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말고 꽃! 꽃길 따라 평화 오소서

▲ 지난 4월 8일, ‘불법사드 원천무효 제2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행동’이 성주 소성리 일대에서 베풀어졌다.

사드 배치 반대를 위한 ‘3·18 소성리 범국민 대회’(3월 18일)에 이어 어제(4월 8일)는 ‘불법사드 원천무효 제2차 소성리 범국민 평화행동’이 소성리 일대에서 베풀어졌다. 1차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던 나는 후배 한 친구와 함께 소성리를 찾았다. 

국방부가 사드 일부분의 한반도 전개를 발표한 이후 지역 주민들은 물론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금 사드 배치를 서두르고 있는 듯하다. 사드 발사대 2기가 들어와 칠곡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보관 중이고 사격통제 레이더도 들어왔다고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나는 사드 배치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되어 버린 거 아니냐고 말했고 후배는 미국이 우리를 식민지로 생각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에서 속전속결로 끝내려고 하지는 않을 거라고 받았다. 결이야 달랐지만 어쨌든 희망은 지켜가야 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 시골마을 소성리는 인근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에 사드 배치가 결정되면서 일상의 평화를 빼앗겨 버렸다.

작은 마을은 이미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간신히 마을 안쪽에다 주차하고 소성리 마을회관 쪽으로 들어갔다. 마을회관 앞에서 골프장으로 이어지는 도로 양쪽에는 가로수의 벚꽃이 흐드러졌다. 사드 포대와 무관하게 마을에는 봄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었다.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는 달마산 기슭의 양지바른 시골 마을이다.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2) 생가가 있는 원불교의 성지다. 한적한 골짜기에 들어앉은 이 조그마한 농촌마을은 인근 롯데 스카이힐 골프장에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가 결정되면서 일상의 평화를 빼앗겨 버렸다. 

주민 70여 명은 매일 순번을 정해 롯데골프장 진입로인 마을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촛불 집회를 여는 등 사드 배치를 막겠다며 힘을 모으고 있다. 성지를 지켜야 하는 원불교 쪽에서도 성직자들이 롯데골프장으로 들어가는 진밭교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집회장에는 오후 1시 반부터 시작된 4대종단 평화기도회에 이어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을회관 앞 도로 위 집회장 주변에는 온갖 깃발이 나부꼈고, 전국 각지에서 온 참가자들이 흔드는 원색의 시위용 팻말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마을회관 앞에는 천주교 종합상황실과 김천대책위가 열고 있는 먹거리 장터가 있었고, 평화 나비 리본 만들기 체험 부스도 있었다. 25도를 오르내리는 초여름 날씨였고, 마을의 연로한 어르신들과 할머니들은 마을회관 앞 그늘에서 의자에 앉아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으로 비례의원 당선자 신분을 사퇴했던 윤금순 씨를 만났다. 내게 문학을 배운 그의 딸은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젊은이들에겐 고단한 세월이다. 

거의 20년 만에 한때 활동을 같이 한 후배 여교사도 만났는데 10여 년 전에 교직을 떠난 그는 녹색당 깃발을 들고 왔다. 그리고 함안에서 온 경남의 해직 동기도 만났다. 아직 현직에 있는 그는 엄청나게 수염을 기르고 있어 못 알아볼 뻔했다. 나이 탓일까, 우리는 아주 자연스레 말을 놓고 있었다. 

▲ 25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 집회기 진행되는 동안 경찰들이 벚꽃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소성리 부녀회는 가요 ‘소양강 처녀’를 개사한 노래 공연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 두 시간이 넘는 집회를 마치고 참가자들은 진밭교를 향해 벚꽃길을 행진하기 시작했다.
▲ 행사에 참가해 '평화(peace)'를 새긴 펼침막을 들고 있는 외국인들.
▲ 진밭교 삼거리의 원불교 천막 '평화교당'의 성직자들. 이들은 여기서 29일째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 진밭교 삼거리에서 성주투쟁위 공동위원장을 맡은 원불교 김성혜 교무가 집회 마무리 연설을 하고 있다.
▲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참가자들은 불법사드 배치 사실이 적힌 펼침막을 찢어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행사 말미에 소성리 부녀회는 가요 ‘소양강 처녀’를 개사한 노래 공연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집회에 꼭 날선 운동가요만 넘칠 일은 없는 것이다. 소성리 부녀회장의 마지막 인사가 가슴에 서늘하게 남았다. 그는 30여 년 전 내가 성주에서 만난 여성농민 중 한 사람이었다.

“소성리에도 사람이 삽니다. 
오늘 오신 국민 여러분을 믿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2시간 30분가량의 집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약 1km 떨어진 원불교 평화교당이 있는 진밭교 삼거리 앞까지 행진했다. 경찰들의 폴리스 라인 옆으로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도로를 우리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길가에 끊임없이 이어진 펼침막 가운데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사드 말고 꽃! 꽃길 따라 평화 오소서.”

짧은 문장 속에 담긴 간절한 원망이 마음에 닿아왔다. 진밭교 삼거리 하늘에 걸린 펼침막의 내용도 마찬가지 울림으로 다가왔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다.”

진밭교 삼거리, 원불교 교무들이 지키는 천막, ‘평화교당’ 앞에서 집회는 마무리되었다. 서둘러 길을 떠나는 참가자들 어깨 너머로 길가의 벚꽃이 다시 환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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