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꽃뱀의 진화

피의자나 피고인들이 가장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사건 중에 하나가 바로 성범죄다. 특히 비교적 가벼운 성추행이나 성매매, 카메라 등 촬영 범죄 등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보통 평범한 가장이나 특별한 전과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과 성범죄를 파렴치범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에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알려 고민을 나누기도 꺼려한다. 이들에게는 처벌보다 가족들이 자신의 범행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을 더 두려운 일이다.

이러한 성범죄의 특성을 이용하는 (흔히 꽃뱀이라 불리는) 역범죄는 항상 있어왔다. 그런데 최근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남성들의 은밀하고 삐뚤어진 욕망을 파고드는 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흔히 알려진 몸캠 피싱(화상채팅을 통해 남성의 알몸 사진과 동영상을 확보하고 상대방의 주소록을 빼낼 수 있는 해킹 프로그램을 남성의 스마트폰에 설치하도록 유도한 다음, 사진을 주소록에 저장된 사람들에게 유포한다고 협박하는 피싱 수법) 외에도 스마트폰 채팅 어플을 이용한 신종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내가 상담하였던 사건의 피싱 방법은 이렇다. A男은 랜덤 채팅 어플을 통해 B女와 19금 대화를 나눈다(즉석만남을 약속하는 경우가 많다).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 달라는 B의 요구에 A는 자연스럽게 아이디를 알려주고(랜덤 채팅 어플과 달리 카카오톡은 신상정보가 카카오에 제공되기 때문에 신원조회가 가능하다), 둘은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랜덤 채팅에서 이미 몸이 달은 A는 적극적으로 B에게 19금 톡을 날리고, B는 조용히 대화 내용을 캡쳐한다.

며칠 후 A는 B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한통 받는다. 카카오톡으로 성희롱을 당했으니 A를 사이버경찰청에 고소를 하겠다면서 실제로 사이버경찰청에 신고한 화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처벌 대상이 된다'라는 경찰청 답변을 챕쳐해서 보내기도 한다. 아래 사진들이 실제로 B가 A에게 보낸 것이다.

왼쪽부터 피해자 진술서, 신고 접수 내용, 경찰서 답변 내용

이 정도면 나름 훌륭하다. 스스로 훌륭한 시나리오를 짰다고 자부할 만하다. 그러나 완벽한 사기를 위한 이 장치에서 이들의 허점이 드러난다. 먼저, 경찰이 했다는 답변이 영 미덥지 않다. B의 신고 내용은 A가 카카오톡으로 '가슴 사진을 보여달라' '가슴은 크냐?' '자위는 자주 하냐'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남부경찰서의 답변은 '미성년자 강간미수죄에 해당하며 1년 이하의 징역 또한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며 취업제한 10년 및 신상정보 등록 20년, 신상공개 및 고지의 가능성이 있는 중벌에 처해진다'라는 것이다. A의 채팅 내용이 강간미수죄에 해당할 수도 없을뿐더러, 만에 하나 미성년자에 대한 간강 미수라 하더라도 이에 대한 법정형은 1년 이하의 징역 또한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아니라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아동·청소년에 대한 강간·강제추행 등)

① 폭행 또는 협박으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⑥ 제1항부터 제5항까지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또 하나, 진술서의 작성일은 2015년 12월 4일인데, 남부경찰서의 답변일은 2016년 1월 16일이다(B가 A에게 신고 사실을 알린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관공서의 민원 서비스는 생각보다 훌륭하다. 답변에 1달이나 소요된 것도 말이 안 된다. 이 정도면 직무유기다. 실제로 사이버안전국의 신고 처리기간은 14일이다. 경찰 답변 사진은 특별히 A를 위해 조작한 것이 분명하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신고하는 경우 처리기간은 14일이고, 경찰서를 방문하는 경우 즉시 처리된다

이들은 합의금이 목적이기 때문에 은근히 적극적으로 합의를 재촉한다. 합의금 액수는 100만 원 이하로 과하지 않다. 너무 많은 돈을 부르면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기거나 합의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정도로 매달리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적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면 포털사이트 지식인에 먼저 도움을 청한다. '카카오톡 성희롱' '카카오톡 강간미수' 등의 검색어로 지식인에 검색을 하면 이미 관련 질문과 답변들이 수 없이 많이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이 사건과 비슷한 내용의 질문을 의도적으로 올린 것으로 보이는 글들이 보인다는 점이다(물론 순수한 피해자로 보이는 글들도 있다). 성범죄에서 합의는 기본이고 정석이기 때문에 '카카오톡으로 성희롱을 했는데 상대방이 신고를 했어요'라는 요지의 질문에는 답변자가 변호사든 태양신이든 당연히 합의하라는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피씽 범죄자들이 이런 결과를 노리고 일부러 질문을 올리는 것이라면 그들의 치밀함에 진정 존경을 표하겠다.

피해자들은 지식인에 올라온 답변을 보면서 조금 꺼림칙하긴 합의라는 결정을 하게 된다. 합의금도 크지 않기 때문에 얼른 줘버리고 마음 평화를 얻고자 한다. 100만 원에 자신의 치부를 혼자만의 비밀로 묻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후에 자신이 중국발 낚싯대에 제대로 걸려든 고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억울함은 100만 원을 돌려받는다고 해도 풀 길이 없을 것이다(심지어 B는 남자일 공산이 크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변호사를 직접 찾아가서 상담하자. 상담료 5만 원으로 돈도 굳고 마음의 평화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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