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안타까운 선택을 하신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에 대한 애도를 표합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정신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음에도 위로받지 못하고 있는 서울 서이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현재 여론은 ‘교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쯤에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싶습니다. ‘교권’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학생인권’과 교권은 정말 대립하는 것입니까?

교권은 교사와 권리의 합성어입니다. 교사들이 가지는 권리에 대해 우리는 교권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이건 국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얘기는 달라집니다. 대통령 또한 인간입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을 겁니다. 또한, 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행사할 수 있는 여러 권리가 있겠죠. 하지만 그것을 통칭해서 우리가 대권이라고 부르면서 대권을 강화하기 위해 전 국민적 여론이 형성되던가요? 마찬가지로 한 기업의 사장 또한 인간입니다. 그러니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을 것이고 그 기업의 수장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칭해서 우리가 사권이라고 부르면서 사권을 강화하기 위해 전 국민적 여론이 형성되던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일반적으로 그들은, 그들이 속한 집단 내에서 갑의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 또한 학교라는 집단에서, 사제관계 내에서 갑에 있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이 있고, 학생에게 징계를 내릴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습니다. 교사는 분명히 교내에서, 그리고 사제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권은 사회적 관점에서 어색한 용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교권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교권을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의 권리도, 사장의 권리도, 교사의 권리도 모두 지켜져야 합니다. 하지만 교권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권리로 받아들여서 그 범위를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제가 식당을 운영한다고 해보죠.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 자녀가 식당에 오면, 코스 요리를 제공해달라 하고 그 코스요리 비용을 미리 결제했다고 합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자녀가 식당에 왔습니다. 저는 그 고객에게 코스 요리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그 고객은 저의 코스 요리 중 일부 요리에 대해 먹지 않겠다고 거부를 하는 겁니다. 저는 이 음식들이 되게 맛있다고, 꼭 먹었으면 좋겠다고 권유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제하지는 못합니다. “내가 열심히 만든 요리니까 넌 꼭 먹어야 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객의 입에 강제로 집어넣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저의 권리도 아니고 권한도 아닙니다. 저는 이 고객의 부모로부터 돈을 받았기 때문에 열심히 요리를 만들 겁니다. 그것은 제 의무입니다. 하지만 그 고객이 거부한다면 기분은 나쁘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거죠.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 수업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학생은 수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과목의 내용이 자신의 사상과 맞지 않기에 거부할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교사의 수업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꿈이 수업과 관계없는 분야여서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냥 피곤해서 잠을 자기 위해 수업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교사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거부하는 학생에 대해 그 학생의 의사와 관계없이 강제로 수업 내용을 머릿속에 주입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것은 교권이 아닙니다.

 

 

며칠 전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간담회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이 붕괴되고 있다. 일례로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여 교사의 정당한 칭찬과 격려가 다른 학생의 차별로 인식되어 다양한 수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개인의 사생활 자유를 지나치게 주장하니 적극적 생활지도가 어려워지고 교사 폭행, 명예 훼손까지 이어진다. (중략)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고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법에서의 아동학대 위반 행위 판단 시 학교에서의 교육 활동이 보호될 수 있도록 국회의 입법 과정을 지원하겠다.”

여기서 잠시 제가 초중고를 다니는 동안 직접 당하기도 하고 목격하기도 한 인권 침해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와 6학년 때는 저는 담임 교사로부터 체벌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6년 동안 저와 제 친구들은 원치 않았지만, 일기장 검사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때는 교내 두발 규제를 폐지하기 위해 학생 서명 운동을 하다가 학생들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학교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생활기록부로 협박하는 교사도 봤고, 학생이 수업 중 잔다는 이유로 그 학생의 책상을 발로 걷어차는 교사도 봤습니다. 쉬는 시간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고함치는 교사도 있었고 글자 조금 삐뚤게 썼다고 신경질 내는 교사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방학할 때 있는 보충 수업에 빠지려면 방학 때 내가 뭘 하면서 지낼 건지 제 사생활에 관한 내용을 적으라고 요구하는 교사도 있었습니다. 저는 결국 권위주의와 집단주의에 질려 학교를 떠났습니다.

저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께 묻고 싶습니다.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 현장이 붕괴되고 있다”,” 학생 개인의 사생활 자유를 지나치게 주장했기에 교사에 대한 폭행과 명예 훼손이 이뤄진다.” 장관님은 학생 인권 증진과 교권 추락 간의 논리적 인과 관계 존재한다고 믿으십니까? 애초에 대한민국 학교는 학생들의 인권을 제대로 신경 쓰긴 했습니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못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 아닌가요?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차별을 받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여 교사의 정당한 칭찬과 격려가 다른 학생의 차별로 인식되어 다양한 수업이 어려워지고 있다.” 장관님이 주장하신 내용입니다. 하지만 정당한 칭찬과 격려를 한 교사가 징계 받거나 처벌을 받은 것을 장관님은 본 적이 있습니까?

학생인권조례와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법은 그동안 유교 문화로 인해 보호받지 못했던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해 주는 법입니다. 심지어 아직도 저희 경북 지역을 포함한 과반수가 넘는 지역에서는 학생인권조례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그 법의 본질을 해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언론들에 요청하고 싶습니다. 자꾸 이 사건을 학생 인권 때문에 벌어진 사건인 거처럼 다루지 말아주십시오. 서구사회와 비교했을 때 아직도 한국 학생들의 인권은 낮습니다. 더불어 학생 인권과 교권은 대립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자꾸 대립하는 권리인 것처럼 다루지 말아주십시오. 장애인 인권을 보장한다고 해서 비장애인 인권이 침해됩니까?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둘 다 인권이 있고 존중되어야 하죠.

저는 내년이면 성인입니다. 아동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니게 됩니다. 그런데도 굳이 시간을 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합니다. 아동과 청소년들이 나중에 자라서 결국 우리가 살게 될 이 사회를 만듭니다. 여러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권위주의와 집단주의가 팽배한 폭력적인 환경에서 자란 어른들이 만드는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자유와 평등을 누리며 부당한 일에는 항의할 줄도 아는 어른들이 만드는 사회에서 살고 싶습니까? 그 사회를 살아가는 것은 우리입니다. 결국,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권리 보호는 우리 모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글 _ 박차오름, 경산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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