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덕수 국무총리는 학교폭력 대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학생인권만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학교폭력을 막고 제어해야 하는 교원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면서 학교폭력의 원인을 학생인권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 주장은 틀렸다.

 

첫째, 정순신 사태와 ‘더 글로리’는 ‘특권’이 문제다.

정순신 사태는 돈 있고 권력 있는 특권 계층이 법을 이용해 본인 자식만 보호하려 했던 사안이다. 법과 제도의 틈새를 악용한 당사자를 징계하고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건데, 틈새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생기부 기록을 오래 남기고, 사안 조사도 하기 전에 신고당한 사람을 수업에 못 들어오게 하는 즉시 분리 기간을 현행 3일에서 7일까지 늘리는 식으로 전체 학생들에게 ‘처벌 강화’ 불똥이 튀었다.

‘더 글로리’ 사안의 핵심은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차별해도 된다’는 인식과 문화다. 학교, 교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러한 ‘위계에 의한 차별’이 용인되는 것이 문제다. 요즘 학폭 사안들도 부모의 직업, 경제력, 학교 내 영향력, 한 부모, 다문화, 장애 등에 따라 가해, 피해가 정해진 공식처럼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차별이 당연한 학교와 사회는 ‘어떤 이유로도 다른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인권 교육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학교에 학생인권이 전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학교폭력을 조장하는 ‘사회’가 문제다.

학교 자체 해결 요소를 충족하는데도 피해 측의 요청으로 심의위까지 올라오는 사안들은 대부분 가해 측에서 “장난이었다, 놀다가 그런 거다, 모르고 그랬다”고 한다. 대부분 이 말은 심의위에 동석한 보호자나 변호인의 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고 참석 전에 미리 학생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조언한 티가 나기도 한다.

초등 때부터 언어폭력을 포함해 무엇이 폭력인지,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등 인권에 대한 교육과 감수성을 길러줘야 하는데 교육 당국이 기초 학력, 경쟁 교육에만 집중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인권은 ‘오징어 게임’ 같은 미디어와 SNS로 배우는 게 현실이다.

학생의 놀 권리와 휴식권을 보장해 초등 교육과정에 놀이를 필수로 두었다면 딱지치기 벌칙은 뺨 때리기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벌칙은 구타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거다. 또한, 장난은 나만 재미있는 게 아니라 상대방도 재미있어야 장난이라는 걸 배웠을 거다.

 

셋째, 학생이 아니라 ‘행동’이 문제다.

정부가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고 내놓은 대책은 문제를 일으킨 ‘학생’을 제거하고 더 강한 벌을 주어 두려움과 공포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는 학생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 자기 행동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주기보다, 훈육하고 통제하고 징계해야 할 대상으로만 본 결과다.

이렇게 모두가 가해자 벌 주기에만 집중하느라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돕지 못한다. 결국 피해자는 상대방에게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잊히고 지워진다.

지난 학폭의 역사 속에 ‘어른들’은 없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동안 학폭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 되어 피해자는 혼자 감당하거나 트라우마로 남거나 둘 중 하나였다.

중학교 교사인 2011년 대구 학폭 피해자의 어머니가 현재 학생들에게 남긴 당부다.

 

“학교를 그만둬도 괜찮아요. 학교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삶이에요.”



 


※ <학부모신문>과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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