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아기별꽃

 

우리 결혼했어요.

서른세 해 전 오늘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어요.

 

오늘 봄햇살이 눈부신 날입니다.

야간 퇴근을 하고 온

나를 위해

황토방에 불을 넣고 있는 남편을 보았습니다.

따뜻하게 자라는 따뜻한 배려지요.

 

여보!

오늘 무슨 날이게요?

화이트데이.

에이 그건 어제 지났구요.

음… 그럼 모르겠는데

살짝 흘겨보는 내 눈빛에

당황한 남편님

머리만 벅벅 긁어댑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하고는 문을 닫았습니다.

아~!

결혼 축하해

뭐 축하받을만한 결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고는 이불 속에 빨려 들어갑니다.

살짝 자고 일어났습니다.

 

이불을 빨아 널고

청소를 하고

고픈 배를 채워봅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애타게 부르시네요

방풍나물을 캐서 주십니다.

남편이 조금 나눔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감사의 인사 꾸벅하고

얼른 텃밭에 심어 줍니다.

호미 든 김에 작업을 조금 더 해 봅니다

작년에 아들이 사다 준 국화를

옮겨 봅니다.

이제 화단과 텃밭을 분리 하려구요.

 

작년은 집수리하면서

꽃이든 식물이든 생각 없이

막 심었는데

올해부터는 구분을 해서

예쁘게 가꿔보려 합니다.

 

동생이 언제 내 뒤에 와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을 않더랍니다

 

동생과 조카랑

봄나들이하러 직지사 갑니다.

봄물 흐르는 소리도 좋고

봄노래 지즐대는 새소리도 흥겹습니다.

봄바람도 살갑게 불어줍니다.

봄볕도 적당히 내리쬡니다.

모든 게 좋은 날입니다.

 

남편님 전화.

어디야?

난 직지사에 나왔지요.

오늘 내가 예쁜 꽃은 못 사줘도

맛난 저녁 함께 먹자는 남편.

예쁜 꽃과 저녁을 같이 사라 했더니

꽃은 집에 많잖아, 합니다.

여보 이럴 땐 꽃보다 예쁜 당신이 있어

좋다고 해 주세요 했더니

피식 웃는 소리가 전화기 넘어 들립니다.

 

곰살 맞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고

입에 발린 말은 못 하는

남편답습니다.

 

동생과 조카랑

오래전 우리가 직지사에 들렀던

추억들을 소환해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지요.

 

서른세 해를 살면서

고생도 많았지요.

눈물 나는 추억들에 가슴 먹먹해지는

오후가 기울어 갑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십억짜리 빵을 하나씩 입에 물고

진짜 십억이면 좋겠다며 웃어봅니다.

우리의 배천집엔

남편님이 먼저 와 있습니다.

 

처제가 한마디 건넵니다

형부 축하해요

이혼 안 하고 삼십 년 잘산 거…

맞아

결혼하기보다 지켜내기가 더 힘들어

합니다.

암요

그렇구 말구요.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자유를 숨기고

오늘도 맞추고

내일도 맞춰가며 살아내는 결혼생활입니다

 

저녁 메뉴

섬바우 횟집에 오랜만에 가 봅니다.

참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녁도 맛나게 먹고

동생과 나는 동네 한 바퀴 돌았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참 이쁩니다.

 

언니인 내가 우울해

죽을 것 같다는 말에

단숨에 달려와 준 동생입니다.

오십 년을 함께 해 온 친구 같은 동생

늘 고맙습니다.

 

시금치. 쪽파. 냉이

보리쌀. 굴비. 김부각 챙겨서 보냅니다.

엄마가 없는 우리는 서로에게

친정엄마가 되어줍니다.

내일은 각자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로

오늘은 여기서 헤어집니다.

 

또 열심히 살다가

그리움이 병이 될 즈음 다시 만나겠지요.

내 하루도 여기서 마감입니다.

 

잘 자요

나도 잘 거에요.

 

한옥 담장 사이로 오는 봄. 직지문화공원에서 ⓒ아기별꽃
한옥 담장 사이로 오는 봄. 직지문화공원에서 ⓒ아기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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