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선택에 ‘생각지 못한’ 행복이 많다

밥 먹을 곳을 찾다가 아무런 보리밥집에 갔다-형곡 시립 도서관 앞이다. 간판에 그냥 ‘보리밥’이라고 쓰여 있었다. 뭐, 국수라도 먹지, 뭐... 하는 마음으로 들어서자마자 주인아줌마가 ‘한 명?’ 이라고 해서 ‘네, 한 명!’이라고 대답하곤 구석자리에 앉았다. 보리밥 비빔밥과 된장찌개, 정구지찌짐(부추전) 조금과 짠지, 꽁치구이 한 마리가 1분도 안되어 나왔고, 게걸스럽게 먹고 커피 한 잔 했다.

사실 나는 이런 곳을 좋아한다. ‘주는 대로 먹어!’라고 하는 곳 말이다. 현대 사회는 어딜 가나 선택지가 너무 많다. 커피도 종류가 너무 많고, 맥주도 종류가 너무 많으며, 노트북도 따지려면 일주일이 걸리는 거다. 우리는 선택의 시간을 얼마나 많이 보내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선택의 자유는 스스로의 것처럼 보이지만, 많은 것들이 이익을 보는 자가 제공하고 있고 우리는 돈도 쓰고 시간도 쓴다. 돈을 쓰면 시간은 벌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식판밥을 좋아한다. 메뉴를 선택할 필요도 없지만, 제공자는 매번 같은 메뉴를 제공하지 않는다. 만들어 주는 대로를 강요하는 주방 아줌마의 카리스마에 기꺼이 휘둘리는 일은 즐겁다.

과거, (여자에게 잘 보여도 되는 자격이 남아있을 때)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아가씨가 스테이크를 어떻게 먹겠냐고 선택하라는 거다. 웰던으로 달라고 했더니, 다소 질길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하는 거다. 그럼 미디엄으로 달랬더니 다소 육즙이 나올 수 있는데 괜찮겠냐고 하는 거다. 이거, 뭐 어쩌란 말인가?!!!!

많은 선택지 가운데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하는 것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우연한 선택에 ‘생각지 못한’ 행복이 많다. 그러니까 선택은 동전 던지기로! 선택지가 여섯 가지라면, 주사위가 있잖아.

만화가 김수박
뉴스풀협동조합 조합원
만화 [아날로그맨], [오늘까지만 사랑해], [내가 살던 용산](공저),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 사람 냄새], [만화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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