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마이의 화이트 템플, 사원이라기보다 예술 작품이다. 사진 하지
태국 치앙마이의 화이트 템플, 사원이라기보다 예술 작품이다. 사진 하지

해가 갈수록 폭염주의보가 잦아지는 8월, 아이 둘을 데리고 한국의 무더위를 피해 더 더울지도 모르는 태국 치앙마이로 여행을 떠났다.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의 중심 도시이며 방콕보다 저렴한 물가와 고즈넉한 풍경들로 인기가 많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태국이 코로나의 터널을 잘 통과했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도착해 보니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듯 관광객도 많아 활기찬 분위기였다.

아이 동반 여행을 할 때는 생각해야 할 조건들이 많다. 볼거리 그 자체보다 교통, 숙박, 음식, 안전 등이 아이들과 함께하기에 적합해야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이들과 어딘가를 가는 것 자체가 부담된다. 국내 여행 시에는 ‘노키즈존’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필수여서 이 모든 상황이 양육자에게는 조금씩 스트레스가 된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과의 여행을 늘 결심한다. 돈도 힘도 곱절로 들지만, 육아가 삶의 모든 순간에 브레이크를 걸게 두지는 않는다.

태국 치앙마이는 한 달 살기를 많이 하는 도시여서 숙소의 형태도 다양하고 치안도 좋아서 아이들과의 여행지로 최종 낙점됐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현지인들의 친절함이다. 식당, 카페, 술집, 사원(여성차별 사원은 있지만) 등에서 아이들은 환대 받는 여행자를 경험할 수 있었다.

 

편의점만큼 사원이 많은 치앙마이, 지나가다 들른 이름 모를 사원. 사진 하지
편의점만큼 사원이 많은 치앙마이, 지나가다 들른 이름 모를 사원. 사진 하지

나는 여행지에서 아이들이 뛰거나 큰 소리 내는 것을 강하게 혼내곤 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에 언제나 예민하게 반응했다. 가끔 아이들이 서로 대화만 해도 ‘조용히, 얌전히, 가만히’라며 자동반사적으로 훈육했다. 한 호텔 로비에서 있었던 일인데, 체크인하는 도중 지겨움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로비에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체크인 시간은 오래 걸렸고 아이들에게 보여줄 전자 기기는 캐리어에 있었다. 아이들은 놀 거리를 찾다가 로비의 여러 구조물을 놀이터 삼아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시도했다. 나는 ‘K-버럭맘’이 되어 아이들을 호되게 다그쳤고 내 옆에 얌전히 있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내 아이들 또래가 있는 외국인 가족이 호텔로 들어왔다. 그 아이들도 심심한 건 마찬가지였는지 로비에서 작은 소란을 일으키며 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외국인 부모들은 아이들을 혼내지 않고 제재도 하지 않았다. (작은 소음이라 해도 훈육하지 않은 그 부모가 옳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호텔의 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되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 옆에서 훌쩍이며 우는 두 아들에게 미안했고 화를 낸 것이 민망해졌다. 주변을 의식해서 아이들을 과도하게 다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중 마주쳤던 많은 한국인 부모가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을 자주 보았다. 우리는 매일 미디어를 통해 ‘금쪽이’와 ‘맘충’에 관련된 뉴스나 글을 본다. '민폐 아동'에 대한 뉴스는 ‘노키즈존’을 대변하는 듯하다. 한국에만 있는 이 기괴한 차별을 차별이라고 크게 목소리 내는 뉴스는 거의 없다. 이러한 노출이 반복될수록 양육자들은 예민해지고 사람들은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아이를 쉽게 문제아동으로 낙인찍는다. 내가 만난 외국 아이들의 소음은 한국에선 교정시켜야 할 문제 행동이 될 것이고 통제하지 않는 부모는 자격 미달이 될 것이다.

포항 역시 한국에서는 손에 꼽히는 관광도시다. 치앙마이보다 두세 배 많은 인구가 살지만, 관광객은 1/10 정도이지 않을까. 멋진 동해를 끼고 천년 고도 경주가 바로 옆에 있는 매력적인 도시이지만 가끔은 사람들이 명소에서 인스타용 사진만 건져 가는 게 아닐까 싶어 아쉽다. 치앙마이를 다녀오고 매력적인 관광지에 대해 생각했다. 관광지에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멋진 구조물도 있어야겠지만 여행의 긴 여운은 결국 ‘이야기와 사람들’에서 나온다. 태국은 관광객에게 ‘오리엔탈리즘’을 전시하듯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받은 환대와 친절은(기계적일지 몰라도) 나에게 문화 유적만큼이나 인상 깊었다. 그러한 다정함은 결국 그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의 자부심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나의 아이들 역시 치앙마이 여행을 따뜻한 온기로 오래 기억할 것이다.

 

글, 사진_ 하지




※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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