새아빠다’와 같은 답을 내놓았다. 놀랍게도 의도된 정답이었던 “그 의사는 아이의 엄마이다”를 아이들이 상상해 내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의사’를 생각할 때 우리 머릿속에는 가운 입은 남성의 이미지가 디폴트 값으로 번뜩 떠오른다. 비슷하게, ‘미국인’을 생각할 때 흑인-장애인-성소수자 여성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 또한 드물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의 맥락은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로서의 비인간(非人間, nonhuman)에만 머물지 않으며, ‘비인간화된’ 자들 그러니까 ‘정상성’에 대립하는 소수자로서, 인간이지만 인간 아닌 존재로 취급되어 혐오와 차별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온 이들에게까지 확장된다. 이번 호에서는 달팽이 트리뷴 기자들 각자가 생각하는 ‘비인간’의 의미가 무엇이며, 그 의미가 그들 일상의 생활 장면에서 어떤 접점을 통해 조우했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함께 살기: 식물과 새, 펭귄, 그리고 로봇

달팽이책방의 문을 열면 가장 먼저 허벅지께에서 숲처럼 무성한 고사리가 싱그럽게 싱긋 웃으며 맞아준다. 책방에 꼭 책만큼 많은 것이 있다면 식물들. 책방을 운영하는 달팽이 성실하고 탁월한 식물 집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집사로 복무한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 자연스레 함께 관심을 두게 된 것이 바로 새였다고. ‘식집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식물을 해치는 벌레들을 관리하는 일, 그렇게 곤충들을 의식하기 시작하니 그와 연결된 새의 존재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되었다고.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제니 오델, 필로 우)을 읽은 후 식물의 눈으로 매일 다니던 출퇴근길을 바라보게 되고, 새의 눈으로 형산강을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통해 식물과 나, 그리고 새의 생존을 동일시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비인간 존재들을 고유하게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실감하기 위한 책들로 『저녁의 비행』(헬렌 맥도날드, 판미동), 『한국의 새 생태와 문화』(이우신, 지오북), 『식물 대백과사전』(DK『식물』편집 위원회, 사이언스북스)을 함께 추천했다. 유차 역시 『펭귄들의 세상은 내가 사는 세상이다』(나이라 데 그라시아, 푸른숲)를 소개하며, 인간을 비인간의 큰 범주 속에 속하는 일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모든 존재를 인정하는 방식일 수 있음을 실감한다고 전했다.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먼 곳들만을 자연인 것으로,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하려던 경향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밝힌 유차. 그는 도시의 어두운 구석과 오래된 골목길에서 만난 동물들에 자신의 처지를 이입하게 되어 그들을 의식적으로 외면해 왔었던 것 같다고도 덧붙인다.

 

그림 달팽
그림 달팽

조류의 생태와 서식지를 관찰하는 ‘탐조’의 세계에는 새를 관찰할 때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 ‘현란한 색상이나 무늬의 옷은 입지 않기’ 등과 같은 규칙이 있다고 한다. 먹이를 구하기 위해 생존을 걸고 비행하고 이동해야만 하는 새들이 탐조가의 존재로 말미암아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새의 체력과 평정을 보존해 주는 것이 이와 같은 규칙의 목적이라고. 여기에서의 새와 인간의 관계를 비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치환해 보아도 좋겠다.

우리가 공존해야 할 존재들은 식물과 동물 범주에만 그치지 않는다. 『나를 보내지 마』(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를 소개한 미야와 『마음의 미래』(미치오 카쿠, 김영사)를 추천한 달은은 비인간으로 각각 복제 인간과 로봇을 떠올렸다. 가공된 존재의 가공할 능력은 인간에게 매혹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미지의 존재가 저 스스로 그 한계를 넓혀나가는 모습을 경이로워하면서도, 우리가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영역에서 예측하거나 대비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존재가 우리로 하여금 ‘인간다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오히려 반문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위기의식에서 발현된 보호본능의 일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경보음이 인간 안에 있는 것들 중 가장 선하고 다정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이켜 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만들어진 마음을 무엇으로 채울지를 선택하고, 그 마음에 어떠한 방식으로 섬세하고 촘촘하게 설계된 윤리와 정의를 탑재할 수 있을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아직은 우리에게 남아 있다고 믿는다.

 

지워진 존재들을 복원하기: 장애인

한편, ‘비인간화된’ 존재들은 개인의 정체성 수용 문제에 더불어 타의에 의해 사회 구성원들 속에서 지워져야만 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미야가 소개한 책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휴머니스트)의 저자 김지우는 유튜버 ‘구르님’으로도 활동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탔던 휠체어를 아름답게 꾸미고, 그에 맞추어 연출한 패션을 선보이는 영상을 촬영한다. 이는 ‘일단 보여야, 이해받을 수 있다’는 그의 신념에 기반한 것.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김원영, 사계절)을 추천한 하지 역시 더 많은 장애인의 삶이 가시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장애인의 존재가 일상의 풍경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인식과 정책이 동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는 그가 사고로 인해 두 달 정도 휠체어를 타야 했던 경험을 나누었다. 횡단보도와 인도를 연결하는 경사로 앞에 주차된 차들이나 가게 입구 앞에 늘어선 짐들이 휠체어를 타는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일상적 난관일지를, 그때 몸소 겪어보지 않고는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정상성’의 테두리 위로 쌓아 올려진 견고한 성은 성채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일상일 수 있지만 보이지 않기를 강요받으며 성 바깥으로 치워진, 지워진 존재들에게는 벽이다. 달은은 장애 정체성의 보편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최근 읽은 『우리에 관하여』(피터 카타파노, 해리북스)를 통해 가벼운 우울증에서부터 약한 시력과 노화에 이르기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든 개인의 생애사에서 일시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장애 정체성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기가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체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변화 가능하다는 점이 수용된다면 모든 정체성은 고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배웠던 문학적 수사 중에 의인법이 있었다. ‘춤추는 나무’에서처럼,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내는 표현 방법. 그것은 사람처럼 생각해야만 그제야 인간 아닌 존재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될법한 자들을 헤아려, 상상의 품이 좀 더 넓은 시인들이 조탁해 둔 언어일 것이다. 위기와 성장, 절멸과 돌연변이가 예측할 수 없게 교차하며 역동하는 시대다. 비인간과 인간이 그러니까 모든 존재가 공생하며 생존하기 위해, 이제 인간들이 가장 ‘인간다운’ 상상력을 탐구하고 발휘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

 

글_ 달은, 그림_ 달팽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 달팽이책방 소식이 궁금하면 여기로!

페이스북 faceook.com/bookshopsnail

인스타그램 instagram.com/bookshopsnail

문의 _ 카카오톡 ‘달팽이책방’

이메일 snailbooks@naver.com

인쇄비 후원 _ 새마을금고 9003-2349-2289-3 김미현(달팽이책방)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