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방

참 괴이한 일이다. 검찰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중간수사발표가 어떻게 새누리당이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을 상대로 책잡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어처구니가 없다.

검찰의 중간수사발표 결과에서 나타난 사실은 세 가지다.

1)
국가기록원이 이관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은 없다.

2)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보관하다가 2008년 국가기록원에서 회수한 소위 '봉하이지원'에서 두 가지 버전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나타났는데, 한 버전은 초안인 것으로 보이며 삭제된 것을 검찰이 복구했고, 다른 버전은 최종안인 것으로 보이며 저장된 기록을 그대로 찾아냈다. 즉, 삭제된 적이 없고 검찰도 파일을 복구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다.

3) '봉하 이지원'에서 발견된 초안과 최종안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국정원에서 6월에 무단 유출한 회의록의 내용은 어투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면서 검찰은 애초부터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기록원에 이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런데도 검찰 중간수사발표와 이를 전하는 언론의 초기 보도에서는 오로지 '봉하이지원'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안의 삭제 사실을 갖고, '삭제'라는 키워드를 부각시키며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대화 내용을 숨기기 위해 회의록 자체를 파기하려든 것인양 몰아가고 있다.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문서를 최종정리하면 초안 파일은 삭제하는 게 당연
검찰 스스로 "3가지 회의록은 내용에서 별 차이 없어"


일반인들도 문서를 작성하면서 처음 작성한 초안의 어투나 문구를 다듬어 최종본을 만든 후 초안 파일을 삭제하는 일은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최종본 문서를 만들어 활용하는 데 굳이 초안을 남겨두면서 메모리의 저장 용량을 축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와대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다듬으면서 최종본을 만들고, 초본을 삭제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라고 볼 수 없는 일 아닌가? 굳이 비유하자면 조선왕조시대 때 역대 국왕의 실록을 편찬하여 실록 최종본을 완성하면서 실록 편찬에 활용한 사초들을 모두 세초했던 것과 마찬가지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통치 행위와 관련된 기록물을 초본이든 수정본이든 할 것 없이 무조건 세초하지 말고 보관해야 한다는 법이 있다면 또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라면 왜 회의록 초안 삭제가 문제가 될 일인가?

 

 

 

 

 

 

 

 

 

 

 

                               파일을 이런 식으로 저장해두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본 삭제가 역사적 진실을 숨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혹 역시 말이 안 된다. 그런 의혹이 성립하려면 초본 파일에 검찰이 '봉하이지원'에서 발견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최종본이나 국정원에서 무단 유출한 회의록에는 들어 있지 않은 민감한 사실이 있어야만 할 터인데, 검찰의 중간수사발표에 따르면 삭제된 초본이든 '봉하이지원'에 보관된 최종본이든 국정원 유출본이든 별다른 내용상의 차이는 없다고 한다.

따라서 <뉴시스>에서 성급하게 예단한 것처럼 2008'봉하이지원'이 국가기록원에 회수되기 직전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삭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 역시 성립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이 의혹이 맞으려면 '봉하이지원'에 초안이든 최종본이든 아예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자체가 들어있지 않고 모두 삭제된 형태로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검찰 수사 결과 나타난 것은 정상적인 문서 작성 과정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초안 삭제 사실이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최종본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만일 노무현측이 삭제했다면 봉하이지원 회의록은 아예 없을 것
2008년 이후에는 국가기록원과 국정원 모두 회의록 보관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자체를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은 말도 안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은 최소한 '봉하이지원'과 국정원 양쪽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보관해왔고, 그나마 '봉하이지원'2008년 국가기록원에 다시 회수됐기 때문에 2008년 이후로는 국가기록원과 국정원 모두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보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검찰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새롭게 규명해야 할 사실들도 나타났다. 대략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아닌가 싶다.

1. '봉하이지원'에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최종본이 있는데,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또다른 '이지원'에서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최종본 파일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는가?

2. 2008년 국가기록원에서 회수한 '봉하이지원'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최종본 파일이 존재하고 있었는데도, 지난 7월 중순 국가기록원은 여야 합의에 의한 남북정상회담 열람 결정이 내려졌을 때 그 파일을 찾지 못한 것인가? 최종본 파일은 초안과 달리 삭제되지 않은 채 그대로 검찰에 발견됐으므로 국가기록원이 조금만 노력을 했다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을 것 아닌가?

3. 1번 질문과 관련해서 검찰은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에 이관된 '이지원' - '봉하이지원'이 아니라 - 에서 발견되지 않은 까닭을 애당초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냐고 추정했다. 과연 그것이 사실인가?

만약 사실이라면 대통령은 어떤 기록물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할 것인지에 대한 적법한 권한을 갖고 있으므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가 없고, 대통령을 보좌했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진한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기록물 지정 안 했다 해도 공공기록물로 존재
남은 쟁점은 국정원의 무단 유출 여부, 국가기록원의 착오 가능성
 

굳이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하지 않았다고 한 이유를 추정해 본다면, 국가정보원에 이미 회의록 사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했다가는 국회 의원 2/3 이상의 의결이나 고등법원 판사의 영장 없이 열람하는 일이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후대 정권이 남북관계에 참고하기 용이하게끔 하려고 '공공기록물' 성격으로 국정원이 보관하게끔 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국정원이 올 6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무단 유출한 것이 국가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인지의 여부도 논란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즉 노 전 대통령은 분명히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고 국가기록원에 이지원을 이관하게끔 했는데도 '봉하이지원'을 빼놓고는 국가기록원에 그 파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연유가 무엇인지도 규명해야만 할 것이다. 중요한 기록물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행정 착오에 대해서는 그에 대한 합당한 책임 추궁 - 특히 국가기록원에 - 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국가기록원이 이지원 원본 이관을 통해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확보하지는 못했더라도, 2008'봉하이지원' 회수를 통해 최종본을 분명히 확보한 것은 사실로 드러났으니만큼, '대통령기록물'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국회의원 2/3의 의결이나 고등법원 판사의 영장도 없이 국정원이 올 6월 무단 유출한 것은 분명 국가기록물 관리법 위반으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국가기록원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국정원에만 '공공기록물' 성격의 회의록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국회의원 2/3의 의결이나 고등법원 판사의 영장도 없이 무단 유출한 것은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당과 수구 언론, '초안 삭제'를 '진실 은폐'로,
회의록 무단유출을 '사초 실종'으로 둔갑시켜


그런데도 불구하고 면밀하게 따지고 보면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 민주당을 상대로 공박할 만한 건수도 되지 않고 오히려 국가정보원의 정치공작과 국가기록원의 국가기록 부실 관리 실태를 규명하고 사법처리를 해야 할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무단유출 사건에 대해 새누리당과 수구 언론들은 '초안 삭제'를 마치 '모든 버전의 회의록 삭제 & 진실 은폐'의 증거인 양 오로지 '삭제'라는 키워드만 부각시켜가며 되지도 않는 색깔론과 정치 공세를 펼치고 있다. 최소한의 상식과 합리성이 자리잡힌 나라라면 이런 일이 도대체 가당키나 할 법한 일인가?

이번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무단유출 사건에 대해서 책임을 지기는 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민주당에 대해 색깔론을 펼치고 '사초 실종'이라는 누명까지 씌우려 드는 진실 왜곡 행태는 엄중히 응징되어야만 할 것이다. 검은 것을 흰 것으로 바꾸고, 흰 것을 검은 것으로 바꾸면서 국민을 노골적으로 우롱하고 기만하는 행태는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성원 기자는 과학기술학(STS)을 전공하는 연구자이며, 현재 민주언론시민연합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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