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비밀은 위험하다 - 첫번째 이야기

19대 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인 5월 19일, 화학물질관리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화학물질관리의 총체적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진행형인 시점에 지역사회의 참여와 알권리를 조금이나마 확대할 수 있는 법제도 장치가 마련되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이 개정안은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와 은수미의원실이 마련한 ‘지역사회알권리법’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역사회알권리법은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누출사고 이후 화학물질 사고예방과 비상대응에 있어서 지역주민의 참여와 알권리가 보장된 지역통합적 관리체계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53명의 국회의원이 2014년 5월 공동발의한 ‘화학물질관리법 일부개정안’을 의미한다.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사고의 예방과 대응은 중앙이 아닌 지역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미국의 ‘비상대응계획 및 지역사회알권리법(EPCRA)’을 연구, 분석하여 지역사회알권리법안을 완성하고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운동을 펼쳐왔다.

이번에 개정된 내용은 2014년과 2015년 말 국회 법안소위에서 정부여당의 극심한 반대 목소리에 직면하며 수정된 개정안이다. 수정된 이 개정안도 표류를 거듭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밝혀지며 19대 국회 마지막 끝자락에 겨우 통과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은 화학물질의 관리에 관한 조례제정를 통해 화학물질 안전관리 및 화학사고 대비ㆍ대응을 위한 계획 또는 시책의 수립ㆍ시행과 화학물질관리위원회 구성ㆍ운영, 화학물질 관련 위험정보를 지역사회에 제공해야 한다. 화학물질의 유해성정보 및 화학사고 위험성, 화학사고 발생 시 조기경보 전달방법, 주민대피 등 행동요령이 포함되어 있는 위해관리계획서가 원활하게 지역주민에 고지될 수 있도록 지원도 해야 한다.

또한, 심의기능까지는 아니지만 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이 작성한 위해관리계획서를 사전에 검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되었다.
 

<신설> 제7조의2(화학물질의 관리에 관한 조례의 제정)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관할구역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화학물질로 발생하는 사고에 대비ㆍ대응하기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조례로 정할 수 있다.

1. 화학물질 안전관리 및 화학사고 대비ㆍ대응을 위한 계획 또는 시책의 수립ㆍ시행

2. 화학물질의 관리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고 자문하기 위한 위원회의 구성ㆍ운영

3. 화학물질 관련 정보의 제공

4. 화학물질의 안전관리에 필요한 행정 및 재정 지원

5. 그 밖에 화학물질 안전관리 및 화학사고 대비ㆍ대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

 

하지만 아직까지 지역사회알권리법을 충족하기는 부족하다.

첫째는 법 제41조, 위해관리계획서 작성대상을 사고대비물질 69종에서 전체 유독물질로 확대하는 발의안 조항이 빠졌다. 우리나라에서 4만종이 넘는 화학물질이 쓰이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너무나 적은 수이다.

둘째로는 법 제43조, 화학사고 발생 시 피해당사자인 지역주민에게 즉각 사고사실을 통보해야 하는 의무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주는 조항이 빠졌다. 2012년 구미 휴브글로벌 불산누출사고이후 2013년 89건, 2014년 105건, 2015년 113건이었던 화학물질 사고 중 단 1건도 주민에게 통보한 사실이 없었다. 법적 의무가 누구에게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지 사고사업장 사업주만이 관계기관에만 통보하면 끝이다. 가장 개정이 시급한 내용이지만 재난안전관리법 상 사고메뉴얼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하지만 정부관계자를 포함한 많은 전문가들이 재난안전관리법으론 효과적인 비상대응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아쉬움이 크다.

셋째로 지방자치단체가 환경부의 화학사고 영향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되지 못했다. 사고가 나면 영향조사관이 파견되어 사고조사를 하게 되어 있다. 조사 시 지역참여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시나리오이지만 포함되어 있지 못하다.

개정된 법안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보았다. 이제 정부와 지자체의 발빠른 행보를 기대해 본다.

우선적으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조속히 화학물질 알권리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조례제정의 근거가 마련된 만큼 지역현황을 근거한 조례내용을 만들기 위한 민관이 참여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화학물질관리위원회 구성을 통해 지역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 위험정보를 주민에게 알리고 예방과 대응체계를 수립함으로서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지역사회만들기에 나서길 바란다.

그리고 정부와 환경부는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국민을 상대로한 비밀이 얼마나 위험한지 극명하게 보여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거울삼아 이번 법 개정에 만족하지 말고 지역사회의 참여와 알권리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보다 강력한 지역사회알권리법이 완성될 수 있도록 앞장서실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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