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교의 교육이야기 1

글쓴이가 수능 시험장에서 제자들을 만나고 있다.

수능이야기

수능이라는 손님이 왔다. 늦가을 거리에 은행잎들이 노랗게 시들어갈 무렵이면 어김없이 해마다 찾아오는 손님이다. 누구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손님이지만 수험생과 그 부모들에게는 참으로 긴장되게 맞아야 하는 중요한 손님이며 학교는 해마다 대하지만 아주 치밀하게 대해야 하는 까다로운 손님이다.

수능이 처음 온 것은 1994년이다. 벌써 25번째다. 처음 올 때는 교과서 내용 중심의 4지선다형 학력고사라는 낡은 제도에서 벗어나 통합교과 중심의 5지 선다형 수학능력고사라 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우리 학교교육에 나름 기여한 면이 있다.
그러면서 25년, 4반세기 동안 수능이 우리 학교교육을 지배했다.

이후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도 수능은 변하지 않았다.
세상이 변하여 우리 아이들이 어떤 인물로 자라야 할지는 모두 알고 있다. 많이 아는 이가 아니라 문제 해결능력, 소통과 공감 능력, 상상력과 창의력, 사회적 연대 능력 등을 가진 이로 자라야 미래 시대에 적응할 수 있고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배움이 즐거워야 한다는 것.
교육이 이를 지향해야 한다면 정답만을 고르는 5지 선다형 수능은 이제 박물관으로 가야 마땅하다. 이제 제 할 일을 다해서 수명이 다한 수능이라는 손님은 우리의 입시 박물관에 미이라로 보관해 두어야 한다.
사실 그렇게 가고 있었다. 학생부 중심의 수시 전형이 점차 확대되고 수능 중심의 정시 전형은 축소되고 있었다. 수능의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수명이 다한 초췌한 몰골의 수능이라는 손님이 다시 살아날 기세다.
최근 숙명여고 사태는 교육의 본질에 좀 더 가까이 가려는 학교내신에서 그 공정성에 현저한 상처를 입혔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작성하는 학생부에 대한 신뢰성과 공정성에 대해서 잠재해 있던 불신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아울러 대학의 학생부 중심의 수시 전형에 대한 불만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수 천 가지 전형 방법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그 전형들이 과연 공정한지, 그들만의 리그로 짜고 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가진 자는 가진 자대로 못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대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지방에 있는 서민들의 부모와 수험생들은 ‘어차피 개천에 용 나는 시대가 아닌 상황에서 우리가 뭐 할 수 있겠어’하는 자괴감마저 주고 있다.

시험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상황에서는 그 시험의 역할은 공정하게 수험생을 차별화시켰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경쟁의 결과에 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시험 문제의 타당성,적절성,신뢰성이라는 평가의 일반적 원칙들은 모두 뒷전일 수밖에 없다. 공정성만이 절대가치다.
이런 공정성과 입시의 단순함을 위해서 수능 하나로 대학 입시를 확정하는 정시의 확대가 힘을 얻고 있다.

여기서 우리 교육은 길을 잃는다.
입시의 공정성이냐? 교육의 본질이냐? 그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문재인 정부의 김상곤 교육부는 바로 이 혼란의 지점에서 길을 잃고 좌초했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것 같다. 네델란드인지 덴마크인지 하는 나라에는 의과대학 입시를 추첨으로 한다고 한다. 물론 성적이 좋은 학생이 낮은 학생보다 당첨될 확률은 좀 높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 나라 국민은 그 제도의 타당성이나 공정성에 대해서 크게 비판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곳은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라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공장 노동자에 비해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사회다. 그러니 그 힘든 의과대학 공부를 위해 입시에 목을 매지 않는 것이다.

수능이라는 매우 까칠한 이 손님을 해마다 맞이해야 하는 우리 현실!
교육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기대했던 촛불 정부도 크게 기대하기 힘들겠다는 현실이 그저 슬프다.

그래도 수험생과 수험생 부모님들 고생하셨습니다. 이 까칠한 손님 맞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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