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는 정치1번지 (16) 김대중-이종찬-장경우-이기택-이인제

 <중앙일보>의 김종필 증언록 못지 않게 <동아일보>의 이종찬 회고록도 흥미롭다. 조중동 신문과는 되도록 담을 쌓고 생활하는 필자에게도 말이다.

이종찬은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에서 국회의원을 시작했고 나중에는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국정원장을 역임한, 이쪽저쪽을 넘나든 역사의 산 증인이다.
유례로는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나 남재희 전 노동부장관을 꼽을 수 있겠다.

이종찬은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이고, 현 국회의원 이종걸의 사촌형이다. 이종찬이나 이종걸이나 정치하는 데 조부 덕을 많이 봤다고 한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는 이회영의 외손자로, 이종찬의 고종사촌이다.

  

오른쪽 사진에서 김구 앞에 선 남자 어린이가 유년 시절 이종찬


이종찬은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뒤로는 김대중의 제의를 받아 야당 정치인 노릇을 한다. 이 과정에서 얽히고설킨 운명의 띠가 만들어진다. 이 내용의 일부는 4월 4일에 게재된 이종찬 회고록에도 등장한다.

이종찬이 여당을 나와 결성한 새한국당에서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은 장경우였다. 새한국당은 민주당으로 합류하고, 장경우가 이종찬에게 1995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뜻을 밝히자 이종찬은 처음엔 그를 민주당 후보로 민다.

그런데 정계 2선에 물러나 있던 김대중의 입장은 ‘서울시장 후보 조순-경기지사 후보 이종찬’이었다. 이종찬의 경쟁력이 가장 컸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 총재였던 이기택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장경우 공천을 고집한다. 그리고 장경우는 낙선. 

이기택이 김대중 견제한 결과, 김대중이 대통령?

이에 대해 이종찬은 그때 자신이 출마해 당선되었더라면 이것이 이기택의 승리가 되어 김대중이 도리어 정계로 돌아오기 어려웠으리라 주장한다. 역사에서 가정은 소용없다만, 이기택의 똥고집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때 장경우를 꺾고 경기도지사로 당선된 이는 이인제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는 1997년 일약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했다. 그렇게 나온 이인제가 이회창 후보의 표를 쪼갠 덕택에 김대중이 당선되지 않았나. 살다보면 말 안 통하는 사람, 내 말 무시하고 망쳐대는 사람 때문에 속 썩을 일이 많다. 그렇지만 때로는 복으로 돌아오기도 하는 것이다. ‘영원히 고통받는 라인’이란 없다.

참, 이인제 씨는 15년동안 한 번도 안 쉬고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이것도 은근히 ‘영고라인’일 텐데 지치지 않고 참 계속 하시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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