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세계에 소속돼 있어요. 필요한 만큼, 그리고 분리돼 있어요.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p85

 

나이 듦은 아프고, 돈 없고 외로울 미래다. 노년의 솔로는 ‘고독사’로 연결되고 언론은 재난처럼 보도한다.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의 나이 듦을 고독과 빈곤으로 일반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를 선택하는 솔로, 1인 가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21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33.4%를 차지했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3인 가구(29.3%)보다 많다. 2022년 서울시의 1인 가구 실태조사에서 1인 가구의 86.2%가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1인 가구의 ‘솔로’가 잘 살아간다는 것은 건강하고 안전한 새로운 복지사회의 등장이다.

 

책 〈에이징 솔로〉, 김희경, 동아시아, 2023. 3. 22
책 〈에이징 솔로〉, 김희경, 동아시아, 2023. 3. 22

 

독립된 존재로 사는 것은 찬성이나 고독사, 재택사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이 책은 나이 듦과 돌봄의 체계가 부재한 현실에서 모든 것이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1인 가구가 많아졌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출생, 졸업, 취업,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회 각본에 맞춰 사는 삶이 아닌, 다양한 삶을 이야기한다. 1장은 4050 비혼 여성들의 ‘혼삶’ 이야기, 2장은 느슨하지만 안전한 가족 바깥의 관계 이야기, 3장은 에이징 솔로들이 맞이하는 현실을, 4장은 솔로를 환대하는 사회로 나눠진다. 저자는 에이징 솔로들의 개별적 삶보다 관계를 주목한다.

책 <고잉 솔로>를 쓴 미국의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인류가 집단생활을 해온 지는 20만 년에 달하는 데 반해, 수많은 사람이 혼자 살기에 도전한 기간은 아직 50년에서 60년밖에 되지 않는다”라면서 혼자 사는 사람이 급증한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짚었다.

 

“혼자 살다가 아픈 상황에 대한 공포는 드라마처럼 부풀려진 고독, 추상적인 고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 p10

 

은퇴 이후 경제적 값을 가져오지 못할 때 솔로이든 아니든 나이 먹은 자의 불안은 같을 것이다. 솔로였다면 노후에 대한 계획은 더 촘촘해지고 완벽해졌을 것이다. 경제적인 계획이 장기미래형으로 맞추어졌다면, 더 나은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진작 낡은 가족주의 프레임을 떠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작했을 수도 있겠다.

여성 주거 공동체 ‘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이 책에 소개되는데 비혼으로 늙는 것이 어떤 경험인가를 고민하며 운영된다고 한다. 함께 살되,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으며, 집단적이지 않은 공간의 존재 가능성을 기대해 본다.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해서 300년 정도 유지되어 온 근대가족 프레임이 정서적 애착을 둔 삶의 모델이 되어버렸어요. 서양의 근대가족 모델은 커플 중심인 반면, 한국에선 자녀가 있어야 세트가 완성돼요. 특히 여성은 자녀와의 밀착감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고요.” p135

슬퍼서 위로가 필요할 때, 행복한 일을 같이 나누고 싶을 때, 불안은 누그러뜨려야 할 때 등등 서로 다른 감정을 나눌 각각의 관계를 여러 개 가진 사람이 그 모든 감정을 아주 가까운 소수의 관계에서만 나누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특정한 감정을 다룰 특정한 관계를 그냥 관계 대신 감정 관계라 불렀는데, 그런 감정 관계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는 것이 삶의 질을 더 높여준다고 했다. p123

가족이 짐을 덜어 유연해지고, 흑백논리처럼 결혼 아니면 솔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아니면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든, 자신이 선택한 사람과 다양한 방식으로 맺은 친밀한 관계가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서로 돌볼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미래 가족의 모습이 되는 걸 보고 싶다. p314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안락한 집에서, 판타스틱한 삶을 살아내는 1인 가구는 모든 누군가의 희망이다. 취업과 동시에 나의 ‘1인 가구’는 잠시 로망이었다가 현실이 되었다. 결혼과 동시에 짧은 ’1인 가구‘는 개인의 역사가 되었다. 20년을 훌쩍 보내고 ‘자연인’과 ‘나 혼자 산다’의 애청자가 현실이 되었다. 집안일을 공평하게 분담하자고 하면 마누라는 ‘페미니스트’라며 못마땅해하는 가족과 여전히 살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솔로’들이 맞서 싸우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 혈연관계나 친밀한 관계로 나누지 말고 누구나 돌봄 받을 수 있는 사회의 확장, 결혼이 비혼보다 이상적이라는 편견에 대한 싸움 말이다.

 

“사람들이 독신생활을 경멸하는 것은 오로지 가난 때문이다.” -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 중,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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