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 구원의 손길이 되어준 책

이번이 다섯 번째 미국 방문이다.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부터 느껴지는 미국 특유의 빈틈없음에 조금은 익숙해졌다. 사람들은 무언가 명확한 목적지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고, 그 압력을 개인이 그대로 받아내는 것이 ‘개인주의’였다. 처음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의 위압감은 30대 한국인으로서는 감내하기 어려운 강도였다. 나름 작은 도시에서 전통적 문화를 접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미국의 ‘거대한 파편’이 익숙하지 않고 생채기처럼 눈에 확 띄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번의 방문 가운데, 소소한 합치를 경험한 적도 있고, 미국인들의 소시민적 담대함을 느낀 적도 있으며, 미국 작은 도시와 커뮤니티의 발랄함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덜 우울하였지만, 이번은 위기의 시기라 사뭇 느낌이 남달랐다. 한 달여의 여정을 지탱해 준 책을 두 차례에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사회적 유대를 생산하고 유지하는 필수재 공급이나 돌봄 제공, 상호작용 등의 활동에 화폐화된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마치 무상인 듯 취급하면서도 이에 의존한다. 아니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무임승차한다. ‘돌봄’, ‘감정노동’, ‘주체화’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이 활동은 자본주의의 인간 주체를 형성하고, 이들을 신체화된 자연적 존재로 유지시킴과 동시에 사회적 존재로 구성하여 이들의 아비투스의 문화적 에토스를 형성한다. p.118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 식인 자본주의

낸시 프레이저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사회이론가이자 뉴욕 뉴스쿨의 철학․정치사회이론 담당 교수이다. 그녀는 기존의 ‘분배’에만 초점을 맞춘 존 롤스식 정의론에 한계를 인정하며 여성운동, 흑인운동, 성소수자 운동 등이 제기하는 또 다른 정의관, 즉 문화적 정체성의 ‘인정’을 중심에 둔 정의관을 적극 수용해 이 둘의 공존과 상호작용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나아가 프레이저는 인간과 비인간 자연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재생산, 인종화된 집단에 대한 수탈, 공적 권력 등을 둘러싼 관계들로까지 시야를 넓혀, 이러한 관계들과 자본주의 경제가 빚는 모순이 자본주의 경제 안의 모순만큼이나 자본주의의 운명에 결정적이라고 역설한다. p.309(옮긴이 후기 중)

한글 번역본의 제목이 『좌파의 길』이지만, 원서명은 『Cannibal Capitalism』 즉 ‘식인 자본주의’이다. 그녀는 서문에서 지금 마주하는 희대의 위기와 혼란을 야기하는 사회 시스템을 ‘식인 자본주의(Cannibal capitalism)’라 명하고 있다.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수이자 중세 연금술에 등장하는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용 혹은 뱀의 형상을 한 생물)를 현재의 자본주의를 비유하여,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구성적 요소이자 기둥들을 먹어치우는 현 상황을 비유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제 꼬리를 먹는 우로보로스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마저 먹어 치울 태세다. 스스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일상적으로 우리 삶의 기반을 먹어 치우고, 주기적으로 위기를 불러들인다. p.19

 

위험에 빠진 자본주의의 핵심 조건인 ‘돌봄’, 에너지가 고갈되다

한편, 그녀는 사회경제적 구조의 결함을 들춰내려는 시도가 다소간 낭만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급진적이거나 변화에 취약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장이다.

하지만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서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른 한편으로, 많은 이들의 낭만적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즉, 사회․정치․자연․주변부가 자본주의의 ‘외부’에 있으며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와 대립한다는 생각 말이다. 오늘날 문화적 페미니스트, 심층 생태주의자, 네오 아나키스트, 탈식민주의자뿐만 아니라 ‘다원적’ 경제, ‘포스트 성장’ 경제, ‘실체적’ 경제, ‘사회연대’ 경제의 숱한 주창자들을 포함한 상당히 많은 반자본주의 사상가와 좌익 운동가들이 이러한 낭만적 관점을 견지한다. 이들은 ‘돌봄’, ‘자연’, ‘직접행동’, ‘커머닝(commoning)’, ‘(신)공동체주의’ 등이 본질적으로 반자본주의적인 것인 양 다루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 결과 자신들이 선호하는 실천이 자본주의 비판의 원천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질서의 불가결한 일부이기도 함을 간과하게 된다. p.63

‘돌봄’ 활동은 ‘노동’을 구성하는 인간 존재를 떠받치고 협력이 이뤄지도록 사회적 유대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조직하는 자본주의만의 독특한 방식이 자연을 조직하는 방식만큼이나 모순적임을 알아채고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여기에서도 자본주의 시스템은 분할을 통해 작동하는데, 생산을 재생산에서 분리해 생산만을 가치의 무대로 취급한다. 그 결과 백지 위임장을 받은 경제는 사회에 무임승차하고, 돌봄 활동을 보충하지 않은 채 제 살만 깎아먹으며, 돌봄 제공에 필요한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그리고 결국은 자본주의 자체를 존립하게 하는 핵심 조건을 위험에 빠뜨린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위기를 낳는 경향(즉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를 낳는 경향)은 자본주의의 바로 그 핵심에 자리한다. p.169

 

‘자연’을 하찮게 여기면서 먹어치우는 자본주의

이 책은 엄밀히 말하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글이 아니라, 기존의 자본주의와 대안적 운동의 이분법적 접근이 설명하지 않았던 그 간극을 설명하는 글이다. 그 점에서 자연을 먹어치우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역사적 자연’으로 확장하여 포괄적으로 해석하자는 시도는 신선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연’에 의존해 ‘경제’를 만들면서 둘은 존재론적으로 분할한다. 이 제도배열은 가치의 최대 축적을 즐기면서도 자연을 손님으로 초대하지는 않으며, 이로써 경제가 (자신이 유발한) 생태적 재생산 비용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도록 프로그램화한다. 그 결과 이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수록 생태계가 불안정에 빠지며, 주기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날림 건축물 전체에 균열을 일으킨다. 자연을 필요로 하면서도 하찮게 여김으로써 자본주의는 자기 신체의 필수 기관을 먹어 치우는 식인종이 된다. 자본주의는 우로보로스처럼 자기 꼬리를 먹는다. p.166

 

비-경제적인 것(돌봄, 자연 등)의 가치를 존중하자!

이 책은 자본주의의 속성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경제적인, 사회 시스템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요소들을 확장적으로 정의하는 것을 제안한다. 화폐화된 자본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펼친 축적의 활동이 생태적 재생산 비용의 할인 덕에 가능하였다는 점에서 이제는 이들 돌봄과 자연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자는 주장이다. 가치들을 추상화한 것을 정상화하자는 논리이다. 이들이 없다면 자본주의도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에 꼭 필요한 조건인 이러한 ‘비-경제적’ 심급들은 자본주의에 외재적인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이들을 삭제한 자본주의관은 이데올로기적이다. 자본주의를 경제와 동등하게 취급한다면, 이 시스템의 경제주의적 자기 인식을 앵무새처럼 따라 할 뿐 이를 비판적으로 따져 물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비판적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더욱 폭넓게 이해해야만 한다. 즉 ‘경제’만이 아니라, 비-경제적이라 규정되지만 경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이런 활동과 관계, 과정까지 포괄하는 ‘제도화된 사회 질서’로 이해해야만 한다. p.162

 

(다음에 계속됩니다.)

 

글 _ 강구민 도시사람콘텐츠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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