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따뜻해야 된다

겨울이었다.

오래전에 살던 황상동 버스 종점 동네, 엘리베이터 없는 5층 아파트 앞에는 조그맣고 유행 지난 LAWSON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 입구 바로 앞에는 횡단보도가 있었다.

횡단보도 바로 옆에는 겨울에 나와서 장사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찬바람에 얼굴까지 꽁꽁 싸맨 할머니는 군고구마와 귤을 팔았다. 오전 집 정리(아내는 퇴근하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집안이 어수선한 것을 싫어한다. 그때도 지금도......)를 하고 나면 나는 커피 한 잔 하러 그 편의점에 들르곤 했는데, 그 때마다 입구 쪽 의자 없는 테이블에서 그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에다 집에서 가져온 밥과 짠지를 꺼내놓고 점심을 드셨다. 할머니의 눈은 편의점 입구 앞, 횡단보도 옆 자신의 노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점심을 드시다가도 노점 주인 찾는 이의 두리번거림이 ‘느껴지면’ 쏜살같이 쫓아나갔다.

귤을 팔고 전대에서 잔돈도 내어주시곤 다시 들어와서 라면과 밥을 드셨다. 눈은 다시 노점에 고정시키고. 그 겨울 내내 점심시간이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뚝뚝한 편의점 아저씨와 할머니의 약속이 있었다. 점심시간 동안은 그렇게 하기로.

컵라면 하나만 사 드시지만 그렇게 하기로.
겨울동안은 그렇게 하기로.
편의점 창 밖 공기는 쨍하게 차가웠지만 구름 없는 낮볕이 눈부셨고, 기분 좋았더랬다.
그 겨울 내내.

겨울엔 따뜻해야 된다.

만화가 김수박
뉴스풀협동조합 조합원
만화 [아날로그맨], [오늘까지만 사랑해], [내가 살던 용산](공저),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 사람 냄새], [만화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출간

키워드

#N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