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는 쓸모를 기준으로 어떤 존재나 경험을 생각하고 평가하는 사람이었다면, 글을 쓰는 사람이 된 이후로 어떤 사물과 현상과 존재에서 다른 의미를 발굴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p294

 

글을 쓴다는 일은 시작한다는 강력한 의미다. 나를 지키고, 나를 통제하고, 나를 의미한다.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살아온 경험이 글쓰기가 된다고 진심으로 믿고 싶었다. 잘 익은 글을 건져낸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인가.

부산에서 KTX를 타고 마감 원고 한 편을 서울 도착 전에 보낼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쓰고는 싶지만, 써지지 않는 현실과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뒤엉켰다. 나의 결핍이 타인의 존재를 결핍으로 투영했다. 가뜩이나 없는 공감 능력은 퇴화했다.

 

‘일단 막 쓰자, 대충 쓰자’라며 스스로 달래고 긴장을 풀어주면서 썼어요. 완벽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완벽해지려는 노력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봅니다. p50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지음, 김영사, 2023.01.09.〉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지음, 김영사, 2023.01.09.〉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2020년 12월 ~ 2021년 12월 네이버에 연재된 오디오 클립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의 대본을 수정하여 펴냈다. 글을 쓰면서 가장 궁금한 질문을 4장으로 나누고 문답 형식으로 전개한다. 1장 혼자 쓰다가 주저한다면, 2장 일단 써보고자 한다면, 3장 섬세하게 쓰고 싶다면, 4장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로 구성된다. 강연에서 주고받은 문답 형식의 48가지 글과 강좌에서 만난 학인들의 글도 예문으로 제시했다. 세세하고 자세한 대화 형식의 구어체 글이다. 삶이 질문과 질문의 연속이라 자신의 경험을 최고로 믿어보라고, 글을 쓰는 자신을 중심에 놓으라고, 내가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라고 한다. 글 쓰는 사람의 쓰는 노동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썼다.

은유 작가는 사보기자를 거쳐 인문지식공동체 수유너머 R에서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르포작가이며,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등을 펴냈다.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 내는 일을 돕고 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지?’ ‘어떻게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지?’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어서 단번에 답을 찾을 수 없을 경우가 많은데, 쉽게 설명되지 않는 것을 글로 쓰려고 붙들고 늘어질 때 표현이 섬세해지고 글쓰기 능력도 늡니다. p92

 

소설가 김영하 작가에게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냐고 물었다. “말을 한 것 중에 쓸 만한 말을 추리고, 추려서 담는다. 정리하면서 봤더니 쓸데없는 소리가 굉장히 많았다. 특히 10여 년 전에 했던 말들은 굉장히 치기 어리고 부끄러운 말도 많아서 다 빼고 쓸 만한 말이 남아 이렇게 된다”라고 했다.

쓰는 일은 어렵다. 빼는 일은 더 어렵다. 두서없이 여러 장을 썼다가 빼는 작업을 해 봤는데, 쓸모없는 글을 빼고 뺐더니 반쪽짜리 글이 되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덧셈의 시기에서 뺄셈의 시기로 돌아서라, 형용사와 부사를 능숙하게 부려라, 명료한 글이 돼라’고 한다. 현실은 ‘적의것들’ 허들을 간신히 넘고 있다.

 

‘뺄셈의 시기’로 전환됐죠. ‘무엇을 빼야 글이 더 명료해질까?’ ‘이 표현이 글에 꼭 필요한가’ 퇴고할 때 불필요한 단어와 표현을 넣진 않았는지 의심하면서 골라내요. p121

글을 쓰다 막히면 상기하거나 묵혀두거나 포기한다는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세요. 쓴 사람만이 덜 익은 글도, 만숙의 열매처럼 뚝 떨어지는 잘 익은 글도 거둘 수 있을 테니까요. p128

 

시민기자가 많은 인터넷 매체의 한 글에 댓글이 달렸다. “일기는 일기장에!”. 먼지처럼 만연했던 차별에 목소리를 내는 글이 사적인 글쓰기로 읽혔다. 힘을 얻으려다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저항도 견뎌야 글을 쓰는 힘이 는다고 생각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그 순간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서는 삶의 시작이라고, 그 언어를 찾는 작업이 나를 해방시킨다고 격려했다. 앎으로 불편했고, 상처받았던 순간을 위로했다.

 

상실을 다루거나 자신의 취약함을 내보이는 글을 쓸 때 내 안의 검열관이 더 엄격하게 활동해요. 자기 검열을 뛰어넘는 방법은 바로 자기 검열을 뛰어넘은 글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p206

그래서 안다는 것은 보는 세계가 넓어지는 일, 다른 세계에 마음이 열리는 일이고 동시에 불편해지는 일, 상처받는 일인 것 같습니다. p284

 

쓰기가 궁해지자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읽는 행위로 공공의 언저리에 머물렀다고 위로했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글을 보았지만 돌아서면 제목조차 기억이 안 났다. 피동적으로 살면서 안주하는 삶은 머무르는 거다. 알면서 머무르는 거.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자기 언어로 만들고 고르는 읽기를 권한다.

 

멋진 책을 읽으면 몸에 통째로 저장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책을 빨리 떠나보내지 않고 더 잘 사랑하는 방법이 저에겐 글쓰기입니다. p225

 

​언어가 타인과 일상을 연결하는 고리라면 나의 언어가 차별과 혐오를 뛰어넘는 긍정으로 가닿기를 바란다. 어눌하고 두서없는 쓰기가 어떤 공간에서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두렵지만 항로 없이 떠다니는 배가 되어 보기로 했다. 적어도 쓰는 나는 어디엔가 닻을 놓으려고 항해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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