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은 벚꽃이 아름답지만 내게 사월의 색은 단연코 연두이다. ‘완두콩의 빛깔과 같이 연한 초록색’ 연두를 사전에서 찾으면 나오는 풀이말이다. 사월의 나뭇가지는 완두콩처럼 여리고 푸른 새순을 가득 안고 있다. 갓 태어난 잎사귀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아기가 손가락을 펼치듯 하늘을 향해 힘껏 손을 뻗는다. 사월과 오월 사이, 연두는 초록으로 초록은 이내 녹음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짙푸르게 변한다. 연두는 어린 시절처럼 어느새 자라 과거가 된다. 아직 코로나가 한창이던 이천이십일 년 봄, 나는 하나둘 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즈음,
우수 경칩이 지났습니다.아흐레 지나면 춘분입니다.24절기를 축약하면 팔절입니다. 전지(全紙)를 세 번 접어 서 여덟 장으로 나누는 것을 팔절(八折)이라고도 하지만, 한 해 이십사절기 중 중요 맥락마다 있는 절기를 팔절(八節)이라고도 합니다. 입춘, 춘분, 입하, 하지, 입추, 추분, 입동, 동지입니다. 그 팔절 중 두 번째인 춘분을 재촉하는 봄비가 어둠과 함께 보현골에 찾아왔습니다. 꼭 여름 장맛비처럼 말입니다. 저녁 여섯시 반을 넘기면 해가 지고 아침 해는 여섯시 오십분 경에 뜨니. 얼추 낮밤의 장단이 비슷해져 갑니다. 철을 잊은
모순矛盾이란 말은 아래의 일화에서 나온 고사성어, 또는 그 의미를 반영한 단어로서 출전은 한비자다.초나라 사람 중에 방패와 창을 파는 자가 있었다. 그가 방패를 칭찬하며 말하였다. “내 방패는 견고해서 그 어떤 물건으로도 뚫을 수 없다.” 그리고서는 창을 칭찬하며 말하였다. “내 창은 날카로워서 그 어떤 물건도 뚫을 수 있다.” 누군가가 말하였다. “그럼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 사람은 대답할 수 없었다. 무릇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하는 것이 없는 창은 한세상에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이 고사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3월하고도 6일 ‘경칩’이자 보름입니다. 천문의 지혜를 알 턱이 없는 촌부가 경칩과 보름이 한 날에 겹치는 것에 묘하게 끌려 평소 소회를 적어봅니다.지난가을 놀고 있는 빈 땅을 차마 그냥 둘 수 없어 복합비료 두 포대와 함께 이삭이 예쁘게 패는 우리 밀을 뿌렸습니다. 종자 이름이 흑진주를 떠오르게 하는 ‘아리진흑’의 싹들이 봄을 맞아 제법 기운을 차려 500여 평 되는 밭에 푸른 기운이 겨우내 메말랐던 대지를 도포하고 있습니다. 자두 농사를 짓는 시골 농부의 엉뚱한 푼수 짓에 경운기를 몰고 지나던 노인 회장님은
“뇌병변장애인 가족 상반기 힐링 건강 걷기 1회차 진행했습니다.”- 3월 10일 오전 11시부터 13시, 남매공원 < 이후 일정 >* 2회차 : 3/17(금) 11시* 3회차 : 3/24(금) 11시* 4회차 : 3/31(금) 11시장소 : 남매공원(경산보건소 옆, 경산시 계양동 466번지)신청 : ☏ 053-814-2081 글, 그림 / 이종광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경산시지회장
“야옹아!”어머니는 먹다 남은 갈치를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말이 문이지 하우스 문짝같이 구멍 뚫린 비닐로 막은 문을 열고 문 옆 밑에 종이를 깔고 갈치를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방 건넛방에 갇혀 있었다. 치매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자꾸 문밖으로 뛰쳐나오려고 하는 통에 문을 쉽게 열지 못하도록 문 위쪽과 외벽 사이에 돌쩌귀를 걸어 놓았다.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길고양이는 야옹거리며 종이를 찢어가며 얼마 되지도 않는 갈치 살덩이를 알뜰하게 먹어치웠다. 특재는 허접하기는커녕 구질구질한 살림살이에 길고양이를 매일 챙기는 어머니가 못마땅했다
봄은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새로 생동하는 연둣빛 새 잎새나 따스한 날씨 같은 것이, 어른은 더 이상 되찾기 힘든 활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한다. 근무하는 회사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어린이들의 목소리 데이터를 수집하여 하나의 AI 목소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어린이 100명에게 목소리 데이터 수집을 위해 한 명당 50개의 문장을 지시에 따라 읽도록 부탁해야 했다. 첫 문장은 이랬다.“이름, 나이, 성별을 말하세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누구보다 먼저 새들이 소란스러웠다. 벌이 날아와 밭 둔덕으로 보랏빛 다홍빛 작은 꽃들이 피어났다. 듬성듬성 가지치기를 한 매화나무에도 연분홍 꽃이 피고, 자리를 옮겨 심어 말라죽은 듯 가벼워진 산수유에도 노란 별들이 매달렸다. 겨우내 한 것은 장작 패기였다. 앞밭에 널브러진 통나무를 도끼로 쪼개서 비에 맞지 않도록 쌓아야 했다. 도끼질을 한 40분을 하고 나면 온몸에 땀이 나고 한 시간을 넘어가면 몸에 에너지가 돌아 계속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신난다고 무리를 하면 육체노동에 단련이 안 된 나
경칩이 지나 밭 한쪽 샘이 솟는 웅덩이에서 기세 좋은 개구리울음이 들리더니 지난밤 내린 비로 울음의 성량이 줄어 겨우 들릴 듯 말 듯 합니다. 산 이마에는 상고대가 핀 것처럼 서설이 쌓여 있고, 산 아래에서는 는개가 스멀스멀 퍼지고 있습니다. 마당에는 경자와 신축의 모진 영하의 바람을 견딘 운룡매가 시절이 닿았음인지 매향이 저의 코에 닿을 듯 말 듯 한 향기를 날리고 있습니다. 우중이라도 지붕 없는 마루 쪽 창을 열면 산새들의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제 보름 정도면 온 밭에 ‘오얏꽃’ 향이 퍼질 것입니다. 지난해 봄 은은한 ‘
만화가 김수박주요 저서 〈아날로그맨〉, 〈내가 살던 용산(공저)〉,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사람 냄새〉, 〈메이드 인 경상도〉, 만화 에세이 〈더 힘들어질 거야 더 강해질 거야 더 즐거울 거야〉, 〈아재라서書〉, 〈날라리 X세대의 IMF 이야기-타임캡슐〉, 〈나! 이봉창〉 외 다수.블로그_김수박과 파편들 https://blog.naver.com/orpeo74
향기로운 봄 냄새 윤해수 안갯속을 걷다 보면 돌도 보이지 않지만 연못도 보이지가 않지만 내 발걸음이 봄을 느낀다
모든 것은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흐른다. 봄처럼 바쁘게 시간은 흘러가고 향기로운 매화와 산수유 노란 별들을 달고 제멋대로 뻗어 위로 삐죽 솟아올랐다. 아이 머리를 깎이듯 웃자란 나뭇가지들을 잘라내었다. 잘린 가지에 붙은 꽃잎이 아까워 잎을 따 작은 통에 담아 얼렸다. 올해는 정다운 손님과 매화차를 맛보게 되리라.3월 24일, 비 온 뒤 우북하게 자란 쑥을 뜯어 쑥국을 끓일 겨를도 없이. 온막리 집 벽들이 허물어졌다. 공사 첫 삽을 뜨던 날, 아파트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집을 보러 오겠다고. 지난 3개월 동안 아무도 집을
얼마나 애가 탔는지. 그 계곡으로 가기까지는 말이다.수년 전부터 그 아이 소식은 들었지만, 도대체 어느 골짜기로 들어서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도 원을 세우면 꿈에서라도 만나는 것이었던가. 며칠 전 꿈속엔 첩첩산중을 헤매고 또 헤매며 보라 빛발이 서리는 골을 넌지시 바라보며 어느새 발등 위로 보라색 향기가 타고 흐르며 점점 사라지는 것이었다.아. 어쩌나, 어쩌나.엄습해 오는 불안함이 약속 시각보다 20분이나 앞서 도착하게 한다. 하지만 웬걸 그분의 싱글 생글 웃으시는 모습은 오늘 그럴 줄 알고 계셨으리라. 우리들의 쉴 새
벌써 봄.감자 심을 준비.감자눈을 살려 조각 내 씨감자를 만든다.- 2021. 2. 21
1월이 지나가며 급해지는 내 마음을 붙잡기엔 쿠구구콰쾅! 심장의 소리가 엄청나다. 천둥소리를 닮은 소리가 번개처럼 내려꽂힌다. 내 가슴으로 말이다. 이젠 움직여야 했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처럼 너무나 강렬하다. 그러니 이것으로 또 하루의 시작은 봄바람을 휘날리며 숲길을 걷는 것이다.2월로 들어서면서부터 변산바람꽃이 피어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변산바람꽃을 지키기 위해 사방에 진을 쳐놓은 곳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너머로 다가가고 있는 순간이다. 몽글한 조그마한 구름이 내려앉은 듯 보였다.바람도 그냥은 지
햇살이 따뜻한 오전.버스정류장에 할머니 다섯 분,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계셨습니다.버스가 한참 동안 오지 않은 것일까요. 정류장 나무의자가 만석입니다.코로나19로 버스 운행도 줄었습니다. 마스크를 끼고 버스정류장에 앉아 봄볕을 쬐는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저,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아니, 찍지마…”사진 속에는 세 분만 있습니다. 사진 찍히는 게 내키지 않으신 세 분은 일어나 옆에서 사진 찍는 걸 지켜보셨습니다. “할머니, 버스 기다리세요?”한 분께 여쭤보았습니다. 할머니가 대답
난 중증 장애 가진 몸 그토록 원한 탈시설 꿈을 주변 사람들의 염려를 무릅쓰고 12월 4일힘들고, 행복한 선택을 하였다.‘비장애인들도 지역에 살기 힘든 현실에’ 과연 중증 장애를 가진내가 어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이 사회에서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탈시설을 수없이 망설이고, 갈등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일찍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왜냐하면, 물론 시설에 있는 것보다사회로 나와서 생활하는 것이 몇 배로 힘들 것은 사실이지만 시설이라는 둘레에 벗어나내 생각과 표현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