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시작은 시간의 흐름을 분절하는 새 마디다. 이번 호에서는 기자들이 각자 변화한 상황이나 위치에 따라 새로운 해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며 살아가고 싶은지 나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동행하기

바다거북 해가 바뀌면서 저는 사회적으로도 어른이 되어야 하는 나이에 가까워졌고, 그것이 최근의 생각들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현암사)에 이런 글귀가 있었어요.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어른이 되는 일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일과 동의어가 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제게 일깨운 문장입니다. 현재 동료들과 숙소에서 함께 거주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직장동료들과 놀기도 살기도 모두 같이 하는 셈이라, 쉽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죠. 『풀업』(강화길, 현대문학)에는 ‘자극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자극점이 없는 바르지 않은 자세는 당장엔 편하지만, 종국에는 몸의 균형을 망가뜨리고 만다고요. 제겐 인간관계에 관한 비유로도 읽혔고, 그것이 도움이 되었어요.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허블)을 읽으며 살아간다는 건 늘 기회를 마주하는 일이고, 그러니 살아있는 한 언제나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어요.

 

앎을 삶으로

달팽 책방을 연 지 어느덧 9년이에요. 그동안 늘 책과 함께해 온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독서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껴요. 이전에는 책이 논리를 다듬어주고 상대에게 대응하는 나를 돕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젠 읽은 것을 실제 삶에서 언행으로 일치시키는 일이 더 중요해졌어요. 경청과 사랑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하는 것보다는, 이를 눈빛, 말, 행동 등 몸으로 일치시키고 다듬어나가는 연습의 과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게 되었거든요. 『틱낫한 지구별 모든 생명에게』(센시오), 『한배를 탄 지구인을 위한 가이드』(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 외, 김영사)를 소개하고 싶어요. 두 책은 공통으로 기후위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을 복잡하고 통제 불가능한 문제를 맞닥뜨린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수행과 수용 방식을 말하는 책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역은 사랑

유차 요즘 저는 삶의 이행기 그리고 사랑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바르도1』(리민, 무하유)을 읽으며, 내가 바라는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조금씩 ‘사랑 그 자체’인 존재가 되어가는 수련에 대해 생각했어요. 『클레이의 다리』(마커스 주삭, 문학동네)에 등장하는 오 형제의 애처롭고도 경이로운 삶은 아이들의 부모와 그 부모, 또 그 부모로부터 이어져 온 아주 오래된 서사입니다. 여러 개의 겹과 층으로 이루어진 관계로 이어져 있기에 한 사람은 그 누구도 하찮은 존재일 수 없다는 생각은, 그렇다면 이전까지의 내 삶을 움직여온 동력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것으로 뻗어 나갔어요. 숨 쉬듯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나를 둘러싼 공기들, 모르는 새 내 안에 심어져 있었던 관점과 가치들 역시 오래된 유산에서 비롯된 것일 테니까요. 『리스본행 야간열차』(파스칼 메르시어, 비채)를 읽고, 새해에는 내 삶의 낡은 동력을 해체하고 다음에 펼쳐질 삶의 새 챕터를 써 나갈 큰 힘을 마련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순간을 영원으로

미야 기록을 잘해 두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 수년 동안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며 시도했지만, 여전히 한두 장만 쓰인 채 버려지는 다이어리가 쌓이더라고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현대지성)을 떠올렸어요. 이 책이 세월의 심판대를 굳건히 통과해 왔다는 사실은 기록하는 일 그 자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저력을 몸소 증언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한중록』(문학동네)을 읽을 때면 늘 깊이 감정 이입하게 되어 안쓰럽고 마음이 아픈 느낌이 들어요. 혜경궁 홍씨가 그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을 담담한 어조로 가감 없이 모조리 담아두었기 때문이겠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적어두지 않으면 잊히고 말 일상의 편린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요.

 

지금 여기 사랑을 심어둘게요

하지 해가 바뀌면서 저는 직장에 복귀하게 되었어요. 제가 근무하는 곳에선 같은 직급이라고 해도 반드시 비슷한 연령의 직원들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제각기 다른 동료들과 함께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서로를 보완하며 지내는 생활이 흥미롭기도 해요. 하지만 동료, 상사와 함께 일을 하는 생활이 다시 시작되면서 역시 직장에서의 인간관계란 단순하지 않고 내 마음 같지 않은 부분들이 있음을 차츰 실감하게 됩니다. 박완서의 『노란 집』(열림원)엔 작가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와요. 여성들이 제대로 된 이름을 얻을 수 없었던 시절, 정성을 들여 손녀 이름을 손수 작명해 준 할아버지의 사랑이 자신을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케 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작가의 설명과 함께요.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책방)을 읽을 때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것은 그에게 사랑을 주는 일이고, 그건 아주 작은 것을 행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다음에 하며 조건을 달지 않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실천하며 살고 싶어요.

 

다음에 쓸 문장을 생각하며, 숨 고르기

여름 양귀자의 『모순』(쓰다)에서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탐구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어요. 생각에 매몰되느라 아예 나아가지 못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편을 택하고 싶어요. 특별한 계획을 세우진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요. 1월과 2월은 일 년이라는 책의 첫 번째 문장일 뿐이고, 첫 문장이 그 책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녀의 은밀한 욕망

달은 제겐 ‘남을 웃기고 싶다’는 비밀스러운 바람이 있어요. 유머 감각과 재치는 많은 걸 수월하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막연한 소망이라면, 가까이 지내며 가끔 만나 맛있는 걸 먹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거예요. 얼마 전 황선우, 김혼비 작가의 서간집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문학동네)를 읽었어요. 강렬한 제목만큼 강렬하게 독자를 웃기고 울리는 두 사람의 편지를 엿보는 동안 느슨한 우정의 아름다움을 생각했죠. 생존과 책임 그 밖의 여집합 영역에서 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며 살아가는 데에 힘쓰고 싶다는 결심도 했어요.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임경선, 마음산책)를 읽으면서요. 기능하는 나를 내려놓은 순간들에조차 합리적인 이유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끌림들을 해명하고 싶지 않아요. 권위에 의해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동사적인 상태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나다운 선택을 중첩하고 축적해 가고 싶어요.

 

글_ 달은, 그림_ 여름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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