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그대로를 간직한 미개척 벽화마을

벽화마을 열풍이 불기 시작하더니 도시마다 하나씩은 생기는 모양이다. 낡은 달동네가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싹 밀고 다 새로 짓는 새마을 운동적 사고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벽화마을이 생겨버린 탓에 조금은 식상한 것도 사실이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김천에도 벽화마을이 있다. 김천시 모암동 김천의료원 옆 동산에 위치한 자산벽화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어릴 적에 두어 번 그 언덕마을을 올라가 본 기억이 있다. 좁은 비탈길에 높은 계단이 구불구불 나 있는 달동네였다. 내가 다녔던 김천 중앙초등학교 뒤편의 남산동도 이름처럼 산을 깎아 만든 동네였지만, 모암동의 산동네는 훨씬 가파른 비탈이 있었고, 유난히 더 낡은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자산벽화마을은 상당히 넓다. 지도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꽤 높기도 하다. 김천의료원 부근에 차를 주차하고 데크 계단이나 골목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골목 탐방의 정석이겠지만, 꼭대기인 자산공원까지 차를 몰고 갈 수도 있다. 충혼탑과 자산 공원 앞의 주차공간이 꽤 넓고, 관광객도 많지 않아 주차가 어렵지는 않다. 

벽화마을 정상으로 이어지는 데크 계단
벽화마을 초입

자산벽화마을의 벽화는 갯수도 꽤 많고 종류는 다양한 편이다. 출산장려길 외에는 특정한 테마를 정해 놓지는 않았지만 작가의 개성과 스타일이 구역마다 확연히 드러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만화 같은 벽화도 있고, 추억 돋는 골목놀이를 하는 모습, 동화와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한 벽화도 눈에 띈다. 

지금은 어르신만 사는 조용한 동네지만 20년 전 벽화마을의 골목길은 저러했을 것이다
어린왕자?
숨박꼭질
눈싸움

그러나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벽화는 바로 꽃이었다. 꽃 벽화는 자칫 식상하고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자산벽화마을의 꽃들은 흰 담장을 배경으로 세련되고 심플하게 그려져 있다.

벽화마을 꼭대기에는 자산공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다. 그리고 자산공원으로 가는 길의 이름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유도 종목 금메달 리스트 최민호 선수의 이름을 딴 '최민호 길'이다. 최민호 선수는 벽화마을 바로 아래에 있는 모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자산벽화마을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통영의 동피랑이나 청주 수암골 같이 아기자기 한 맛은 조금 덜하지만 골목을 따라 올라가고 언덕을 넘을 때마다 예측하지 못했던 동선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 김천이 인구 12만에 불과한 작은 도시이고 관광도시도 아니라서 그 흔한 카페 하나 없고 찾아오는 이도 적지만, 그래서 옛날 골목길의 모습을 더 잘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그동안 자산벽화마을 아래를 몇 번이나 지나다니면서도 정작 올라가 보지는 않았었다. 벽화마을로 유명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저 벽화 몇 개 그려놓고 관리도 제대로 안되어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했기 때문이다. 벽화마을을 올라갈 때까지도 사실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기대를 안 해서 더 좋은 인상으로 남았는지 모르겠다. 넓은 공간에 허전함 없이 벽화를 채워 넣은 김천시청 담당자의 고민과 노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던 점도 좋았다. 잠시 몸을 녹일 수 있는 카페가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혼자 조용히 옛 골목을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벽화마을이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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