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장에서의 작은 실험

단체 관람 영화 정하기

나는 한 기업에서 교육담당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신입사원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원은 다소 줄었지만, 올해 초에도 어김없이 30여명의 신입사원이 들어왔습니다.

합숙 교육 2주 이후, 다시 2주 간의 기술교육으로 이어지는 다소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육 중간에 교육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한 문화행사가 있습니다. 문화행사라고 해봐야 평일 오후에 일찍 나가 영화 한편 보고 고기에 소주 한잔 먹는 일정이지만, 많은 교육생들은 그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곤 합니다.

문제는 단체 관람할 영화를 정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원들이 모이다 보니, 영화 한 편 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이 때 제일 만만한 방법이 바로 투표입니다. 이번에도 신입사원 대표가 스마트폰으로 무기명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몇몇 후보 영화가 있었는데, ‘더 킹’과 ‘모아나’ 등이었습니다. 투표 결과, ‘더 킹’이 압도적인 1위를 했습니다. ‘모아나’를 선택한 인원은 극소수였습니다. 예전 같으면 별 고민없이 ‘더 킹’을 골랐겠지만, 작년부터 토론 중심의 학습을 기조로 삼고 있다 보니, 올해는 교육생들 간에 간단한 토론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각 영화를 지지한 인원들이 왜 이 영화를 봐야하는 지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토론이 ‘더 킹’으로 기울면서 마무리되어 갈 때 쯤 ‘모아나’ 쪽의 한 여자 신입사원이 손을 들었습니다.

“영화를 선정할 때 화제성이나 흥행 정도, 그리고 재미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우리는 단체 관람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있고 유명한가?’도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만, 여기 있는 모든 동기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인가?’라는 기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킹’ 같이 정치적이거나 남성 중심의 영화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지만, ‘모아나’의 경우는 그럴 가능성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단체 관람에는 ‘모아나’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발언이 끝난 후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곧 이어 ‘더 킹’ 지지파에서도 해당 발언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신입사원 대표가 다시 실시한 투표에서는 놀랍게도 ‘모아나’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극히 소수에 불과했던 주장이 토론을 거치면서 극적으로 뒤집힌 경험이었습니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최고의 원칙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많이 얘기할 겁니다. 하지만, 다수결의 원칙보다 더 중요한 민주주의의 원칙은 ‘대화와 타협’입니다.

우리는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라는 말도 자주 듣고, 씁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소주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것은 쉽게 말해 그 소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의견을 들었을 때, 일리가 있거나, 수긍이 되어 우리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그 소수의견은 세력을 넓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반대로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그 의견을 사라질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해야 합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 최고의 원칙이 아니라 최후의 원칙이 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끝난 대선에는 도대체 가능성도 없는데 왜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 후보와 정당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거는 단순히 표를 얻어서 이기기 위한 것보다는 나의 주장을 펼치는 기회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소수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또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선거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얘기하고 토론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이런 소란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습니까? 민주주의는 원래 좀 시끄러워야 제 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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