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인간의 존엄이 지켜질 때까지 세상과 불화해야

가을이어서 그런지 요즘 센찌해진다. 감수성이 예민해서 나는 쓸데없는 곳에까지 관심을 쏟는 편이다. “사람은 오지랖이 넓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인간과 관계되는 모든 것은 나와 무관하지 않다.” - Marx


요즘, 아메리카 인디언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초등 교육자로서 내가 이 문제에까지 오지랖을 발동하는 이유는 사실 교육적인 입장에서였다. 마르크스의 말을 패러디하면, 인간과 관계되는 모든 것은 초등교사와 무관하지... 않다! 아이들 위인전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 콜럼버스 때문에 우리는 미국 개척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콜럼버스는 히틀러보다 몇 십배 더 나쁜 역사상 최악의 인간백정이다. 사람이 엄연히 살고 있었던 대륙을 ‘신대륙’이니 ‘발견’이니 하는 자체로 문명인의 관점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폭력적인가를 학생들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탐욕스런 백인들에겐 콜럼버스의 발견이 축복인지는 몰라도 - 하워드 진의 명저 [미국민중사]의 첫 장은 “1492년, 콜럼버스와 인간의 진보”라는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 발견당한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치가 떨리는 오욕의 역사의 시작을 의미한다. 아, 입장의 차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 이렇듯, 진리에 어두우면 인간은 죄를 짓게 된다. 특히 교사라는 사람은 그러하다. 그러니 우리가 늘 책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벗들에게, 이 가을에 읽었으면 하는 한 권의 책으로 디 브라운(Dee Brown)의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를 추천하고 싶다.

디 브라운의 명저 [내 영혼을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는 ‘아메리카 인디언 멸망사’라는 부제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통한의 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인디언의 저항 운동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AIM(아메리카 인디언 운동 American Indian Movement)가 있다.

 

AIM의 로고. 가운데 1890년은 "운디드 니 학살사건"을 말하고 영문으로 "운디드 니를 잊지 말자"라고 적혀 있다. 1973년은 AIM이 펼친 가장 유명한 저항운동인 "파인릿지 점령"을 뜻하는 듯하다.

1877년 미국정부는 1868년에 라코타(수) 족과 맺은 포트 라라미 협정을 파기하고 강제로 블랙힐 땅을 점령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1980년 AIM의 조직적인 저항에 힘 입어 수 부족은 법정에서 승리했다. 미연방 대법원은 블랙힐 땅값으로 1,550만 달러와 함께 103년간 5퍼센트의 이자로 1억5백만 달러를 수 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라코타 수 족은 배상금 지급을 거부하는 대신 자기네 영토를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을 것을 요구하였다. 수 족에게 블랙힐은 신성한 땅이다. 땅에 대한 인디언의 철학은 “인디언에게 땅은 어머니와도 같다. 어머니를 사고 팔 수 없듯이 땅은 매매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이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AMI의 또 다른 조직적인 저항으로 1972년의 협정위반(폭로)대열 Trail of Broken Treaties Caravan이 있다. 이 운동의 전략은 역사적으로 인디언에게 폭력과 기만을 자행하여 땅을 갈취한 미정부의 부도덕을 널리 알림으로써 미국 대중들에게 인디언 문제에 관심을 촉구하는 것인데, 그 전술 가운데 하나가 워싱턴 DC 점거 농성이었다. 이와 더불어 1969년 탈출이 어려운 특수 감옥으로도 유명한 샌 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츠 섬을 점령하여 세계인의 이목을 끈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올곧고 영용한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사에서도 반동의 공세는 있었다.
사회변혁 운동에서 가장 흔하고도 치명적인 타격이 어용 지도자를 내세우는 것이다. 악질 자본가들이 민주 노조를 파괴하는 전형적인 수법이 이것이다. 1972년 인디언 유폐구역 파인릿지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리차드 윌슨이라는 부도덕한 인물이 라코타를 대표하는 의장으로 뽑힌 것이다. 윌슨은 오글랄라 부족 수호병사(GOON, the Guardians of the Oglala Nation)라는 사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정적을 공격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AIM(아메리카 인디언 운동)과 라코타의 활동가들은 윌슨 탄핵을 위한 청문회가 실패로 돌아가자 마침내 파인릿지에 대한 무장 점거를 시도하는데 이것이 ‘운디드 니 사태’로 알려진 사건이다.

1973년 2월 27일, 200명의 라코타(수) 족 활동가들과 AIM 회원들이 사우스 다코타 주의 작은 마을 운디드 니를 점령했다. 그들은 미국 정부를 향해 옛날에 맺은 협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몇 시간 이내 경찰이 운디드 니를 포위했고 경찰 저지선을 설치했다. 이는 포위된 이들을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외부 동조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로부터 71일간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71일이라는 시간은 미국 역사상 시민이 일으킨 최장기간의 소요였다.

어용 지도자 윌슨을 축출하기 위해 인디언 전사들이 펼친 1973년 파인릿지 점령 사건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윌슨이 거느리는 폭력적인 사병조직(GOON)으로부터 잔인한 보복을 겪어야만 했다. 이 사건 후 3년 동안 64건의 살인사건이 미제로 남겨졌는데, 연방 경찰의 묵인 하에 윌슨의 사조직이 보복으로 자행한 것들이다.

GOON의 폭력행위를 저지시키기 위해서 AMI 활동가 레너드 펠티어가 파인릿지에 파견된 것은 이 시기(1975년)이었다. 같은 해에 두 명의 FBI 요원이 강도사건과 관련한 탐문 수사를 위해 파인릿지에 들어왔다. 거기서 두 요원은 자동차 안에서 총탄 세례를 받고 사망을 한다. 경찰 당국은 유일한 용의자로 레너드 펠티어를 꼽았다. 펠티어는 수많은 알리바이를 댔지만 허사였다.

미국에서 경찰 살해는 이유를 불문하고 일급살인죄로 간주되고 극형에 처해진다. 중요한 것은 법질서와 시민 대중의 정서에 부응하기 위해 살인자가 파악이 안 될 때는 억지로 만들어내서라도 처벌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무고한 시민이 일급살인범으로 몰려 사형 당하거나 종신형에 처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유명한 다큐 영화 [블루 레드 라인]은 이러한 내막을 잘 조명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레너드 펠티어도 이런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또한, 경찰 살해범은 감옥에 가면 엄청난 폭력을 감수해야 한다. 간수와 경찰은 모종의 동료의식이 있으니 그 세계에선 교도소 내에선 경찰을 살해하고 감옥에 온 죄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종의 미덕으로 통하는 것이다. 펠티어의 편지에서도 자신이 전문 암살자를 비롯 여러 폭력배들로부터 끔찍한 테러를 당한 경험이 언급되고 있다.

라코타 사람들은 펠티어를 크레이지 호스의 화신으로 생각한다. 피터 메티에센 이란 작가는 펠티어의 억울한 일생을 이야기로 쓴 책의 제목을 [In the Spirit of Crazy Horse]라 붙였다.

1944년생인 펠티어가 종신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들어간 것이 1975년이었으니 그의 나이 31세 때다. 현재 우리 나이로 일흔에 해당하는 펠티어가 자유의 몸이 되는 유일한 방도는 대통령 특사로 나오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클린턴 대통령이 펠티어의 사면을 생각하고 있었건만 FBI 직원들과 가족들이 백악관 앞에서 데모를 하고 하는 통에 철회했다고 한다. 클린턴의 뒤를 이은 조지 부시에겐 기대도 하지 않았을 터이고, 펠티어의 입장에선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어쩌면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의 존엄이 지켜질 때까지 세상과 불화해야 한다.”

내 페친의 카톡 글귀가 생각난다.
레너드 펠티어를 위해 세상과 불화하지는 않더라도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는 꼭 읽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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