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8시 19분 사망



뮤지션 신해철 씨가 10월 27일 사망했다. 신해철 소속사 KCA엔터테이먼트는 보도자료를 통해 “신해철씨가 27일 20시 19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밝혔다. 소속사 측에 따르면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28일 오전 10시부터 마련될 예정이며, 아직 발인, 장지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신씨는 지난 10월 17일 갑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하며 분당 A병원에 진료차 내방했다가 대기시간이 길어지며 가락동 S병원으로 이동해 각종 검사를 받고 장 협착에 관한 수술을 진행했다.

19일 오후에 퇴원했으나 20일 새벽 수술부위 통증과 미열이 발생하면서 S병원을 방문해 진료를 받았다. 그러나 22일 새벽 복부와 흉부 통증으로 S병원에 다시 입원했으며, 이날 오후 심정지가 발생하는 바람에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서울아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아산병원에서 복강내 장수술 및 심막수술을 시행했으나 별다른 차도가 없다가 끝내 숨졌다. 
 
1968년생인 신해철 씨는 1988년 친구들과 밴드 '무한궤도'를 결성해 대학가요제 대상을 거머쥐며 데뷔했고, '넥스트' ,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 등의 밴드를 움직이며 1990년대 대중문화를 주름 잡았다.

그는 록에 기반을 둔 밴드 음악인이면서도 당대의 고전적 정통적 기류에서 다소 벗어나, 클래식과 결합된 프로그레시브 록(아트 록), 국악과의 크로스오버, 테크노를 포함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구사했다.

팝적인 발라드와 댄스 음악을 선보였던 초창기 솔로 시절에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미디 음악과 랩을 도입해 화제를 모았고, 그의 음악 인생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록밴드 '넥스트'는 신디사이저의 활용과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활용해 장중하고 화려한 곡을 분만했다.

그의 실험은 트로트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르에서 펼쳐졌다. 2007년에는 40세를 기념해 재즈 음반을 냈으며, 올해에 나온 생애 마지막 음반<REBOOT MYSELF Part. 1>에서는 아카펠라까지 시도했다. 또 그는 사랑타령 일색의에서 벗어나 전쟁 반대, 돈 숭배 풍자, 동성동본 불혼제 비판 등 사회적 메시지를 가사로 담아냈다.   

신씨는 1970년대, 80년대 한국 청년문화의 중추인 외국의 팝과 록의 세례를 받아 이를 1990년대에 한국에 안착시킨 장본인이었고 한때는 영국 등 해외 진출을 시도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활동한 정석원, 장호일, 윤상, 정기송, 이동규, 임창수, 김영석, 김세황, 이수용 등도 1990년대 이래 한국 대중음악 곳곳을 수놓은 별들이 되었다.

유명 히트곡으로는 <그대에게>,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이상 무한궤도),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째즈 카페>(이상 1990~1991년 솔로 시절), <도시인>, <날아라 병아리>, <Money>, <해에게서 소년에게>, <사탄의 인형>(이상 넥스트) 등이 있다. 열성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는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가 꼽힌다.

그는 음악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백분토론'에도 출연해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논객이기도 했으며,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는가 하면, 이라크파병 반대 행동에서 음악인 중 맨앞에 나서는 등 정치적인 활동으로도 주목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윤원희(37) 씨와 각각 아홉 살, 일곱 살 난 딸과 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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