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그 자체’의 정치적 모순

미국의 정치철학자, 사회이론가 낸시 프레이저의 『좌파의 길,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초반부는 자본주의 경제의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와 같은 제 살 깎아 먹는 식인 자본주의적 성질을 설명한다. 그 결과는 경제라는 영역이 사회에 무임승차하고, 돌봄 활동을 보충하지 않은 채 돌봄 제공에 필요한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으로 이어짐을 서술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자체를 존립하게 하는 핵심 조건들의 존재 자체에 영향을 미치고 경제와 사회 재생산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이러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DNA 안에 새겨져 있는 정치적 모순이 자본주의 위기 경향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의 결과를 주요하게 설명한다. 자본주의의 경제적 지상명령이 비-경제적 영역의 재생산 지상명령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사건을 위기로 본 것이다. 비-경제적 영역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인간의 안녕은 물론이고 축적의 지속에도 필수적인데, 경제적 영역은 이에 무임승차하고 고갈시키고 있다.

 

경제적인 것이 비-정치적이며 정치적인 것은 비-경제적이다

낸시 프레이저는 자유로운 노동의 착취, 인종화된 예속민의 수탈과 주변부에서 중심부로의 부의 이전, 금융․공간․지식의 조직화, 이자와 지대의 발생 등에 정치적인 힘이 핵심적인 구성적 요소로 작동함을 역설한다. 공적 권력이 실상은 자본주의라 불리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의 본질적 부분으로 부역하는 셈이다.

이를테면 ‘정치적’ 매체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인 공적 권력이 경제적인 것을 위해 사회 존속에 핵심적인 ‘비-경제적’ 질서를 통치하기도 하는 일이 무분별하게 발생하고 있다.

‘사회생활의 지대한 부분을 ‘시장’(실제로는 거대 기업들)의 지배에 맡김으로써 민주적 의사결정이나 집단행동, 공적 통제에 출입금지 명령을 선포한다. 이 제도배열 탓에 우리는 어떤 에너지를 기반으로, 어떤 종류의 사회관계를 통해,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길 원하는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할 능력을 빼앗긴다. 또한 우리가 집단적으로 생산한 사회적 잉여를 어떻게 사용하길 원하는지, 자연 그리고 미래 세대와 어떤 관계를 맺길 원하는지, 사회적 재생산 활동과 이것이 생산과 맺는 관계를 어떻게 조직하길 원하는지 결정할 능력도 빼앗긴다.’ p.230

 

금융화된 자본주의와 빈껍데기 정부

부채를 통한 축적이 중심이 이루는 체제는 국가 단위를 넘어 우리의 일상과 가족 단위에서 위기에 취약하게 만든다. 임금은 하락하는 데 반해 물가는 상승하고, 가계 대출은 급격하게 늘어 이중 위기가 고착화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현상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우리 공동체와 집으로 들어왔다. 이미.

‘그 전반적인 결과는 모든 수준에 걸쳐 공적 권력을 빈 껍데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라 밖에서는 독단적 명령을 통해, 나라 안에서는 자본에 의한 흡수를 통해, 어느 곳에서든 젖ㅇ치적 의제가 협소해진 상태다. 한때는 분명 민주적 정치 행위의 관할범위 안에 있다고 여기던 사안들이 이제는 출입금지구역이라 선포된다. 그리고 ’시장’에, 즉 금융자본과 대기업 자본의 이익에 내맡겨진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p.243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투쟁들의 한계

이 위기를 해결하려는 노동과 돌봄투쟁은 계속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위기는 결국 자본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결과로 끝이 났고 ‘자본주의는 자신을 거듭 재발명했다’. 반란의 에너지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자본주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아래와 같은 경제와 정치, 사회와 자연, 생산과 재생산의 경계를 나누는 선에 대한 고민들과 질문은 자본주의와 위기 앞에서 흐릿해져만 간 것이다.

‘일과 여가, 가족생활, 정치, 시민사회에 우리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우리가 집단적으로 생산하는 사회적 잉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사안들을 정확히 누가 결정할 것인가?

하지만 이 책은 이 식인 자본주의를 무엇으로 대체해야 하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다. 그러면서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검토한다.

 

조금은 더 세밀하고 치밀한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모든 잘못을 치유하기는 매우 벅찬 과업이라고 설명한다. 경제․금융위기만이 아니라 생태․사회-재생산․정치 위기를 낳는 경향들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위기 경향들의 제도적 기반을 해체하는 세밀한 사회주의를 내세운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주의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인 그 경계선들이 더 유연해지고 상호 침투하도록 성격을 바꾸는 것에 관해 숙고하고 이 경계선들을 나누는 다양한 영역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대립과 적대가 아닌 방식으로 반응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래 내용은 그녀의 제안들이다.

‘첫째로, 사회주의 사회는 상품을 생산하는 활동뿐 아니라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사람들을 유지시켜주는 돌봄 활동 등)도 보충해야 한다.’ p.281

‘사회주의자는 중간층을 다양한 가능성의 혼합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상상해야 한다. 시장이 협동조합, 커먼즈, 자주적 결사체, 자주관리 프로젝트와 공존하며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다. … 일단 최상층과 기층이 사회화·탈상품화된다면, 중간층에서 시장이 맡는 기능과 역할도 변형될 것이다.’ p.286

‘또 다른 장점은 전통적 노동운동의 중심 주제를 넘어선 광범위한 당면 쟁점들, 즉 사회적 재생산, 구조적 인종주의, 제국주의, 탈민주주의화, 지구 온난화 같은 쟁점에 대해 사회주의가 시의성을 지님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세 번째 장점은 제도적 경계선들, 사회적 잉여, 시장의 역할 같은 사회주의 사상의 몇 가지 고전적 기본 주제들에 새로운 빛을 비출 수 있다는 것이다.’ p.287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좀 더 세밀한 경계선들이 필요한 시기이다.



글 _ 강구민 도시사람콘텐츠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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