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공공심야약국 시범사업 시행 3개월 만에 약국 지원 예산 삭감
“의료는 복지, 국민 건강이 가장 우선” 안정적인 운영 요구 이어져



“심야약국을 가장 많이 찾는 사람들요? 20대요!”

공공심야약국을 운영하는 A씨가 말했다. 지난 7월 1일 심야약국이 처음 문을 열던 날 인터뷰에서 A씨는 응급 상황의 노인층이 심야약국을 가장 많이 찾을 거라 예상했었다.

10월에 다시 만난 A씨는 한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심야약국을 찾는 손님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심야약국이 많이 알려져서 멀리 칠곡에서도 와요.”

인구 10만 명 이상 시군에 설치한 ‘도심형 심야약국’이지만, A씨가 운영하는 약국은 도시 근교, 공단과 농촌이 인접한 면 소재지에 있다. 인구 구성을 따지면 젊은 층의 비율이 낮다. 심야약국 고객 가운데 20대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정보를 검색하는 능력 때문인 것 같아요. 심야에 문을 여는 곳이 어디인가를 검색할 수 있고, 네비를 찍어서 찾아올 수 있는 분들이 와요. 정보 접근이 어렵거나 이동이 어려운 분들은 응급실을 많이 찾죠. 삼십 대 중후반만 해도 응급 처치에 대한 대비가 가능한 경우가 많고, 노인들은 살아온 노하우가 있어서 아플 때 오히려 대처가 뛰어난 면도 있어요. 하지만 학생이나 20대 젊은 층은 원래 잘 안 아프니까, 건강하고 평소에 약이 필요 없는 사람이 심야에 갑자기 아프면 심야약국을 찾지요.”

 

공공심야약국 입구에 있는 안내 표지판. 사진 김연주
공공심야약국 입구에 있는 안내 표지판. 사진 김연주

 

A씨는 아픈 친구를 대신해 심야약국을 찾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심야에 혼자 거주하는 이가 아프면 약국을 제때 찾지 못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그는 20대가 응급 상황에 취약한 이유에 대해 “사회가 보호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 사회가, 중장년층이 20대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손님분들이 많이 사는 약이 치통이나 편두통, 급성 통증에 처방하는 약이에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정규직이 아닌 사람도 많아요. 우리 세대는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할 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심야약국을 찾는 이는 늘고 있지만, 정부 주도 공공심야약국 예산 지원은 시범사업 시행 3개월 만에 삭감됐다.

기획재정부는 10월부터 공공심야약국 지원 금액을 인구 10만 이상 도심형은 3.7%(11만 원), 10만 이하 비도심형은 44.2%(263만 원) 삭감했다. 이전 지원 금액은 도심형 월 344만 원, 비도심형은 월 594만 원이었다. 정부는 도심형·비도심형 구분을 없애고 지원금을 월 331만 원으로 조정했다.

비도심형 약국 지원 금액이 대폭 줄면서 타시도에서 일부 약국은 심야약국 운영을 포기했다. 보건복지부는 3개월 시범사업에 참여할 약국을 추가 모집했다.

지난 7월부터 비도심형 심야약국을 운영해온 약사 B씨는 지원금 삭감으로 약국 운영 부담이 더 커졌다며 내년에 심야약국 운영이 가능할지 자신할 수 없다고 했다.

“약국에서 새벽 1시까지 근무를 하면 낮에 근무하실 분을 구해야 하거든요. 저도 잠을 자야 하고 제 가정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인건비도 안 나오죠. 체력을 보충할 수 있는 오전에 4~5시간 파트 약사를 구해야 하지만 이곳은 도심이 아니어서 구인구직 시 사람을 찾기가 좀 어려워요. 그런 비용을 감안해서 비도심형은 추가로 지원을 한 거죠. 그런데 그게 조금 힘든 상황이 됐어요.”

 

“국민 건강이 가장 우선”

공공심야약국, “홍보 강화, 지자체가 주도해야”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이후 의료취약 시간대 의약품 구입 편의를 위해 지역 약사회 주도로 당번 약국 운영이 시작됐다. 

2012년 11월에는 약국이 아닌 곳에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가 가능하도록 약사법을 개정하면서 안전상비의약품 약국 외 판매 제도를 도입했다. 판매 대상 약품은 해열진통제, 소화제, 감기약, 파스 등 13개 품목이다.

공공심야약국은 2012년 7월 제주에서 처음 도입됐다. 제주지역 6곳에서 시작한 공공심야약국은 제주, 서울, 경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지난해 기준 전국 94개소로 늘었다.

2021년 정부는 당번제 약국의 불규칙한 운영과 안전상비의약품 구입의 오남용 및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공공시범약국 시범운영을 발표했다. 현재 경북지역은 포항, 김천, 칠곡, 영천, 상주, 경산 등 5개 지역 7곳에서 운영 중이다.

정부가 시범사업 3개월 만에 공공심야약국 지원금을 삭감하면서 내년 사업의 지속 여부마저 불확실하다. 그러나 공공심야약국의 필요성은 앞서 경북도가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지난해 경북 도민 1천 명을 대상으로 한 공공심야약국 도입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4.9%는 ‘필요하다’고 답했다. 도청 및 시군청 주도 공공심야약국 설치에 찬성한다는 답변은 이보다 높은 86.1%였다.

공공심야약국을 이용한 적 있는 이은정 씨는 “매일 퇴근이 늦어 필요한 약을 제때 구하기 어려웠다. 집 근처에 심야약국이 문을 열어 밤늦은 시각에도 약을 살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 더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심야약국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 공공심야약국 시범사업이 올해 7월부터 12월 말까지 시행된다. 사진 김연주
정부 주도 공공심야약국 시범사업이 올해 7월부터 12월 말까지 시행된다. 사진 김연주

 

약사 B씨는 심야약국 운영에서 약 조제 및 판매뿐만 아니라 응급 상황이나 복약 관련 상담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고 설명했다.

“아픈 사람이 오시니까 궁금증이 많아요. 해열제를 먹어도 열이 안 떨어질 때 어떻게 하면 열을 떨어뜨릴 수 있을까, 응급실에 가야 하는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을 좀 해달라거나, 약을 먹고 부작용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 그런 상담도 있고요. 급한 사람들이 많이 전화해요. 전화 오거나 방문하시고요.”

지난해 공공심야약국 46개소가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심야약국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95%로 매우 높았다. 운영 만족도는 63%로 필요하다는 응답보다 저조했다. 폐업을 고려한다는 응답도 60.9%에 달했다. 폐업을 고민하는 이유는 가족, 친지 등 사생활의 어려움(67.9%), 인력 채용 어려움(46.4%), 건강상의 어려움(46.4%) 등이었다.

약사들은 안정적으로 심야약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지원 확대와 사업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공심야약국 지원이 가장 필요한 부분으로 응답자의 69.9%가 홍보를 꼽았다.

심야약국을 시작하게 된 계기로 약사들은 보건의료인으로서의 의무감과 약사회 및 지역사회의 요구를 들었지만, 연속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원 방안이 있어야 가능하고 주장한다. 약사 A씨는 “개인이 심야약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지속성을 담보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라며 “지원이 가능한 정부와 지자체, 약사회 같은 기관이 나서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B씨는 공공심야약국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적절한 지원을 통해서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도심형은 의료취약 계층도 많고, 인구 밀도가 낮다 보니까 의약품을 접할 수 있는 의원이라든지 약국이 적잖아요. 약사가 근무하는 여건도 안 좋아요. 그런 데일 수록 지원이나 홍보가 더 필요합니다. 예산을 깎은 건 그런 점에서는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의료도 공공 복지 분야인데, 적절한 지원을 하면서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환자들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서 큰 병이 되면 건강보험료를 더 깎아 먹는 결과를 초래해요. 약사라는 전문적 인력 풀을 통해서 보건의료 사회에 기여한다면 장기적으로 그게 의료비를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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