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교의 교육이야기




교육부는 최근 민주시민교육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구체적인 계획으로 내년부터 전국에 51개 학교를 ‘민주시민학교’로 지정하여 시범학교로 운영하고 2022년부터 ‘시민’과목 도입을 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육부에 이를 담당할 민주시민교육과를 신설하였다. 일부 교육청에서도 민주시민교육과가 신설되고 신설될 예정이다. 

학생들이 건강한 민주시민으로 자라나야 하고 이를 위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하여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럽국가들의 민주시민교육 역사를 본다면 우리는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부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지만 그 실행방법을 보면 교육부가 학교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과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목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고민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지금 학교는 세상의 모든 교육을 다 모아놓고 있다. 환경문제가 심각하니 환경교육을 해야 하고 그래서 환경교과 신설하고, 학생들 진로문제 심각하니 진로교육해야 해서 진로교과 신설했다. 그 외에도 통일문제 중요하니 통일교육, 아이들 인성이 문제니까 인성교육, 지역문제도 있으니까 지역사회교육, 예절교육, 안전교육, 안보교육, 평화교육 등등 이런 교육 생겨날 때마다 학교는 처리해야 할 공문만 늘어난다. 교육청에서 민주시민교육과 만들어지면 담당자 생겨나고 담당자는 일을 해야 한다. 그들의 주요 일은 공문 생산이다. 그 공문은 학교로 내려오고 학교는 또 민주시민교육 담당자 두고서 공문으로 민주시민교육 할 것이다.

교과목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우리 학교는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것을 재미없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는 말이 있다. 현재와 같은 학교체제에서 그 교과목이 시험을 치르지 않는다면 그냥 자습하고 노는 시간 될 것이다. 현재의 진로교과와 비슷한 처지가 된다. 시험을 치러서 내신 성적에 반영된다면 결국은 또 하나의 외워야할 입시과목으로 전락할 것이다. 수업 방식과 평가 방식을 바꾸고 어쩌고 하지만 지금까지 다른 교과목은 그걸 강조하지 않았는가? 내신의 공정성이 그 무엇보다 지엄한 현실에서 어느 배짱 좋은 교사가 온전히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교육부는 정말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기르겠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학교 문화를 바꾸는 정책부터 써야 한다. 학교를 민주적 공동체로 만들 수 있도록 학교체제를 바꾸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을 교육의 주체, 학습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지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현실에서 무슨 민주시민교육이 가능할 것인가? 민주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전혀 민주적이지 않으며 민주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교사들 속에서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자라나길 기대한다? 이것은 이 엄동설한에 새잎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최근 국가교육회의에서 학생회나 학부모회를 법제화 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속에 교직원회의는 쏙 빠져있다. 교사는 여전히 지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핵심인 교사들의 자율성과 민주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내년부터 시범학교로 운영하는 51개의 ‘민주시민학교’를 진짜 민주시민학교로 만들고 싶다면 일단 그 학교의 교장부터 선출보직제로 당장 어렵다면 내부형공모제로 하고 교직원회의, 학생회의, 학부모회의를 법적기구로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청은 모니터링은 할 수 있지만 일체 간섭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학교구성원들이 공동의 교육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가 민주적교육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학교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현재의 권위주의적이고 획일적이며 지시와 통제 중심의 학교 문화를 민주적이고 협동적이며 수평적인 체제 속에서 공감과 유대를 중시하는 학교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이런 학교 문화를 바꾸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고 그리고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까지 져야한다 것을 경험할 것이다. 이것이 민주시민 교육의 핵심이고 과정이다.

이미 고전이 된 인디언 체로키족의 이야기를 담은 포리스터 카터의 자전적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이란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다섯 살짜리 ‘작은나무’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 시장에서 사온 송아지가 죽어서 슬퍼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손자가 그 송아지를 살 때 이미 병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서 상심에 빠진 ‘작은나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하는 대로 내버려둘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단다. 만약 내가 송아지를 못 사게 막았더라면 너는 언제까지나 그걸 아쉬워했겠지. 그렇지 않고 너더러 사라고 했으면 송아지가 죽은 걸 내 탓으로 돌렸을 테고, 직접 해보고 깨닫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교육부와 정부에게 묻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교사들에게 이런 자율적 행동을 존중할 생각이 있는가?

사족으로 덧붙인다면 선거권 연령부터 18세로 낮추어야 한다. 그 이하로라도 낮추어야 한다.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을 보는 시각부터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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