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연락하지 않은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만화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서울에 올라가서, 1년 정도 길을 못 찾고 헤매다가 막일을 나갔었다. 인터뷰 같은 것을 하면 내가 ‘노가다’ 잘한다고 표현하곤 했는데, 그것을 본 아버지가 이제 노가다 했던 얘기를 그만 하면 안 되겠냐고 하셔서, 요즘은 ‘막일’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그 일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떤 일이든 하다보면 조금씩 더 알게 되고 할 만하게 된다. 현장 아저씨들은 ‘이력이 나면 괜찮아져.’라고 표현하곤 했다. 정말 이력이 나기 시작하니까 일이 재미있었고, 심지어 지금보다 돈도 잘 벌었다.

막일을 한 2년을 했는데, 어느 날 옛 친구가 ‘왜 이렇게 연락이 없냐?’며 좀 보자고 했다. 막일을 하는 기간 동안은 친구를 만나기 싫었다. 그래서 연락을 하지 않은 면이 있었는데,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런 경우를 좀 우습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만난 경우,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을 묻자면 쌍방책임이다. 서로 연락 안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것이다. 그러나 꼭 한 쪽에서 먼저 ‘선빵’을 친다. 이런 경우 참 흔하다.

“연락 좀 해라, 이 자식아!”

그러고 나면, 상대방이 아무 죄도 없이 죄인이 된다. 나는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최근 2년 동안 돈 벌자고 막일을 좀 했었는데,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을 일부러 안 만났다고 했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죄인 만드는 말기술은 또 있다. 친구가 말한다.

“너는 나쁜 새끼야.”

이 친구는 나를 위로하고 싶은가 본데, 문제는 내가 이제부터 화가 난 이 친구를 달래야 된다. 1시간을 달래도 모자라다.

“내가... 좀 그랬어, 미안해.”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넌 나쁜 새끼야. 내가 너 친군데, 친구끼리 그런 게 어디 있냐? 사람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 사람이 좀 없다고 친구를 피하냐? 넌 나쁜 새끼야, 이 자식아!”

이런 방식으로 나에게 마구 쫑크를 준다. 나는 이 친구에게 왜 미안해야 될까? 위로를 할 거면, 진짜 위로를 하든가. 속으로 자꾸 생각하게 된다. 사실은 이런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이 친구는 세상의 많은 일들을 상대방 책임으로 둔갑시키는데 능하구나. 나는 그 날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이 친구를 달래야했다. 만약 마음이 힘든 쪽을 가리자면, 내 쪽인데.

집에 가는 택시를 타기 직전까지 이 친구를 달랬다.

“힘들면 연락해. 알았지? 넌 나쁜 새끼야, 인마!”

술 취한 친구를 태워 보내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 새끼한테는 연락 안해야 되겠다.’

만화가 김수박
뉴스풀협동조합 조합원
만화 [아날로그맨], [오늘까지만 사랑해], [내가 살던 용산](공저),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 사람 냄새], [만화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출간

키워드

#N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