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에 나오지 않은 것, 영화와 다른 것, 정말로 그랬던 것 (3)

(1) '제보자'엔 안 나오는 김박사의 존재
(2) PD수첩, 구속으로 진실 밝히려 했다



MBC는 국정원에게 약점을 잡혔었나?


<제보자>에는 국가정보원 간부가 방송사 사장(장광 분)을 상대로 회사 경영의 약점을 암시하며 압력을 가하고 이 때문에 방송이 나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MBC가 경영상의 약점이 잡혔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당시 MBC 사장은 현 강원도지사인 최문순 씨였다. 최 사장과 MBC2005년 한 해 동안 공개방송에서 일어난 인명 사고, 삼성X파일 낙종, 가요프로그램에서의 성기 노출 사건 등으로 평지풍파를 겪고 있었다. 오죽하면 MBC의 새 로고에 들어간 빨간색이 흉조라는 말까지 떠돌았다. 그리고 MBC와 최 사장은 황우석사태로 그해 연말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정권과 국정원 차원에서의 압력이 있었던 것은 맞다. 전직 장관이 PD수첩의 최승호 팀장을 찾아와 그만두라고 종용하는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황 박사의 연구와 PD수첩의 언론 자유 양쪽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PD수첩이 난자 매매 뿐 아니라 논문 조작 문제까지 취재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공개해버린다.

정치권도 PD수첩의 취재를 깔아뭉갰다. 박근혜, 손학규, 이해찬, 정동영, 유시민 등 여야가 따로 없는 식언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전부터 한나라당은 H2O라는 모임을 만들어 황우석을 응원했고, 이런 분위기는 열린우리당도 매한가지였다. 노무현 정부 관료들도 '황금박쥐'(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라는 모임을 만든 바 있다.  

한편 황우석을 따르는 시민들은 광고주에게 압력을 넣어 PD수첩이 광고 하나 없이 방영되는 초유의 사건을 빚어내기도 했다.

최문순 사장은 이무렵 뚝심 있게 진실 보도를 강행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어쨌든 PD수첩을 방영시켜낸 장본인이었고, 미방영 기간에는 인터뷰 내용을 유심히 읽으며 방송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국정원이 방송사 사장과 이성호 팀장(당시 PD수첩 최승호 팀장을 상징), 윤민철 PD운동권전력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사실과 가깝다. 최문순 사장과 최승호 팀장은 MBC 노조위원장 출신의 진보적 언론인이었고, 한학수 피디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

그러나 진보적인 인사들만 황 박사 연구를 검증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한나라당의 박재완 의원도 난자 공급 문제에 문제의식을 갖고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사진 조작을 밝혀낸 이는 PD수첩 조연출이 아니었다

<제보자>에서는 조연출인 김이슬 PD가 윤민철과 콤비를 이루어 실체에 접근해 나간다. 김이슬로 분한 배우 송하윤도 이 영화를 통해 주목을 받을 전망이다.

김이슬의 실제 모델은 김보슬 피디. 훗날 김보슬 피디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다룬 <PD수첩> 보도의 주역으로 떠올랐고, 정부에 미운털이 박혀 결혼을 코앞에 두고 체포되는 비운의 인물이 되기도 했다. 

 

 

김이슬 피디의 실존 모델인 김보슬 피디

<제보자>에서는 김이슬 피디가 논문의 사진이 조작되었음을 간파하고 인터넷으로 이를 퍼뜨려 대반전을 이룬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실제 이 역할은 김보슬 피디의 것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했던 우군들이 대거 등장해 집단 지성을 보여주며 영화보다 더 극적으로 사건을 이끌었다.  

소장 과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브릭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최승호 팀장이 자진 구속을 말하며 술잔을 기울이던 무렵, 여기서 활동하던 ‘anonymous(어나니머스: 무명씨)'라는 네티즌이 최 팀장에게 메일을 보낸 데 이어 브릭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사이언스>에 실린 줄기세포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어나니머스는 감자 농사를 짓는 농부로 알려져 더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그는 브릭게시판에서 조작된 사진을 찾으면 감자 한 상자를 주겠다며 상품을 걸기도 했다. 결국 여러 과학자들이 사진 검증에 달려든 결과 줄기세포 사진 9쌍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황우석팀은 다른 각도에서 사진을 찍거나 배율을 조정하는 수법으로 다른 세포인 것처럼 착각을 유도한 것이다.


또 이 당시 김보슬 피디는 <프레시안>에 메일을 보내 방송으로 내보내지 못하고 있는 줄기세포 분석 결과를 보냈다. 황우석팀의 2번 줄기세포와 그 원주인 체세포의 DNA 지문을 분석한 것으로, 황박사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환자 맞춤형이 아니다라는 결과였다.

브릭 게시판에서도
아릉이라는 네티즌을 필두로 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줄기세포의 DNA와 원주인 체세포의 DNA는, 위치는 같더라도 피크의 모양과 높이 등은 실험 시료의 차이로 인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DNA가 피크의 모양과 높이 그리고 배경의 노이즈까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브릭>에 올라온 DNA 지문 의혹

이를 기사화했던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는 최근 모든 생명과학자가 (DNA 지문 분석이 조작이라는) 이런 결론에 동조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어나니머스 등이 밝혀낸 사진 조작에 이어 이 의혹 제기는 상황을 반전시키고 있었다. <뉴욕타임스>의 키콜라스 웨이드 기자도 <프레시안> 기사에 나온 DNA 지문 분석 그래픽을 보고 나서 의혹 제기를 보도했고, 서울대학교 생명과학 소장파 교수들도 DNA 지문 분석 결과를 의심했다.

한편 인터넷에서 돌풍을 일으킨 어나니머스의 정체를 두고 한학수 피디다”, “강양구 기자다등의 소문이 떠돌기도 했는데, 한학수 피디는 2006년 초 그를 직접 만나게 된다. 한 피디는 그가 70년대 학번, 40대 후반의 농사꾼이며 감사 농사를 짓고 자기 전에 과학 논문 두어 편을 읽는 전공자라고 소개했다.

방송은 단 한 편이 아니었다. 다섯 편에 걸친 검증 

<제보자>에서는 단 한 편의 방송으로 승부가 갈리지만 실제로는 한 편이 아니었다. 난자 매매 문제가 20051122일 먼저 방영되었다.

황우석 사태의 파장은 황 박사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극대화되었다. 대다수 국민들은 황 박사를 향해 연민을, MBC에게는 힐난을 보냈다. 하지만 논문 조작 혐의가 퍼져나가던 시점에서 그의 입원은 의심을 부추기는 역효과도 일으켰다.

죽도 못 먹고 있으며 체중이 급감했다는 보도와 달리 그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유심히 보면 살도 빠지지 않았고, 단지 수염을 기른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끊이지 않는 광풍 속에 PD수첩은 연이어 결방되었다. 그러나 네티즌 어나니머스가 또 한 번 PD수첩에 메일을 보내, 2005<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 사진이 미즈메디병원 모 연구원의 논문에도 실렸음을 발견했다고 알렸다. <사이언스>의 줄기세포가 미즈메디병원 연구소의 수정란 줄기세포일 수도 있다는 방증이다.

황우석 사태는 극적인 전개 탓에 당시에 이미 영화화 전망이 나왔고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가상 캐스팅까지 이뤄졌다.
사진에 나온 사태 실제 인물은 위에서부터 노성일 미즈메디 이사장, 황우석 박사,
'아이러브 황우석' 운영자 윤태일 씨, 황 박사의 동반자였다가 결별하는 섀튼 박사,
미국 피츠버그에 있던 김선종 연구원, 한학수 PD.

 


12152005<사이언스> 논문의 제2저자이자 미즈메디병원의 노성일 이사장 때문에 사태는 급진전되었다. 노 이사장은 그날 황 박사를 병원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황 박사는 줄기세포가 모두 미즈메디 수정란 줄기세포로 나왔다고 고백했다고 하며, 노 이사장은 충격을 받고 MBC 기자들을 만나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로 인해 16일 방영하려던 2편인 <특집,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가 하루 앞당겨진다. 방송은 저녁 930분이었고, 최종 완제품은 30분을 앞둔 시점에서 완성되었다. 그에 앞서 9<뉴스데스크>에서 엄기영 앵커의 오프닝은 이랬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이는 한학수 피디가 뒷날 낸 책의 제목이 되었다.


황우석 시리즈는 세 편 더 방영되어 복제소 영롱이 논란, 언론의 황우석 신화 만들기, 한국 생명공학의 위기와 가능성을 다루었다. 결방을 넘어 폐지까지 치닫던 ‘PD수첩은 그렇게 재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황우석 교수는 실험실에 대해 잘 모른다?

<제보자>의 이장환 교수는 학식이나 기술이 부족한 학자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닥터K의 주장은 사뭇 다르다. 이 부분은 황우석사태 와중에 가장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닥터K는 한 피디와의 인터뷰에서 황 박사는 이식할 때의 소 직장 검사처럼 농장에서 하는 일, 소나 돼지를 다루는 일에서는 경험도 풍부하고 센스도 있으며 손기술도 굉장히 좋다는 요지로 평가했다고 한다.

반면 황 박사가 실험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난자를 픽업하고 운반해서 줄기세포를 만들 때까지 손 한번 대본 적 없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했다.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는 작업을 찍은 동영상이 있는데, 여기서도 황 박사는 현미경을 눈으로만 보고 있고 그 손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증언까지 나왔다.


이를 들은 한 피디가 직접 황 박사 실험실을 찍은 동영상 원본을 살펴보니, 소의 직장검사나 인공수정 등을 찍을 때는 화려하고도 볼 만하게찍혀 있었었다고 한다. 반면 '사람 난자나 줄기세포에 관한 동영상에서는 좀처럼 직접 기술을 보여주는 모습을 찾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현미경을 조작하는 모습도 찍혀 있지 않았다'는 것이 한 피디의 회고다.

'제보자'로 분한 배우 유연석

제보자 닥터K의 운명은?

영화는 해피 엔딩이었지만 실제 제보자인 닥터K와 제보자B 부부는 고난을 감내해야 했다. 그들은 PD수첩의 취재 도중 순간순간 위협을 받았고 결국 직장도 그만둬야 했다. 제보 사실이 새어나가 황 박사의 귀에 들어가기도 했다. 

여느 영역처럼 인맥의 사슬로 엮인 과학계는 이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게 닥터K는 공익제보자의 신변과 생존권 보장에 관해 사회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래도록 실직 상태였던 닥터K는 현재 강원대 의대 조교수로 임용되어 재직중이다.    

마치며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우석 사태 주역들의 회고에 대부분 빚지고 있으며, 기사는 그 술회를 영화와 견주어 정리했을 따름이다.

황우석 사태는 1년 사이에 빠르게 벌어진 사건으로 축소해서 볼 수는 없다. 오래도록 이 문제를 파고 든 강양구, 김병수, 한재각의 <침묵과 열광>을 통해 이 사태의 맥락들을 두루, 그리고 좀 더 학술적으로 학술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학수 피디의 책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나 근래 보강되어 새로 나온 <진실, 그것을 믿었다> 역시 영화로 접하지 못한 에피소드와 진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제보자> 개봉을 맞아 <프레시안>에 강양구 기자가 연재한 ‘<제보자>가 말하지 않은 황우석 사태의 진실도 강력 추천한다. 강 기자가 한 피디와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당시 사건을 서술하는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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